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총
1905년부터 일본군이 사용했던 제식소총이 38식 소총(6.5mm)이며, 2차세계전때 화력문제가 대두되자, 1941년 7.7mm로 구경을 확대하여 화력을 보강한 것이 99식 소총이다. 38식/99식 소총 모두 중공군이 대량으로 노획하였다. 이후 중공군 보병부대의 제식소총으로 사용되어져서 6.25전쟁 때 수많은 국군, 미군, UN군을 살상하였다.

<38식 소총>

2. 89식 척탄통: 휴대용 박격포
89식 척탄통은 2차세계대전때 일본 육군의 휴대용 박격포(유탄발사기)였다. 중공군이 노획하여 제조방법까지 확보하게 된다.



제조방법이 간단하여 공업력이 떨어졌던 당시 중국도 제조할 수 있었기에 중공이 대량으로 양산하여 6.25 전쟁때 사용하였다.
무게가 가볍고 휴대가 편리해서 중공군이 쏘고 후퇴하는 기동전략에 사용하였다. 한반도가 산악지형이어서 고지 쟁탈전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평지전투와 달리 고지 쟁탈전은 무기의 휴대성 및 기동성이 중요하다. 수많은 국군, 미군, UN군을 살상한 무기였다.
3. 94식 산포
'94식 산포'도 2차세계대전때 일본군이 사용하던 무기였다. '산포'란 산악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야포를 말한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중공군으로부터 노획한 94식 산포>
1930년대부터 오사카 포병공창에서 생산되었는데 가성비가 뛰어났다고 한다. 최대 사정거리인 7km 밖에 목표에서 오차가 약 180m밖에 안났으며, 3km 떨어져있는 목표에서는 오차가 30m에 불과할 정도로 명중률이 높았다. 무게가 가볍고 고작 11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분해/조립이 쉬웠기에 기동성이 좋았다. 또한 대인전에 적합한 75mm포를 사용하여 기습 전술에 적합했다. 이 산포 공격으로 인해 2차세계대전때 연합군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중공이 94식 산포와 생산공장까지 확보해서 대량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때 수많은 국군, 미군, UN군을 살상하였다. 1950년 겨울 장진호 전투때 중공군이 밤마다 미군 진지쪽으로 94식 산포를 발사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군은 육군 1만8천명, 해병대 1만2천명 등 총 3만명이었다.>

<매서운 추위와 중공군의 기습전술에 지쳤던 미군>

<장진호의 매서운 추위에 오일이 얼어붙자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미군의 셔먼탱크>

<장진호에서 철수하는 미군>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 6,5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미군은 94식 산포의 기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대포병전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공군이 매복, 포위, 기습 전술에 워낙 뛰어나서 상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1.4후퇴로 37도선까지 밀린 후 다시는 38도선 이북으로 북진하기 어려웠던 것을 보면 알수 있다.
- 결론
2차세계대전때 일본군의 무기는 미국산, 독일산에 비해 성능이나 화력면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무게가 가볍고 휴대성이 뛰어나서 산악 게릴라전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장점이 한반도의 산악지형에서 위력을 발휘하여 6.25전쟁때 중공군이 구식 일본무기를 활용해서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미군과 UN군을 이겼다.
한반도는 산악지형이기에 이러한 환경에 맞는 무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