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역사를 바꾼 FN 1910입니다.

예스 맞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암살하여 1차대전을 시작하게 만든 그 총입니다.

사진에 있는 총이 암살에 쓰인총이라고 알려져 있고







나머지는 공범들이 소지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많습니다.

FN1910은 당시에는 대단히 미래적인 권총이었습니다.

리볼버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

FN1910은 외부 해머가 보이지 않고 

디자인이 매끄러워 양복주머니안에 쉽게 휴대가 가능했고

휴대를 했을때 다른 권총들 처럼 튀어나와보이지도 않으면서도

리코일 적게 빠른 사격이 가능합니다.



FN1910은 총열이 고정되어 있고 스프링만으로 압력제어하는 전형적인 블로우백방식을 사용합니다.

총열에는 코일이 감겨져 있고 총을 발사시 슬라이드 이동 거리가 매우 작기 때문에

언뜻보면 슬라이드가 안움직이는거 처럼 착시현상이 생깁니다.

이런 설계의 특징 때문에 압력이 강한 총탄은 사용이 불가능하고

.32ACP 또는 .380ACP 정도의 탄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비교하기 쉽게 비슷한 시대에 발표된 콜트 M1911과 비교해보았습니다.

M1911은 현대총의 아버지입니다. 당시에 리볼버가 대세였던 시대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온것 처럼 당시 기술이 구현할수있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할수있겠습니다.

놀랍게도 이 두 총을 디자인 한 사람은 둘다 브라우닝입니다.



잠깐. 그렇다면 미국인이였던 브라우닝이 왜 벨기에에 가서 총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원래 FN1910은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맞습니다.

문제는 브라우닝이 역사적인 Auto-5 샷것 디자인을 윈체스터에 팔아서 대히트를 쳤음에도

윈체스터는 플랫피만 주고 로얄티를 쉐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실망한 브라우닝은 벨기에로 옮겨서 FN1910을 만들게 됩니다.



유럽으로 옮긴 브라우닝은 FN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럽총기역사를 뒤집어 놓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도 자신을 인정해주고 끝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FN사와 함께하여 

벨기에 FN 공장에서 심장마비로 1926년 사망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FN사는 2차대전중에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며 그 기술을 나찌에게 제공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총이 브라우닝 하이파워입니다.




브라우닝 하이파워는 13+1 장전이 가능한 총으로

당신 유럽의 피스톨들이 대부분 8발 이었던 시대에 놀라운 디자인이었습니다.

나찌는 벨기에 점령이후 즉시 하이파워를 제식화 시켜서 보급했고

동시에 연합군도 카나다에서 똑같은 총을 제작하여 공급했습니다.

이 총은 유일하게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가 전쟁중 양측이 모두 동시에 사용한 총으로 기록됩니다.

13살때 부터 시작한 브라우닝의 총기개발 역사는

현대무기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누구나 그의 총을 사용했던 시대를 넘어선 개발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