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선배들”이란 잘못된 용어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
-예수 잘 믿으라 이기야!-
‘교회해산법’을 주도하는 이재명씨를 한국교회가 품는 행사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없다>고 믿었다고 밖에 해석 안되는 일을 드러냄이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과 20대 초반에 때, 바른 교의를 중시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도의 민족복음화운동을 잊지 않는다. 지금 교회 노인들 기준으로서, 유교 서원의 인식론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에서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나 중심의 선배, 후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하신 의미로서, 구약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조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통해 맺은 계약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게 신앙공동체의 주도 인사들이 말하는게 중요하다.
“죽으면 죽으리라” 찬양도 좋은 찬양이지만, 필자는 너무 웅장한 음악에서 바른 신앙을 전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필자의 생각에 믿음의 경주는, 대한민국 육군의 80-90년대 초장거리 행군이라고 믿는다. “초 장거리 행군”은 너무 힘들다. 그런데, 대한민국 남성의 거의 대부분이 완주한다. <완주했다!!> 하고 뻐길 수 없다. 그 찬양을 다 들으면, 복음준행을 뻐기고 싶어지게 된다.
유신시대의 교회가 ‘충성/반역’에 투항했듯이, 김대중체제의 교회는 삼위일체 창조신론을 버리고 ‘대동세상’(일당독재) 세계관에 투항한다. 이재명 품는 행위는, 전라도 유교 서원이 교회인양 여기면서 <하나님이 없다>는 행위의 절정을 보였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세계관에 얽힌 경제학, 법학, 정치학, 사회학, 윤리하 등의 소망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교회 노인들과 군사정권 기독교소망은 완전히 달랐다. NCCK와 관계가 좋아질수록, 토착화신학의 보스 함석헌 선생의 긍정이 커질수록, 더욱 더 성경의 세계관과 한국교회는 멀어지고 있다.
7천만의 기독교화가 포기되면 장점이 있다. 복음 준행 안하는 잘못된 기독교 관행과는 분리를 통해서, 성경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 유교 관행에서는 과거는 무조건 계승이며 현재가 과거의 종속이다. 성경기준으로는 <7천만의 기독교화>는 옳지 않다.
복음통일이나 자유통일 담론으로, 노론 유교와 얽힌 전라도식 거대한 공동체 신앙은, 기독교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예수 신앙 위에서 나타나는 성령 공동체로서 교회가 아니라, <동학 포접제 전제=교회>라는 엽기주의로 일탈할 수 밖에 없다. 나와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은 우상이며, 유신시대에 국가주의를 우상으로 했던 교회는 통일도 당연히 우상이라고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신학 차이를 과장하는 교회는 과연 유교붕당인가, 기독교신앙이 바른가? 의문한다. 필자가 계속 반복하는게 있다. <대한기독교서회>쪽의 NCCK노선은 실제 믿는 것은 ‘동학신앙’이며, 진보신학 자체가 아니다. 표현만 진보신학 꺼 받아서 훔쳐쓰지만, 실제는 늘 동학세계관이다. 이 회사는 동학세계관 못 버린 쪽과 분리를 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대한기독교서회>라는 용어사용은 금지가 됨이 합당하다고 필자는 믿는다.
또, 국민일보는 지난 10년 이상 원불교 백낙청 용어를 써왔다. 백낙청 용어 자체가 원불교 신앙인 맥락이라고 지적해왔다. (왜 필자는 백낙청 세계관을 잘 알까? 진보신학에서 예수따름이 타종교까지. ... 라는 신앙 전제로도, 도대체 백낙청 생각은 어떤가? 긴 분석을 해왔다) 과거의 명성을 지키려면, 국민일보 기자 중에서 원불교 백낙청 세계관 가까운 자들을 전부 축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어린시절처럼 소망을 다음세대에 심을 수 있길 소망한다. 복음전도로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성서적 세계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치 등의 인문학의 확장은 같이 커지는 소망이었다.
그게, 이승만 이용사업으로 이승만을 조선왕조 창업군주로 안 띄워도, 이승만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는게 옳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