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mu.wiki/w/%EB%8C%80%EB%B6%81%2520%EC%84%A0%EC%A0%9C%2520%ED%83%80%EA%B2%A9#s-3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했지만, 

실행에 들어가기 직전에 전면전을 우려한 김영삼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이는 실제 협상결과를 숨기기 위해 퍼뜨린 이야기로, 

실제로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안보 비서관이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선제타격에 동조했지만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가 먼저 선제타격했을 때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과 피해 규모를 추산해보니까 정치적 뒷감당은 물론이고 

경제적 손실까지도 답이 없는 수준의 피해규모[2]가 나온다는 결과에 충격을 먹고 선제타격작전을 접고, 

김일성과의 화해를 위해 이전부터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김대중(당시는 정계 은퇴 후 해외에서 야인생활 중)의 비밀추천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특사로 파견해서 비밀회담 끝에 

선제타격은 없던 일로 하고 핵포기를 전제로 화해모드로 간 것이라고 한다. 

정세현 전 장관의 증언 보기.








나중에 "차라리 이 때 북한을 침공했었어야 했다"는 소위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도 있다.[3] 

1994년 당시 북한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붕괴 위기였고, 

중국군은 아직 현대화되지 않아서 미군은 커녕 핵을 제외하고 국군에게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으며, 

러시아는 강단도 없었고 무기력하던 보리스 옐친이 제대로 국정을 이끌지 못해서 제 앞가림도 하질 못했었다. 

그리고 미국은 9.11 테러 이전이라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렁에 발을 담그기 전이었고 

유럽 및 중동 주둔 미군까지 별 부담 없이 빼서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었다. 

비록 한반도 전체에는 어느 정도의 인명피해가 벌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방해 없이 북한을 완벽히 제압하고 

대한민국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적은 피해로 통일한국을 세울 수도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이다. #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한이 북한의 군사력을 확실히 압도하게 된 

2000년대 후반 이후에나 나오는 이야기지 당시의 상황은 달랐다. 

주로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20대 이하 밀덕들 사이에서 이런 주장이 횡행하는데, 

1993년 당시 국군의 전력은 지속적으로 현대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북한군의 물량을 질로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군의 군사력 증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K-2 전차, K-9 자주포, F-15K 전투기, K-239 천무, 한국판S-350 천궁지대공미사일, 

러시아의 기술이 녹아들어간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 이지스함 등의 고성능 무기들이 90년대 중반에는 없었다![4] 

지금은 고철 취급 받는 천마호 같은 북한군의 주력무기들도 당시까지는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구식화도 심하질 않아서 물량으로 충분히 우세를 점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들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을 압살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2020년 현재도 

여전히 국방부는 남한의 군사적 열세를 이를 악물고 주장하고 

일반인들이 여기에 넘어가는 판에, 

지금보다도 군사력 격차가 훨씬 적었던 데다가 6.25의 트라우마도 가시지 않았던 

1993년 당시에는 어느 국민도 남한이 - 아무리 미국이 있다고 해도 -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인 성공을 거두고 심지어 북진까지도 가능하다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 방위에 대해서 제대로 확신을 주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5] 

정작 미국 측 워게임에서는 북한이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와서 한국 국방부가 급히 나서서 반박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