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과장이 다른 사업소로 발령 나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그 빈자리를 채우듯 문한의 직급은 '선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변전실의 소음도, 기름 냄새도 익숙한 일상의 배경음이 되었다.
"선임님, 이건 수치가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입니까?"
병아리 같은 목소리가 웅웅거리는 기계음을 뚫고 들려왔다. 신입, 왕음유였다. 입사한 지 두 달. 한창 의욕은 앞서는데 요령은 없는 시기. 문한은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어디 봐요."
문한이 계측기를 든 음유의 옆으로 다가갔다.
최과장이 그랬듯 뒤에서 압박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문한은 음유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살짝 숙여 계기판을 들여다보았다.
"아, 이건 레인지를 잘못 맞췄네. 여기를..."
문한이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다이얼을 돌렸다. 그 과정에서 문한의 팔뚝이 음유의 어깨에 살짝, 아주 살짝 스쳤다. 옷깃만 닿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가벼운 접촉이었다.
"힉!"
음유가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펄쩍 뛰었다. 손에 든 계측기를 떨어뜨릴 뻔한 걸 문한이 황급히 잡아챘다.
"어? 왜 그래요? 정전기 튀었어?"
"아, 아뇨! 죄송합니다! 제가... 그... 갑자기 가까이 오셔가지고... 놀라서..."
음유의 귀 끝이 순식간에 불타오르듯 빨개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꼴이 묘하게 귀여웠다. 정말 놀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바들바들 떨리는 속눈썹을 보고 있자니 문한의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그때 최과장이 자기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찌릿함과는 달랐다. 이건 좀 더 말랑하고,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문한은 계측기를 다시 음유의 손에 쥐여주며,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음유 씨."
"네, 넵!"
"우리 둘만 있을 땐..."
문한이 잠시 뜸을 들이자 음유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
"네... 네? 혀, 형... 이요?"
"왜, 싫어?"
"아니요! 좋습니다! 아니, 좋아요... 형..."
음유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형'이라고 불렀다. 문한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돌아섰지만, 심장 박동 수는 평소보다 빨라져 있었다.
"그럼 마저 체크하고 올라와."
문한은 태연한 척 중앙제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어딘가 삐그덕거렸다. 등 뒤에서 음유가 자꾸만 자기 뒷모습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문한은 제어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친놈, 무슨 쌍팔년도 작업 멘트를 치고 있냐.'
내가미쳤나
애한테형이라고하라니
근데쟤반응이좀
귀여웠던거같기도하고
살짝닿았는데소스라치던데
나를어려워하는건가
아니면
혹시쟤도나한테
떨려서그런건가
문한은 괜히 멀쩡한 모니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손끝에 닿았던 음유의 옷깃 감촉이 찌릿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