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움의 힘 | 헤븐레터스
Posted on 2026-04-08테라제츠-2026년 4월 7일

경이로움의 힘: 우리 삶 속 신성을 발견하다
일상적이고 틀에 박힌 삶 속에서 우리는 주변의 마법을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2026년 4월 6일자 천상 서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경이로움의 힘을 재발견하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창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원래 2001년 3월 17일에 천상 서한 139호로 발표된 이 서한은 경이로움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신성과 연결해 주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임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합니다. “내가 창조한 우주를 경외하라. 경이로움을 느껴라. 경이로움에 가득 차라.” 하나님께서 설명하시듯이, 경이로움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이로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의 눈은 “빛나고”,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창조의 참된 본질을 드러내는 더 깊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우리에게 매일 새롭게 태어나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이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호기심과 경외심으로 세상을 진정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외부의 인정이나 심오한 경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시야를 밝혀 내면과 주변의 빛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상의 편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는 창조의 경이로움을 찬양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움직임과 정지에서부터 빛의 흐름과 그림자의 생성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감탄하십니다. 이 편지는 장미 꽃잎이 떨어지는 것조차 다음 꽃을 피울 장미 덤불을 양분하는 복잡한 생명의 그물망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경이로움은 단지 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창조하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의 창조력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천상의 편지」는 또한 인간 존재의 신비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신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면서도 그것을 감춰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합니다. 우리는 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 경험의 근본적인 측면이며,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다면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궁극적으로 경이로움의 힘은 사랑에 뿌리를 둔 우리의 참된 본성으로 돌아가라는 부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으로 창조되었으며, 사랑은 우리와 신성 사이의 교류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청은 단순히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거룩한 대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삶의 복잡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천상의 편지는 경이로움의 힘을 다시금 되새겨보라고 권합니다.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창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우리 안팎에 존재하는 신성과 연결되도록 이끌어줍니다. 경이로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세상과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에 아름다움과 빛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공동 창조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종종 스스로의 경이로움을 잊어버리는 이 시대에, 이 메시지는 경이로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를 기다리는 마법을 강력하게 일깨워줍니다.
[참조]:
경이로움의 힘 | 헤븐레터스
2026년 4월 6일
(출처: https://rainbowwaveoflight.wordpress.com/2026/04/06/the-power-of-wonder-heavenletters/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창조한 우주를 경외하라.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라. 경이로워라. 네가 경이롭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본다는 뜻이 아니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렇게 보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다. 너는 경이의 눈으로 본다. 경이로움 속에 있을 때, 네 눈은 빛난다. 경이로움 속에 있을 때, 너는 나의 빛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였고, 그것이 경이롭다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곳을 나의 경이로움으로 채웠기에, 그곳은 나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오늘 새롭게 태어나, 모든 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아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아라. 사실, 그렇게 하면 내 창조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경이로움을 느낄 때, 비로소 진실을 보는 것이다. 나는 네가 흉내만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라 같은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걸 찾으려는 게 아니니까요. 빛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시선입니다. 당신은 바깥을 바라보는 빛 그 자체이며, 빛은 빛을 보게 마련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빛나는 존재다.
내 피조물 중 어떤 것은 가만히 있고 어떤 것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또 어떤 것은 둘 다 할 수 있다. 사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으며, 모든 것은 가만히 있다. 고요한 푸른 잎사귀가 산들바람에 흔들린다. 홀로 있는 사람이 앉았다가 일어난다. 구름은 움직인다. 태양은 가만히 있다. 움직임과 고요함은 나의 경이로움 중 하나이다.
빛이 통과한다는 사실은 나의 경이로움 중 하나이다. 빛이 그림자를 만든다는 사실 또한 그러하다. 어둠은 생길 수 있지만, 빛은 사라질 수 없다. 그리고 빛이 색을 띠고, 수많은 색과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지닌다는 사실 또한 경이로움이다.
밀도가 없으면서도 밀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내가 만든 것은 수수께끼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창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사랑은…
내 아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경이로운 일이다. 아이들은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들은 아름다움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잊어버릴 정도로 창의력이 넘칩니다. 하지만 잊을 수 있다면, 기억할 수도 있는 법이죠.
자연은 어떻게 계절을 기억할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기억하나요?
소리는 내가 창조한 경이 중 또 하나다. 음악 말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너의 모든 감각은 나의 경이로움이다.
장미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장미 덤불이 꽃봉오리를 피웠다 떨어뜨리고, 떨어진 꽃들이 덤불에 영양분을 공급해 다음 꽃을 피우게 한다는 사실은 더욱 경이로운 일이다. 게다가 장미 말고도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걸까?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
아름다움을 생각하니, 아름다움이 나타났다.
나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어떤 열정이 당신을 만들어냈을까요?
세상에 그토록 많은 지루함이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이 땅을 걷는 단 한 명의 인간만으로도 평생 동안 감탄할 만한 경이로움이 충분할 텐데 말이다.
피조물로부터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인간은 매 순간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실상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숨을 쉰다는 것이 있다는 것. 네가 마시는 숨은 나의 숨이며, 너를 숨 쉬게 한 것도 나의 숨이라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평범한 일이다. 이는 정해진 바였다.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본래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너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너는 나를 목격할 수 있다. 너는 내 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 마음을 너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지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 사이의 교감이다. 네가 내 말을 듣는 것은 내가 너를 향한 사랑이며, 네가 나를 향한 사랑이기도 하다. 듣는다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내가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너는 무엇인가? 너는 무엇인가?
헤븐레터 139호 발행일: 2001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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