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학 학문은 사회변동을 둘러싼 체험의 기록. 국민숫자만큼 다름. 여기서, 역사학 학문의 내재적인 규범으로 아카데미 내부로 제한됨.
중국 역사학은 지주 사대부 계층과 연결된 그 마을의 귀족이거나, 아니면 왕조의 좌우를 판가름하는 사관으로 제한됨.
여기서, 기자라는 ‘서양문명’직분을 전제로, 중국역사학의 기록의 제한된 포지션을 구사하는게 가능한가요?
서양 역사학 학문은 아카데믹 해야 하고, 그리고 다원주의적 공론장 교차검증이 돼야 하고,
중국역사는 권력중심 패권의 기록이고, 이 영역이 전부 부족주의 합의가 잇어야 합니다.
서양문명의 탈을 쓰고, 중국식 역사기록의 포지션을 하는 것에 동의를 하는게 가능할까요? 유교붕당의 좌장의 발언독점권을 가지면서, 신문기자란 직분으로, 역사학 학문의 본래의 규범 규율 및 공론장 검증기회 차단하는 일은 가능한가요?
검색해보면 조갑제-이영훈 계열 빼고 보수진영 사학자는 씨가 말랐어요. 조갑제는 대학 중퇴요 인문학 수업 받지를 않았고, 이영훈교수는 농경제사학이 전공입니다. 교차검증 없이 무조건 믿어라. 조선시대 후기 유교 붕당의 좌장에 물개의 공연자 따라서 박수스타일의 노비들의 대합창으로 역사교육이 된다고 믿는게 가능한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