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정찰기 EC-121은 프로펠러 비행기라서 시속 400km의 느린속도로 비행했지만 최첨단 레이더 장비를 통해 북한 전투기가 출격하면 미리 포착하여 공해상으로 달아났다.

<미군 정찰기 EC-121>
당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미그-15기의 최고속도가 마하 0.9 밖에 안되기에, 북한 전투기가 출격하면 정확하게 거리를 계산하여 영공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속도가 느렸던 미그-15기>
이러한 미군의 얍삽한 행동은 북한 사람들의 호전성을 자극하였다. 약이 오른 북한은 속도가 빠른 전투기를 동원해서 미군 정찰기를 격추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미군정찰기는 소련의 극동 공군기지가 있는 블라디보스톡을 정찰한뒤 북한 동해안 쪽을 자세히 살펴보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러한 정찰루트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북한은 함경북도 청진의 한 비행장으로 속도가 빠른 미그-21기 두대를 몰래 배치했다. 미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미그-21기를 분해해서 야간에 열차로 청진까지 싣고와서 대형 천막을 치고 그 속에서 미그-21기를 재조립했던 것이다.
미그-21기는 최고속도가 마하2로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였다. 한국이 최근에 개발한 KF-21 보라매의 최고속도인 마하1.8보다 더 빠른 것이다.

<속도가 빨랐던 미그-21>
미그-21은 미그-15보다 3배나 더 빨랐다. 이때문에 미그-15가 1분에 10km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면 미그-21은 1분에 30km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북한은 미그-21을 청진 비행장에 몰래 배치하고 미군 정찰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969년 4월 15일 일본 가나가와현 아츠기 기지를 이륙한 미 해군 EC-121 전자정찰기는 평소처럼 소련의 극동 공군기지가 있는 블라디보스톡을 정찰한뒤 북한 동해안 쪽을 자세히 살펴보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루트였다.
비행기의 콜 사인은 “Deep Sea 129”였다. 기내에는 8명의 장교와 23명의 엔지니어가 탑승하고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미국 해병대원이었다. 이들 중 9명은 러시아어와 한국어의 암호통신을 해독하는 언어학자들이었다. Deep Sea 129에 주어진 임무는 북한 청진-길주 근해의 “무스 포인트(Musu Point)”라는 곳에서 소련과 북한 사이의 전파 정보 수집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 임무는 EC-121기가 120해리(222km)의 타원형 궤도 코스를 따라 비행하고 전파를 감청한다는 것에서 북동쪽으로는 소련을 타겟으로 하고 있었다. 또한 이 임무는 명목상으로 미국 태평양 해군 제7함대의 지휘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시행한 첩보 활동이었다.
미군 정찰기가 북한영공으로 들어오자, 북한군 장교들은 "간나새끼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라고 외치며 미그-21기 두대를 이륙시켰다.
미국의 최첨단 레이더가 북한 전투기를 포착했지만 전투기의 기종은 알수 없었다. 평소처럼 속도가 느린 미그-15기가 출격했다고 판단하고 영공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북한 전투기의 추격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북한의 미그-21기는 4분 만에 미군 정찰기를 따라잡아 청진 남동쪽 160km 해상에서 격추시켰다. 탑승자 31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당시 북한 조종사는 "내래 맞추지 못하면 전투기로 갖다 박을 각오로 임했습메다."라는 인터뷰를 남겼다.

분노한 미국은 원산 앞바다에 항모를 비롯한 40척의 함정을 띄워 무력시위를 하고 핵무기를 사용한 보복 공격까지 계획했지만 미국의 닉슨 정부는 시간이 지나고 여론이 수그러들자 함대를 철수시켰다. 당시 베트남전이 한창이었기에 이중전선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북한사람들이 호전적일 뿐만 아니라 치밀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미국은 북한을 얕잡아보고 위험한 군사임무를 지속했다가 결국 사건이 발생하여 애꿏은 군인들이 희생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