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하드2'가 개봉했을 때를 기억한다. 1편의 성공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사람들은 후속작 역시 그 이상의 쾌감을 줄 것이라 믿고 극장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가 일상이던 시절도 아니어서, 영화 한 편 보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했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영화는 전편만큼의 긴장감을 주지 못했고, 마지막에 등장한 ‘항공유 폭발’ 장면만이 현실성 논란 속에 회자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기억에서 멀어졌다.

12월 29일은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사라졌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때 그토록 책임을 외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목소리들은, 사고의 장소가 전라도 무안이 되자 급격히 낮아졌다. 언론도, 정부도, 정치권도 이 사건 앞에서는 말을 아꼈다. 심지어 공개석상에서 유가족의 절규를 가볍게 흘려보내는 듯한 찢째명의 태도까지 문제 되었지만, 그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나 설명은 끝내 없었다.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 장면은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볼 만큼 충격적이었다. 불길과 폭발은 다이하드 2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렬했지만,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원인이 명확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구조물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어떤 판단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립적인 진상조사팀 구성도, 책임 소재를 가리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없었다.

이 침묵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처럼 보인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고, 지역 내부의 불편한 구조를 건드릴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덮고 가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같은 국민의 죽음은 ‘불편한 사건’이 되었고, 애도는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채 시간 속에 묻혀가고 있다.

무안공항 참사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외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구의 죽음은 국가적 비극이 되고, 누구의 죽음은 지역 사고로 축소되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이 참사가 이렇게 조용히 잊혀진다는 사실은, 사고 그 자체보다도 더 씁쓸하다. 그리고 이 침묵은 언젠가 또 다른 참사를 부르는 토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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