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도시는 지난 수십 년간 ‘압축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급격히 팽창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성공한 도시화라기보다, 동일한 구조적 실패를 반복·고착화한 과정에 가깝다. 신도시의 반복적 건설, 수도권 중심의 고층 아파트 공화국, 만성적인 교통 혼잡은 우연이 아니라 명확한 인과관계를 가진 정책 선택의 산물이다. 국토부가 125만호 공급이라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수도권에 '공급'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겪고 있는 만성적인 도시문제에 대해 감각이 있는것인지 궁금하다. 만일 125만호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면, 골든타임을 잃는 것이고,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한 침체기에 들어설 수도 있다.
1. 신도시는 분산 전략이 아니라 통근 구조의 외주화였다
한국의 신도시는 일관되게 ‘수도권 과밀 해소’를 명분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구를 분산시키기보다 통근 거리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외주화해 왔다. 주택은 빠르게 공급됐지만, 일자리·연구·산업 기능은 계획 단계에서 축소되거나 지연됐고, 그 결과 신도시는 자족도시가 아닌 대규모 통근 저장소로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고층 아파트 단지는 신도시 개발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됐다. 높은 용적률을 통해 단기간에 인구를 수용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는 생활권의 밀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이동 밀도를 폭증시킨 결과였다. 네덜란드의 빈엑스(VINEX) 지역이나 프랑스 일부 신도시가 기능 혼합과 보행 생활권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 온 것과 달리, 한국의 신도시는 주거를 수용하고 이동을 외주화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2. 고층 아파트 단지와 과도한 용적률이 만든 왜곡
고층 아파트는 한국 도시에서 단순한 주거 유형을 넘어 하나의 지배적 시스템이 되었다. 문제는 높이 그 자체가 아니라, 높은 용적률이 단일한 형태로 집중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과도한 용적률은 인구 밀도를 높이지만, 동시에 일상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가로와 공간의 밀도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 결과 고층 아파트 단지는 외부 가로와 단절된 채 내부 도로와 조경 공간으로 폐쇄되고, 생활의 대부분은 단지 밖 대형 상업시설이나 원거리 업무지구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보행 가능한 생활권을 해체하고, 자동차와 대중교통 이용을 사실상 강제하는 구조다.
도시는 밀도가 아니라 구조로 작동한다. 같은 인구 밀도라도 중저층·다핵 구조에서는 이동이 분산되지만, 고층·단일 주거 단지에서는 이동이 특정 시간대와 축선에 집중된다. 수도권 교통 혼잡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용적률의 배치 방식에서 비롯됐다.
3. 교통지옥은 교통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고층·고용적률 도시 구조의 귀결이다
수도권 교통 혼잡은 흔히 도로 부족이나 철도 용량 문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는 현상을 원인으로 착각한 접근이다. 장거리 통근이 일상이 된 이유는 교통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층 아파트 단지와 업무지구가 공간적으로 분리된 도시 구조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도로 확장과 광역철도 건설은 단기적으로 혼잡을 완화하는 듯 보이지만, 곧바로 더 먼 거리의 통근을 가능하게 하며 수요를 다시 증폭시켰다. 이는 교통 유발 수요 이론이 오래전부터 지적해 온 문제이며, 여러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고층 아파트 단지와 과도한 용적률을 유지한 채 교통만 확충하는 방식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4. 왜 중저층 다세대주택 모델인가
중저층 다세대주택 모델은 단순히 ‘낮은 건물’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용적을 수평적으로 분산시키고, 주거·상업·업무 기능을 동일한 생활 반경 안에 중첩시키는 구조에 있다. 일본의 중층 집합주택, 독일·오스트리아의 블록형 주거는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이동 수요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중저층 주거는 가로를 활성화하고, 소규모 상업과 업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이는 특정 시간대에 이동이 폭증하는 구조를 완화하고, 도시 전체의 교통 부하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주거 유형의 다양성은 도시의 적응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반면 한국의 도시정책은 여전히 고층 아파트와 높은 용적률을 전제로 한 공급 논리에 묶여 있다. 이는 기술이나 재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이해관계가 특정 주거 모델에 고착돼 있기 때문이다.
5. 우리는 실패를 분석하지 않았고, 그래서 학습하지 못했다
한국은 단지의 문제를 더 높은 아파트와 더 촘촘한 용적률로 보완해 왔고, 그 결과 발생한 교통 문제를 교통망 확충으로 덮어 왔다. 이는 실패의 수정이 아니라 실패의 연장이다. 데이터는 충분했고, 해외 사례도 넘쳐났지만, 정책 선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정말 몰라서 같은 선택을 반복한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후자라면 이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의도된 구조이며, 그 비용은 사회 전체가 떠안고 있다.
6. 이제는 ‘얼마나 높이 쌓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밀도를 허용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앞으로의 도시 논의는 신도시 입지나 공급 물량을 넘어, 어떤 용적률을 어떤 형태로 배치할 것인지로 이동해야 한다. 도시는 주택 생산 공장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축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과거의 도시 실패에서 배울 수 있을지는 아직 열려 있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와 과도한 용적률이라는 단일 해법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시행착오가 아니라 정책 선택의 고착화다. 배울 것인가, 아니면 반복할 것인가. 이제 그 책임은 분명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