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고전 속의 리더와 리더십】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북송이 망한 이유를 오늘에 되새기며
이상호 칼럼니스트
경기데일리: 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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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한 당파적 대립은 도유우불(都俞吁咈-논쟁과 타협)의 정치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 -
《자치통감총요통론》-
중국의 북송은 문화적으로 매우 융성한 나라였다.
오늘날 중국 유학과 문화가 정립된 것도 어쩌면 북송 때의 대학자들의 덕택이다.
송은 오늘날 중국문화의 토대를 구축했으며 나아가 동북아 유학 문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첨예한 당파적 대립은 국력의 약화를 가져와 결국 북송의 멸망을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그 북송의 신종 때였다.
신종은 즉위하자 대대적인 개혁 정치를 표방하면서 왕안석을 기용해 왕안석이 제안하는 신법을 시행하려 했다.
송이 건국되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 기득권 세력의 횡포가 늘어나고 정치는 답보상태에 흘렀기 때문에 그 개혁은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종을 등에 업은 왕안석을 중심으로 하는 신법파의 개혁 주장은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다.
이에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구법파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구법파인 사마광은 20세 때 과거에 장원을 한 후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쳐 오던 차에 신종과 왕안석이 추진하는 신법에 대해
처음에는 개혁 자체는 찬성했다. 구법파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신법 중심의 개혁파들이 관료들의 기득권까지 개혁해 정계를 혁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급진적인 개혁에 시동을 걸자
추밀원 추밀부사로 있던 사마광이 구법당의 우두머리가 되어 강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구법당과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당의 대립이 첨예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신종의 신법 추진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사마광은 신구 당쟁에 밀려 결국 부재상직인 참지정사직을
1064년에 사직하고 낙양에 은거하면서 1084년까지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여기에는 비록 정치적 의견은 달랐지만 대학자를 존중한 신종의 깊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종이 붕어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황태후 고씨가 섭정하면서 사마광을 다시 기용해 재상인 동중서문하평장사의 자리에 앉히면서
대대적인 신법 타파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사마광은 재상이 된 지 8개월 만에 병사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신법파인 왕안석도 같은 해에 죽었다.
하여 신법파와 구법파의 정치적 대립이 중단되는가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두 정파의 정치적 대립은 첨예하게 계속되었다.
이후 고태후가 죽자, 철종은 신법당을 다시 복원시키면서 고태후 하의 철종 연간에 득세했던 구법당인 원우당은 크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때 황제가 친히 내린 사마광의 비문이 부숴지고 그 후손들이 삭탈 유배를 떠나는 치욕을 겪었다.
사마광의 부관참시까지 논의 되었으나 그 치욕만은 면했다.
하지만 1100년 철종이 갑자기 붕어하면서 그의 동생 휘종이 즉위하면서 황태후는 다시 구법당을 대대적으로 복위시켰다.
그러면서 또 대대적인 신법당 축출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쟁은 신법당인 왕안석과 구법당인 사마광이 죽은 이후에도 신법당과 구법당의 진흙땅 싸움이 계속되었다.
이제 그들은 신법 구법이 아니라 정치적 패거리로 변해 서로 정권을 잡고 상대를 축출 제거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론은 분열되고 관료들은 반목을 이어갔다. 이 싸움은 송 말기까지 지속되어 국정은 난맥상을 보였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신법파나 구법파나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상대당의 정책이나 비판을 일체 배격하고
오로지 자기들의 정치적 주장만 시행했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는 오류와 혼란이 거듭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송의 국력은 날로 쇠퇴해졌고 당파를 지어 정권 다툼만 일삼느라 국방에 극히 소흘했다.
그래서 북방의 몽고족이 쳐들어왔을 때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멸망했다.
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린 몇 가지를 짚어 오늘날에 견주어 볼 수 있다.
첫째 첨예한 정치적 대립은 인간적인 친분이나 의리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사마광과 왕안석의 생존 시에는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달랐지만 서로의 학문과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들 사후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면서 상대는 척결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 어느 시대나 보수파와 진보파는 있게 마련이다 .이는 정치적 견해로서 서로 간의 차이일 뿐이다.
그들 모두 정치와 현상을 한쪽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다고 우길 뿐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창조적인 정책적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송나라 신법파와 구법파는 상대와의 대화와 타협보다는 상대는 딛고 서는 척결의 정치를 반복해 왔다.
척결의 정치는 말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일이라지만 결국은 기득권의 완전 확보를 향한 반대 집단 죽이기 전략이다.
셋째, 정치적인 치열한 대립은 정치적 이권과 명분 쌓기에 전염하느라 민생을 살피는 정치나 국방, 안보, 외교 등 다방면에 걸친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을 상실하게 만든다.그러면 결국 민생은 어려워지고 국방은 소흘해지며 사회질서는 어지러워지며
풍속과 민심은 사나워지게 되어 국론의 분열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오게 한다.
넷째, 치열한 정치적 대립 속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은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치의 핵심 요체인 도유우불(都俞吁咈-논쟁과 타협)이 사라진다.
그러면 집권 세력의 권력 독주가 나타나 정치는 정도와 중도를 걷지 못하고 특정 방향으로 치우치게 된다.
다섯째, 권력을 잡은 세력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자나 집권에 공을 세운 자들만을 중심으로 등용하게 된다.
그러면 부도덕한 자나 간사한 자들을 가려내지 못하고 등용하여 청렴한 인사 질서를 무너뜨리기 쉽다.
송나라 시대의 신법파와 구법파의 첨예한 대립의 결과 송이 망한 것은 송의 유고 통치 문화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에 대단한
반면교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은 송의 멸망 사례를 전혀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4색 당쟁으로 얼룩져 송나라의 당쟁보다도 더 치열하게 싸웠다.
그 바람에 국력은 극도로 쇠퇴해졌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 말 열강의 침탈 등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도 당파 싸움만 하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결국 조선의 멸망을 초래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정치도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대립으로 상생과 협력의 정치가 아닌
척결의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이 관용이 아닌 척결의 대상이 되면 그 척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게 되어 있다.
척결이 반복되면 결국 보복의 정치가 행해지고 나라는 분열되게 된다. 그러면 결국 국력은 쇠퇴하고 민생은 어려워진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란 첨예한 대립을 겪은 후에 정치적 이념이 달랐던 남군에 대하여 일체의 보복이나 척결을 하지 않고
관용의 정책을 썼기에 미국은 하나로 통합되어 오늘날 강성한 나라를 만드는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조선은 치열한 당쟁으로 서로를 척결하는 정치를 하였기에 국력이 쇠퇴하고 민심이 어지러워지면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역시 해방 이후 계속된 척결 정치로 인해 나라가 어지럽다. 특히 최근의 정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과거 인사 척결 정치, 윤석열 대통령 때의 돌이킬 수 없는 대립 정치는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란 또 하나의 정치적 비극의 역사 속에서 내란 세력 청산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 없는 첨예한 당파적 대립의 정치는 결국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기득권 확보와 정권의 영구한 장악과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민생과 국방, 외교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우린 그것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그런데 지금도 그러한 척결과 보복의 대립 정치가 계속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분명한 것은 타협과 관용 없는 첨예한 당파적 대립의 정치는 그 명분이 어떻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파적 대립은 상대당이 있음을 인정하고 정책을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을 통한 최선을 방책을 찾아가는 것이어야지
상대를 파멸하고 정권을 독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당파적 대립은 송나라의 신법파와 구법파의 대립,
조선의 4색 당쟁과 꼭 빼닮은 것 같으니 어찌하랴!
이상호 칼럼니스트
경기데일리: 2026/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