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에 부자 탈출 주장에
李 “믿어지지가 않아” 공개 질타
한경협, 양극화·내수살리기 앞장
10년 만에 재계 대표 교체 전망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런 짓을 공개적으로 벌인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엑스(X)’에 이런 글을 올리자 대한상의는 완전히 멘탈(정신)이 나가버렸습니다. 지난 10년 간 법정 경제단체로서 재계를 대변했던 대한상의의 위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李, 지난해 내내 ‘상속세’ 논란 홍역
상의, 내는 자료마다 李와 ‘반대로’
재계에서도 “대한상의, 눈치 없어”
발단은 지난 4일 상의가 낸 ‘상속세수 전망분석 및 납부방식 다양화 효과 연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입니다. 상의는 이 연구를 통해 지난해 한국을 떠난 고액 자산가가 2400명으로 전년 대비 2배로 급증했고, 이 숫자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다는 내용을 배포했습니다.
주요 언론들이 이 기사를 크게 다뤘고 결국 이 대통령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공개 질타한 것입니다. 국세청이 밝힌 수는 연 평균 139명인데 상의가 의도를 가지고 이 같은 자료를 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시각으로 보입니다.
화들짝 놀란 상의는 부랴부랴 ‘팩트체크’를 강화하는 재발 방치책을 내놨지만,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상의 회장은 “임원진 전원의 재신임을 묻겠다”며 그냥 넘어가지 않을 모양입니다. 해당 자료는 최 회장이 미국 출장 와중에 나왔기 때문에 부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책임 소재를 따질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지적입니다. 새 정부가 탄생하면 보통 첫 1~2년은 경제단체들도 보조를 맞추거나 대놓고 반대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탄생한 정권이 대선 기간 약속한 정책을 펼쳐보이는 게 정치적 도리입니다. 책임이나 반대의 목소리는 정책이 결과로 나타나는 3년차에 들어서야 커지기 시작합니다.

대한상의 전경. 사진 제공=대한상의
하물며 이번 정권은 보통 정권이 아닙니다. 범여권이 국회의 3분의 2가 넘는 190석에 달하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0%(한국갤럽 2월 2주차 기준)가 넘습니다.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강한 권력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권력이 강하다고 한들 여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면제’를 대선에서 공약했다가 ‘상속세 폐지’로 오인받아 지지층 내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두 사안이 완전히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상속세를 손을 보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급기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일반 상속세를 낮추는 건 동의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논란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눈치없이 대한상의가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수천 명이 ‘탈(脫)한국’ 했다는 자료를 배포한 것입니다. 윤석열정부나 이재명정부나 상속세는 그대로였는데 대한상의는 ‘지난해’를 지칭해 화살을 느닷없이 이 대통령을 향해 쐈습니다.
사실 이 대통령으로서는 감정이 쌓여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상법개정안에 자사주 의무 소각을 넣은 방안을 고려 중인데 상의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와 문제점 연구’, ‘기업 3분의 2,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반대’ 자료를 내기도 하고, 노사현안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총괄하는데도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통해 ‘국민 76% ‘노조법 개정되면, 노사갈등 심화된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재계에서 “상의가 눈치가 없다”는 소리들이 나온 이유입니다.
4대 그룹 투자 발표에 등장한 한경협
최순실 사태 이후 상의에 밀린 암흑기
양극화 해소·청년·중기육성 활동 나서
이재용·최태원 등 회장단 복귀 기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과의 민생경제간담회에서 류진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민주당 당대표와 한경협 회장의 공식적인 만남은 2015년 9월 이후 약 10년 만이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광현 국세청장에게 소위 ‘몰매’를 맞은 대한상의와 반대로 옛 전국경제인연합회, 현 한국경제인협회에 대한 정부의 대접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와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가 자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요 10대 그룹은 5년 간 약 270조 원 규모의 지방 투자, 올해 총 5만1600명의 채용 계획을 밝혔는데 이 투자를 집계해 발표한 곳이 한경협입니다.
직전 정부와 지난해에도 주요 그룹들이 이 대통령과 만나서 밝힌 투자 계획은 각 그룹들이 각각 대외로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한경협이 대표에서 투자금액을 모으고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한경협은 지난 2016년 이른바 ‘최순실 사태’에 연루되며 정부의 파트너 자리를 대한상의에게 뺏긴 후 약 10년 간 암흑기를 걷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당시에는 5년간 소위 ‘패싱’ 당했고 윤석열정부에서는 정부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등 지위를 일부 회복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정부가 파트너인 대한상의를 매섭게 몰아세우고, 한경협과는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류진 한경협 회장의 경영철학이 이재명정부를 ‘취향저격’ 했다는 해석까지 나옵니다.
류 회장은 지난 2013년 한국선진화포럼에서 “기업이 윤리적인 측면에서 바로서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밝혔습니다. 지난해 7월 제주하계포럼에서 기자들을 만나서도 “(한경협에) 윤리위원회를 만든 것이 내 임기 중 제일 잘한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류 회장은 “요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 너무 힘들다”며 “내수경기는 민생경제와 직결된다,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라고 적극적인 내수활성화도 주문했습니다. 또 “여름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자. 저도 전북 고창에 있는 상하 목장으로 간다”며 솔선수범할 계획도 전했습니다.

류진(오른쪽 첫번째)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우리 시장을 방문해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직접 마련한 설 꾸러미를 취약계층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설을 맞아 소외된 이웃들에게 온기를 전하고 소상공인을 응원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사진제공=한경협
류 회장의 철학이 녹아든 걸까요. 한경협은 중소기업중앙회와 ‘민생살리기 업무협약’, ‘내수살리기 K-바캉스 캠페인’, ‘강한 소상공인 밸류업 데이’, 8월엔 ‘지방살리기 상생소비 활성화 방안 동참’, ‘소상공인 자영업자 정책 해외사례 및 시사점’ ‘쉬었음 청년의 경제적 비용 및 정책과제’, ‘상생협력 채용박람회’, ‘청년 일자리 개선을 위한 주요 그룹 간담회’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경협은 재계와 기업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양극화 해소와 청년실업, 중소기업 육성 활동에 유독 적극적입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인 지난해 3월 민주당 대표로서는 10년 만에 한경협과 만나며 관계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재계의 대표선수가 대한상의에서 한경협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관측들도 나옵니다.
그럴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류 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 종료됩니다. 연임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게 재계의 중론입니다. 류 회장의 임기 종료에 맞춰 4대 그룹 총수들이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9년 만에 다시 한경협 회장단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현실이 되면 한경협의 위상은 달라지고 재계의 얼굴도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대통령의 대한상의 질타. 단순한 글로 보기엔 재계의 지형에 많은 변화들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