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6.25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는 이승만정부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시도인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났다. 이승만 정부는 미국식 정치체제인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냈으나 1952년 1월 18일 부결되었고, 국회에서는 일본식 정치체제인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이승만 대통령은 내각제 세력은 빨치산이며, 빨치산 남도부 부대가 부산 금정산 일대에 잠입했다며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전라남도·전라북도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계엄령을 뒷받침 할만한 군사력이 없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2개 중대 병력만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육군 참모총장(이종찬 중장)에게 부산으로 2개 대대의 병력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종찬 장군은 이를 거부했다.

당시 이종찬 장군은 강원도 간성의 11사단 창설식에 참석하던 중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였다고 한다. 






대구의 육본으로 급히 돌아온 이종찬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병력배치를 거부하고 "육군장병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육군본부 훈령 제217호를 공표하였다. 군인은 군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이종찬 장군을 부산으로 호출하였다. 이종찬 장군은 참모 몇명과 부관만 대동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는 대통령 명령을 거역했기에 체포 및 암살 위험에 처했지만 미군이 이종찬 장군을 보호했다.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이 이종찬 장군에게 대통령 권력에 맞선 용감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강력한 대통령제가 들어서서 독재체제로 국가가 운영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것 같다. 






이후 이종찬 장군이 임시정부로 들어가자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으로 병력을 보내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이종찬 장군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장하며 또다시 거부하였다. 옆에 앉아있던 밴 플리트 장군도 이종찬 편을 들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기분이 엄청 상했다고 한다. 부산으로 피난와서 힘이 없으니까 군 최고통수권자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분노한 이승만 대통령은 이종찬 장군을 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주위에서 말려서 그만두고 육참총장에서 해임시켰다.








이종찬 장군(일본육사 26기)은 박정희 대통령(일본육사 57기)의 일본육사 선배였다. 이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이종찬 장군을 잘 따르면서 '각하'라고 불렀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혁명을 기획할때 이종찬 장군에게 "비밀리에 4,500명의 병력을 확보했다"고 얘기하지만, 이종찬 장군은 군사혁명을 반대하였다. 군인은 군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박정희 소장: "제가 확보한 4500명의 병력은 언제든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약하고 썩어빠진 나라를 개혁해서 공산화를 막아야 합니다!"

이종찬 장군: "지금 나라상황을 볼때 4,500명이 아니라 450명의 병력만 가지고 밀고 들어가도 혁명에 성공할 것이오...."

박정희 소장: "1952년 부산정치파동때 나는 각하께서 병력을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이승만 정부를 전복시키길 바랬습니다. 지금까지 이승만 정부의 실정들을 보면 그때 전복시키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이종찬 장군: "이보시오 박장군! 내가 무슨 권리로 그런 일을 한단말이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였지만, 나는 일본군 출신이었어. 이승만 정부가 아무리 실정을 해도 일본군 출신인 내가 어찌 대한민국 대통령을 몰아낼 수 있겠소?" 



이종찬 장군은 군사혁명을 지휘해 달라는 박정희 소장의 요청을 거부하고 군에서 물러났다. 

이후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지만, 이종찬 같은 군인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육군본부 훈령 제217호, 육군장병에 고함〉
육군본부 경북 대구

군의 본연의 존재 이유와 군인의 본분은 엄연히 확립되어 있는 바이므로 지금 새삼스러이 이를 운조할 필요조차 없는 바이나 현하 미묘 복잡한 국내외 정세가 바야흐로 비상 중대화되어 가고 있음에 감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에 대하여 투철한 인식을 견지하고 군인으로서 그 거취에 있어 소호의 유감이 없도록 육군 전 장병의 냉정한 군리판단과 신중한 주의를 환기코자 하는 바이다.

군은 국가민족의 수호를 유일한 사명으로 하고 있으므로 어느 기관이나 개인에 예속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변천 무쌍한 정사에 좌우될 수도 없는 국가와 더불어 영구 불멸히 존재하여야 할 신성한 국가의 공기이므로 군인의 본분 역시 이러한 군 본연의 사명에 귀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인 된 자, 수하(誰何)를 막론하고 국가방위와 민족의 수호라는 그 본분을 떠나서는 일거수일투족이라도 절대로 허용되지 아니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군이 현하 혼돈한 국내 정세에 처하여 그 권외에서 초연하게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고, 특히 거번 발생한 일대 불상사인 서창선 대위 피살사건에 대하여서도 실로 통분을 금치 못하였으나 역시 법치국가의 군대로서 군의 본질과 사건의 성질에 비추어 냉정히 사태의 추이를 직시하면서 공평무사한 사직의 손으로써 법률에 의하여 그 시비곡절이 구명될 것을 소기하고 있는 것도 군의 존재이념에서 볼 때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밖으로는 호시탐탐 침공의 기회를 노리는 적을 대하고 안으로는 복잡다단한 제반 정세에 처하여 있는 군에 있어서 군인 개인으로서나 또는 부대로서나 만약 지엄한 군통사계통을 문란하게 하는 언동을 하거나 현하와 같은 정치변혁기에 수(垂)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의식, 무의식을 막론하고 정사에 관여하여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건군 역사상 불식할 수 없는 일대 오점을 남기게 됨은 물론 누란(累卵)의 위기에 있는 국가의 운명을 일조에 멸망의 심연에 빠지게 되어 한을 천추에 남기게 될 것이니, 국가의 운명을 쌍견(雙肩)에 지고 조국수호의 성전에 멸사 헌신하는 육군 장병은 몽상간에도 군의 본연의 사명과 군인의 본분을 염념(念念) 명심하여 그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여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충용한 육군 장병 제군, 거듭 제군의 각성과 자중을 촉구하노니 제군의 일거일동은 국가의 운명을 직접 좌우하거늘 제군은 여하한 사태 하에서라도 신성한 군통사계통을 엄수하고 종시일관 군인의 본분을 사수하여 오로지 조국과 민족의 수호에 매진함으로서만이 조국의 앞길에 영광이 있다는 것과 군은 국가의 공기임을 다시금 깊이 명기하고 각자의 소임에 일심불란 헌신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총참모장 육군중장 이종찬(李鍾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