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칼럼]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의 자긍심ㆍ폐단 및 교훈 분석
김명수 칼럼니스트
경기데일리 : 202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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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의 자긍심ㆍ폐단 및 교훈 분석
■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1. 민족적 자긍심
1) 고구려 – 동아시아 최강 수준의 군사력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의 최대 영토 확장
중·일에 모두 영향력 행사
수·당 제국의 침공을 막아낸 국력
2) 백제 – 해상무역·문화 대국
한반도–일본–중국 남부를 잇는 해상 네트워크
일본 아스카 문화·불교 전파에 핵심 역할
세련된 조형예술(금동대향로 등)
3) 신라 – 삼국 통일
삼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민족사의 일체성을 강화
통일 직후 문화 성숙도 급상승(불국사·석굴암 등)
2. 폐단·약점
1) 왕권·귀족 대립
귀족 중심의 정치 구조로 인해 왕권이 불안정한 시기가 반복되었다.
2) 같은 민족끼리의 장기적 전쟁
200년 이상 삼국이 서로를 소모시키며 국가 역량 낭비하였다.
여기에는 중국 수·당은 삼국이 단합하지 못하게 계략을 사용했고
이는 결국 삼국이 서로 전쟁하는 결과를 낳았다.
“외세 이간책 → 동족 간 피흘림”이라는 역사적 교훈이 분명하다.
3. 교훈
내부 분열은 외부 강국의 개입을 불러온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은 오늘날 남북한의 통합보다는 현재의 분단상태를 선호하며, 다방면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 초한전, 그레이존(Grey Zone)전략 및 하이브리드 전쟁 등
■ 고려시대 (918~1392)
1. 민족적 자긍심
1) 강력한 자주성 – 거란·여진·몽골과의 대결
거란 3차 침입을 모두 격퇴
여진 정벌로 동북면 확보
몽골 침입에도 끝까지 항전(강화도 항전, 삼별초)
2) 세계적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세계 최고 수준의 목판 인쇄문화
고려청자: 중국 송나라에서도 최고급 예술로 평가
금속활자본 : 세계 최초(서양보다 200년 앞섬)
3) 문벌귀족→무신→신진사대부 변화
초기에는 문신귀족정권~중기에는 무인난후 무인정권~후기에는 신진사대부가 등장하여 개혁을 주도하여 조선왕조를 건국하였다.
2. 폐단·약점
1) 문벌귀족의 폐쇄성과 부패
세습 관료 기득권 형성 → 행정·군사력 약화
귀족들은 토지를 독점/세금은 면제 등은 고려붕괴의 결정적 요인(신진 사대부가 개혁을 요구)
2) 신분제도
고려에도 조선처럼 많은 노비가 존재했고, 신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엄격한 신분제사회였다.
노비의 비율은 대략 25%~30% 전후로 조선 초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3) 무신정권의 폭력공포 정치
최충헌 가문 장기 집권/ 정치 불안 지속
“무신정권은 경대승·이의민·최씨 무신정권 등으로 이어지며, 문신 학살, 사병정치, 고문·살육, 민란 진압(대량학살) 등 공포와 폭력을 기반으로 정권을 유지한 시기였다.”
4) 몽골 간섭기
국가 주권의 상당 부분 상실
과도한 군공·조공 부담
왕실 혼인으로 내정 간섭 확대
3. 교훈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발명이라는 과학적 재질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최첨단 반도체사업을 주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은 대장동사건 등을 보면 고려 지배층의 부패는 아직도 반복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 조선시대 (1392~1910)
1. 민족적 자긍심
1) 세계적 문명 창조
훈민정음 창제(1443) –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문자 체계
농업·천문·역법·의학 발전
실학(17~18c) 등 학문적 다양성 성장
2) 강력한 문치(文治)·법치 기반
경국대전, 과거제 등 제도화된 관료체계
초기 세종~성종기의 국가 운영 안정
3) 임진왜란 극복
왜란 시 이순신 장군(재해권 장악)과 백성들의 의병과 승병항전
명군과 연합작전으로 일본군을 격퇴
전쟁 후 상당한 전후복구도 이루었다.
2. 폐단·약점
1) 사색당쟁·붕당 정치의 격화
17세기 이후 정치가 이념투쟁 → 파벌투쟁으로 변질
국정 운영 기능 약화
※ 오늘날 정치양상도 이념투쟁ㆍ파벌투쟁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2) 신분제의 경직화
양반·중인·평민·천민 구조로 사회의 활력이 떨어짐
조선초기 노예는 전 국민의 30~40%, 중기(임진왜란 이후)에는 2%, 말기(정조 이후)에는 4~10%로 떨어졌다.
3) 양반계급의 부패(고려왕조와 유사)
토지독점과 세제문란으로 각종 민란발생
고려왕조보다 더 조직적(고종은 매관매직)
4) 국방력 소홀
조선초기에는 5위ㆍ어영청ㆍ훈련도감 등 정규군이 있었으나 후기에는 재정부족과 당쟁으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 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을 제압할 정규군 역량도 부족하여 청ㆍ일양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조선 정규군은 왕실을 지키는 경호원 수준이었으나 을미사변(일본군의 민비시해)조차 막을 수 없는 유명무실한 집단이었다.
5) 국제정세 변화 대응 실패
서구 열강·근대 문명의 도래에 적극 대응하지 못함
19세기 후반 외교력 상실 → 국권 피탈로 연결
3. 교훈
※ 제도 설계와 운영
고려·조선 모두 훌륭한 토지·세금·군역 제도를 설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귀족·지방 세력의 사적 이익으로 제도가 왜곡되었다.
※ 역사적 폐단 반복
조선의 당쟁과 붕당정치 및 심각한 이념갈등이 오늘날에도 답습되는 것 같아 매우 답답하다.
■ 종합 평가 및 현대적 시사점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삼국시대의 지역·세대 간 갈등, 고려·조선 왕조의 부패 구조, 조선 후기의 당쟁·붕당 정치등의
패턴이 반복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치·사회적 분열을 극복하는것이 시대적 사명이다.
2025년 12월 11일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김명수(육사31)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