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이런 식의 조선일보의 ‘현대사 접근법’에 독자에게 <지만원식 피해>를 유발하고, 이익은 조선일보 계열 노인들이 얻자는 발상으로 본다. 상식적으로 조선일보 독자도 보호받아야 한다. 이렇게 남로당 월북문인 소속자들이 작심하고, 전라도식 군자의 복수라고 그 시절에 자신들의 가해자 편을 드는 사람들을 80년 넘어서 보복하는 상황에서, 여기에서 편을 드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 시절에 일반국민이었다고 말하는게 일반국민에게 맞는 입장이다. 그 시절에서 남로당의 반대편을 선택하느니, 차라리,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에 대한 직접 비판이 적절하다.
한국 사회의 코어 귀족층의 생각대로, 영화 [건국전쟁]과 영화 [길위의 김대중]이 공존하는 영남식 증산교 상생은 ‘상상’일 뿐이고, 실제는 그대로 믿는 자는 대중독재 파시즘에 탈탈 털린다. 현실의 작동은 전라도 동학 공산파의 일당독재일 뿐이다. 순간 누구나 이해한다. 영남에 이게 가능하다고 적힌 족보는 과거에도 전라도에 패배자 양반귀족이었을 것이라고. 성리학적 사고관으로 패배자에 나르시시즘적 기록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2025년 현재의 시점에서 ‘남로당 문화의 전체적 진실’은 1987년 월북문인 해금 이후의 문화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월북문인 해금은 한마디로 말해서 김대중 지지층은 민주주의 민족전선이요 호남동학파의 문제다. (묘한 사실은 국민에게 들이박으라고 충동질하는 분들은 ‘원불교 박지원’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언제나 숨긴다.)
조선공산당운동은 조선공산당과 연결된 동학신앙 세계관을 이해해야 하고, 동학신앙은 호남식 맹자 읽기를 이해해야 한다. 남로당은 그 세계관에 연장된 것이다. 남로당에 가입을 안한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세계관과 연결이다. 그렇다. 신채호 선생 추종파벌이 소수파는 이승만에 줄서고, 다수파는 원불교 공산파로 남로당에 줄섰던 것이다.
그러면, 일반국민에게 무난한 표현은 ‘쌍방 폭력’이 맞지 않나? <동족상잔의 전쟁>이 맞지 않나?
이런 신문기사의 의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원불교 공산파 유공자 기득권자, 진실 정의론을 해치지 않고, .... 이들에 최대치의 염장을 지른 사람을 유공자로 낑겨달라. 오히려, 1당독재로서 어마어마한 동학 공산파 귀족들의 기득권을, 인구절벽 저출산 상황에서 받아내는게 앞으로도 가능한가? 이게 진짜 따졌어야 할 문제다.
남로당 중심의 역사기억은 원불교 백낙청 사단의 패권 하에서 보호가 된다. 이들에 1도 벙긋안하고 과거 역사서술을 이들의 반대편에 줄 선다? 그냥 그 시절에 남로당 반대편에 선 분들을 위해서 탈탈 털리라는 말이다. 전심전력으로 ‘원불교 파시즘’이 세계적 악질종교임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현재가 우선이다.
남로당 세력의 ‘핵심 정서’는 서울대 국문과 김윤식 교수와 유시민이 포함된 그룹인 중앙대좌익의 원조인 임헌영교수가 논한 카프 해소파와 비해소파 구분과 연결된다. 카프 비해소파는 곧 일제 강점기에 친중 마을이 고스란히 친 소련으로 이어지는 데 그 씨족정서를 고스란히 지켜낸 이들이다. 이들은 월북해서 북한공산당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월북문인이자 카프 비해소파에서 민촌 이기영이란 분이 유명하다. 이분의 소설로 [개벽]이란 소설은 주목해야 한다.
주체사상의 주, 마르크스의 마도 없이, 오직 동학신앙만으로 공산혁명이 가능하다고 월북문인인 카프 비해소파 민촌 이기영은 주장했다. 이 정서가 고스란히 현재에 윤석열씨 탄핵까지 이어진다.
해방공간남로당 정서 → 4.19 공간 장면(김대중 계보의 조상)의 남로당 민족주의 → 유신반대운동 → 광주민중항쟁 → 87년 (일반인 기억과 전혀 다른 이분들 기억)→ 2000년 6.15 → 노무현 10.4 → 문재인 판문점 평양선언 이렇게 이어진다.
과거의 역사평가는 현재의 지배권력이 보장하는데, 현재의 지배권력은 아~~~~~~무것도 비판안하고, 현재 지배권력이 극강으로 싫어하는 서술을 하면서 뭉쳐달라?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예전에는 남로당 하면 전부 소련공산주의 수입인줄 알았다. 박헌영이 조차도 국제레닌학교(소련)에 중국어 번역본 스탈린책 봤다고 신고했다.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은 중국경전에 달인이다. 공산파 2인자 박은식 선생도 중국경전의 달인이고 서양사상을 모른다. 월북자들 대부분이 똑같다. 소련이 공산파 두목으로 우대한 김구 선생과 함께 방북한 김규식 선생의 워딩도, 이게 공산파의 워딩인가? 싶다. 그러나, 전라도식 유교의 공산주의 내재가 베이징 유교와 통함을 이해하면, 곧 동학신앙으로 얼마든지 공산당 언어가 가능함이 나타난다.
과거 역사평가가 과도하게 한측에 편향되고 있다. 지금 이 신문기사대로 해석하면, ‘피해 호소’로 돌아가는 전라도식 유교의리에 덧입혀진 일당독재 파시즘 권력(일당독재 스탈린주의 권력이기도 한)에 거의 기름을 붙여서 활활 타게 한다.
<남로당 중심의 역사관>→ <현재의 촛불 권력> →<노무현 ~ 문재인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부동산 부채공화국>
다시 말해서, 부동산 부채공화국이 뿌러지고, 부채공화국이 모조리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귀족가문 기득권 위한 설계였으니, 부동산부채공화국이 뿌러질 때, 국민이 그들을 권력밖으로 쫓아내는 일에서만 역사 평가가 수정될 것이다.
경제에서도 중국자본을 쫓아내고, 반중이 국민상식으로 자리하게 함이 이러한 역사평가 동의보다 우선이다. 다시 말해서, 국민에 ‘대중독재 파시즘’으로 고정하는 역사기억에는 배후에는 권력이 있다.
1928년 소련공산당 12월 테제는 조선공산당해체론이었다. 이에 공산당 해체하고 김일성 모택동 연대 뿐만 아니라, 해방공간 남로당도 모택동식 민중민주주의 수입을 한 역사가 있다. 또, 박근혜 때 사드 보복 때 중국인이 속내를 밝혔는데, 중국인의 친한은 6.25 전쟁 때 인민해방군으로 한미동맹 반대편으로 참여한 기억 뿐이라고 한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야
원불교 백낙청도 공격안해.
그 좌편향 역사뿌리인 노무현 문재인 부동산 부채공화국도 비판안해.
그리고 친중권력도 비판안해.
그리고 그들이 최대치로 강해진 시점에서 그들에 최대치의 염장을 지르는 역사평가를 한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야 뒤로 봐주겠지. 이런 논조에 동의하는 자를 가만히 놔두겠나?
결국, 통일담론이란 게 이런 식이었다. 법, 규칙, 규범으로 공동체를 혀형성한다는 게 아니라, 귀족의 이익만 보장하는 최대치의 자의적 상상과 국민에 이를 하라는 가스라이팅이다.
역사가 국민에 이렇게 피곤하게 해도 되나? 중국경전식 고대 중세는 된다고 하면, 그놈의 중국경전 다 뿌러뜨릴 것이다. 중국인이 말하잖아. 중국경전 같은 중국 수출품 가지고, 민족 운운하지 말라고. 다 중국 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