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희 칼럼] 사전투표 제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선거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승자를 잃는다
박익희 기자
경기데일리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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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제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그 선거가 의심받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승자도 패자도 정당성을 잃는다.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헌법 질서의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주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되는 유일한 제도가 바로 선거다.
따라서 선거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정권의 이해관계가 아닌 국가 존립의 요건이다.
부정선거 의혹에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사전투표 제도에 대한 불신은 특정 진영의 음모론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신뢰가 훼손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제도 개선의 충분한 사유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제기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헌법 제41조와 제67조는 선거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은 투표와 개표 과정 전반에 걸쳐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구조적 취약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첫째, 투표관리인의 실질적 책임성 문제다. 투표용지 관리 과정에서 관리인의 명확한 서명·날인 체계가 강화되지 않는다면,
책임 소재는 흐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 조작을 단정하기 이전에, 감사와 검증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결함이다.
둘째, 우체국을 통한 회송 과정의 불투명성 논란이다.
현행 제도는 절차상 합법일 수 있으나, 국민 다수가 ‘깜깜이’로 인식하는 순간 이미 제도는 실패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합법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가시성이 동반돼야 한다.
이 지점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선관위는 선거 결과를 방어하는 기관이 아니라, 선거 과정 전체를 국민 앞에 증명해야 할 의무 기관이다.
침묵이나 형식적 해명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각종 부정선거 의혹에도 철옹성이던 선관위의 권위가 추락했다.
설마했던 부정선거 의혹이 헌법재판소 내란좌 소명 재판에서 빳빳한 투표용지의 무더기 증거, 사전투표함에서 발견된 뭉개진 선관위 도장을 보았다.
대다수 국민은 선관위에서 설마 부정선거를 했을까? 라고 믿었던 국민들은 경악했다. 이런 증거물로 이제 진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래서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도 받지 않겠다고 하고, 중앙선관위원장이 대법관이고 지방의 부장판사들이 선관위와 관련이
있기에 마치 소도(蘇塗)와 같이 치외법권적 불가역적 성역이 되었다. 그러다가 무더기 부정채용 의혹이 불거지자 마지못해
2023년 10월 국정원은 선관위를 일부 검증했는데 사실로 드러났다. 부정선거 의혹은 점차 확대되어 발본색원해야 할 처지에 놓은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수동적 유권자에 머물 수 없다.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는, 선거 과정에 대한 감시권으로 확장된다. 국민은 주권자이며, 주권자는 감시자다.
사전투표 제도는 편의성 이전에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관리인 책임 강화, 전 과정 실시간 공개, 물류 단계의 완전 추적 시스템 도입 등 의심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
개혁 없이는, 어떤 선거 결과도 온전히 존중받기 어렵다.
선관위와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침묵할 것이 아니라 의혹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규명하여만 한다.
민주주의는 결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과정이 신뢰받을 때만 결과의 정당성이 보장된다.
박익희, 경기데일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