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님들께서 아뢰야식에 쌓인 카르마를 해소하실 수 있는
앎의 기회를 주시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회일 뿐
그 인연이 닿았을 때에 어떻게 풀어가실지는 개인의 영역입니다.
고통은 독촉과도 비슷하지요?
약간의 귀뜸으로도 해결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기도 하고
표정이나 낌새만 보아도 해결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기도 하지만
어떤 선생님들은 처음 말했을 때에는 알았다고 하며 무시하고
두번째 말했을 때는 꼭 지키려했으나 사정이 있었다며 속이고
여러차례 반복되면 상대방은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며
그 선생님에게 받은 고통을 돌러주려 하게 됩니다.
앎의 기회도 이와 같읍니다.
자신이 가해 했던 일에서 한번만 당해봐도 진심으로 뉘우치는 분도 있지만 수백번을 당해도 점점 원한만 커지는 분이 계십니다. 따라서 독촉의 세기가 세짐과도 같이 고통의 크기도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카르마의 영역의 앎이 8식론의 영역입니다.
9식론에서는 아말라식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중생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마음으로, 궁극적인 깨달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즉 이것을 불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