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는 한때 스탈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시민들에 의해 철거되었다. 현재는 거대한 스탈린 동상 대신 그의 부츠 두 짝만 남아 공원 전시물로 보관되고 있는데, 이는 이른바 ‘스탈린의 장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개인 숭배와 우상화를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헝가리 시민들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통해 헝가리는 자유를 향한 길을 열게 되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공원의 스탈린의 장화>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중국에서는 스탈린주의를 기반으로 한 우상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반면 서양에서는 스탈린주의를 배격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1956년 3월, 소련 전역과 전 세계 공산권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소련의 최고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연설에서 “이제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 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과도 평화 공존이 가능합니다. 개인 숭배를 일삼은 스탈린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최악의 독재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스탈린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탈스탈린화) 정책은 공산권 전역에 자유와 해방의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그 결과 폴란드에서는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헝가리에서는 반공 시위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동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나타났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은 흐루쇼프의 수정주의를 강하게 비난하며,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평화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개인 숭배와 우상화 작업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내세워 “소련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갈 것이 아니라, 우리식으로 주체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동일한 역사적 전환점에서도 동유럽과 동아시아의 공산 국가들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서양과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동아시아의 사고방식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김일성이 1950년대에 확립한 집단농장 체제는 농민들의 동기 부여 부족, 부정부패, 구조적 비효율성, 생산성 저하를 초래했으며, 그 결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서양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일정 수준의 자유와 인권이 비교적 보장되었고, 그 결과 1990년대 초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될 수 있었다. 독일이 대화와 교류를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동독의 경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독 방송 시청이 사실상 허용되었고, 당에 대한 기본적인 충성심을 인정받은 인물이라면 당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오늘날까지도 폐쇄적인 주체사상 국가로 남아 있어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에서는 대화와 교류를 통한 남북 통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는 조선 시대의 유교적 성리학 전통과 강한 집단주의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도 하다. 

이로인해 강력한 외부의 개입이 없는 이상 남북한은 영원히 서로 다른 국가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