천안문 사태 (1989)

1989년 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수십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부패 타도, 언론 자유, 민주화 를 외치며 평화롭게 점거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반혁명 폭란’ 으로 규정하고, 결국 인민해방군을 투입 했다.

6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 실탄과 탱크가 시민들을 향해 진압에 나섰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고, 탱크에 깔려 죽었다.

공식 사망자는 200여 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사망자는 수백에서 수천 명 으로 추정된다.

가장 강렬한 장면은 ‘탱크맨’ — 홀로 탱크 앞에 서서 진군을 막아선 익명의 남자.

그날 이후 중국은 경제는 열었지만, 정치적 자유는 철저히 봉쇄 했다. 지금도 중국 본토에서 ‘6월 4일’은 철저히 검열되는 금기다.

한 마디로: 자유를 외친 젊은이들을 탱크로 짓밟은, 중국 공산당의 원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