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승 교수는 사회적으로 백낙청 사단의 학자로 간주될 수 있는 데, 그의 현대사 서술은 사회학적 중립을 역사서술에서 취한 책이 있다. 구글ai 해설은 이러하다. “AI 개요 박찬승 교수의 저서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이 전선뿐만 아니라 후방의 마을 내에서 주민 간 상호 학살(작은 전쟁)로 전개된 미시사를 다룹니다. 인민군 점령과 수복 과정에서 남북한 국가권력이 마을로 침투하며 좌우익 갈등이 참극으로 변질된 과정을 분석한 기념비적 연구입니다”
필자의 현대사 표현은 박찬승 교수의 결과물에서 끼어 있는 민주당 지지층이 선호하는 표현(내용 중립, 표현은 민주당 지지층)조차도 중립적으로 바꾼 수준에 가깝다. 표현과 내용에 있어서 모두 중립을 취하는 것이, 필자가 유지해온 ‘지적 양심’에 가깝다.
4.3 사건 추념일마다 보수유파 유권자들이 분통터지는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
한마디로 말하면, 당파중심의 유교의리론으로 우주중심을 바라보는 쪽으로, ‘악마 영남’이 ‘악마래서’ ‘악마짓해서’ 자기들이 억울하게 피해 입었다. 중국식 부족전쟁의 특정한 당파의 씨족 내러티브로 정 주행한다.
이를 해석 못하는 영어권 진보의 후원을 받고 밝히는 것까지 더해진다.
이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이다.
이것을 깨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학술결과물 뿐이다. 그래서, 반대측 시야로 대중에 장기적으로 노출시켜 바꾸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안한다.
4.3 피해자 기준의 가해자들에 대한 이익 서술이 누려지는, 영남 왕권제 유교 내러티브의 ‘장군 묘사’로 포기할 수 없음을 굳세게 유지한다. 조선일보는 전라도 씨족종교 서사로 바꾸면서도, 일부 그런 기득권자를 끼워주려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쪽은 ‘당파중심의 전라도 유교’에서 일관되게 자기들은 피해자, 영남은 가해자 악마. 그런 이분법 서사를 쓴다. 오히려, 조선일보의 가해자측의 꼭대기를 끼워달라는 게 말이 되나?
따라서, .....
역사적 사실 서술은
쌍방 가해-쌍방 피해-쌍방 억울 인데
현실은
일방 가해-일방 피해-일방억울로 바뀐다.
국힘 계보에 연결된 이들은, 대구경북을 증오해도 너무 증오하는 의식을 표하는 조갑제기자의, 특정한 씨족종교 신화 안에서 전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맹신한다.
이미, 세뇌로 주입된 당파중심의 서사는, 유신체제 절정에서 국가주의 서사처럼 철통이다. 이를 서방사회가 공감할 서양인문사회학의 결과물을 내서, 그것이 반복돼서 대중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을 쥔 당파중심의 유교 지배층이 결코 반대하고, 서방사회도 허락하기가 쉽지 않은 권력을 쥔 층이 혐오하는 아시아 코드가 나온다.
답이 없다.
무한반복이다.
당파중심의 씨족종교는 자유민주 학문으로 부정돼야 할 편파서술을 취한다. 그러나, 그 당파중심의 씨족종교가 철천지 원수로 기억하는 귀족을 꽂아주기 위해서, 계속 편파서술을 못 고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상황에서 미국을 찾더라도 방법이 없고, 그 세계 누구를 찾더라도 방법이 없다.
전라도는 동학종교로 씨족주의 정주행하는데, 영남의 동학만이 차별 받는다? 동학에 깔린 중국경전의 1인독재 아니면 1당독재 취향 자체의 불법성에 대하여,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책임있고 그것을 입증하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국힘 지지층 중 노인권력층의 생각에는, 일반인 감정에 정반대 요소가 있다. 이분들의 고집이, 호남 동학층에 국힘 유관한 유권자층에 ‘연좌제식 감정적 가해’의 피해상태를 계속하게 한다.
[질문] 쌍방 피해-쌍방 가해-쌍방 억울을 편파 피해-편파 가해-편파 억울로 바꾼 논리에 대하여, 오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기준의 항변만이 의미가 있고, 영남 왕권제 유교에 입각한 반론은 번번히 지금의 지배논리만을 강화한다고 보는게 합당한 판단이겠죠?
지금 국힘에 권력 가진 머리 나쁜 노인들의 생각 : 쌍방 동학 세계관의 서술을 인정하라.
가능한 반론 : 동학 세계관에 깔린 1인독재 및 1당독재로 흐르는 내용의 불법성 판정만이 의미있는 반론이고 아니면 들어주거나 편들어줄 이유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