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1일 미군이 38선을 넘어서 북진하자, 중공의 마오쩌둥은 10월 8일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하는 북한을 돕자, 抗美援朝)라는 명분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바야흐로 미중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20만명이 1차로 압록강을 도하하여 북한에 진입했다. 압록강 다리는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파괴되었기에 널빤지로 부교를 만들어서 건너왔다고 한다.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는 김일성을 찾아갔다. 당시 김일성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평안북도 산악지역 탄광갱도에 숨어 있었다. 



<펑더화이와 김일성>


펑더화이가 북한군 병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물어보자, 김일성은 3개 사단(3만명)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펑더화이는 "그깟 군사력으로 무얼 하겠느냐?"면서 면박을 주고 북한군의 지휘권도 가져가게 된다. 당시 펑더화이는 김일성을 속국의 지도자 또는 애송이로 취급하면서 무시하였다. "너희 민족은 무슨 전쟁을 이따위로 하느냐?" 비난하면서 폭행도 서슴치 않았다.

1951년 지암리 전투에서 북한군 1군단이 문산-파주 일대에서 중공군 부대에 상황을 알리지도 않은 채 패주하자 측면이 노출된 중공군 65군, 63군의 전선이 연쇄적으로 붕괴하여 대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6천명의 병력을 어이없이 잃은 펑더화이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광둥성 자오칭도시보, 홍콩 명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일로 펑더화이가 김일성의 뺨을 두 대 쳤고 얼굴이 퉁퉁 부은 김일성은 일주일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