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중생은 영혼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아뢰야식이라는 모든 카르마가 담긴 근원의식이 윤회하여 새 몸을 받는 거임
새 몸을 받으면 새로 접하게 되는 색수상행식이 더 리얼하고
진짜 나라는 착각이 들기 때문에 아뢰야식을 금방 잊게 되지만
아뢰야식은 항상 작동하고 모든것을 저장함
특히 이전 몸일때 가해했던 것의 피해자에게 그대로 당할 수도 있는데 이번 몸에서는 억울하니 보복을 하게 될 확률이 높음, 이걸 당하고 용서해야 끝없는 보복에서 벗어날 수 있음.
그리고 즐거움,갈애들에 대한 것도 모두 벗어내면
깨달음의 기회가 오는데 이것마저 통과하면 부처가 되는거다
부처는 신이 아님, 그런데 당해도 괴롭지 않은자이며 복수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에
세상을 움직이는 마귀(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신)가 조종하지 못 하는 자다.
결국 마귀가 가장 두려워 하는 자가 부처다
- 업장을 녹이는 참회: 용서와 더불어 자신이 지은 악업을 진심으로 참회하는 것은 업보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그러나 참회만으로는 모든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는 과정 또한 필요합니다.
- 집착을 끊는 수행: 윤회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아집'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의 번뇌와 집착입니다. 용서하고 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복하고 싶은 '마음' 자체의 근원인 집착을 끊어내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 지은 업보에 대한 감수: 불교에서는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는 결국 자신이 받게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과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업장을 소멸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윤회의 굴레를 끊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보복의 멈춤: 보복은 새로운 악업을 짓는 행위이므로, 멈추는 것은 더 이상의 악업을 쌓지 않는 길입니다. 보복을 하지 않음으로써 악업의 굴레가 끊어지고, 이는 해탈에 다가서는 중요한 발걸음이 됩니다.
- 무루(無漏)의 수행: 윤회의 동력이 되는 업은 '유루(有漏)의 업'입니다. 즉 번뇌에 물든 상태에서 짓는 모든 행위가 윤회를 반복하게 합니다. 반면, 깨달음을 향한 수행은 번뇌에 물들지 않는 '무루(無漏)의 업'이므로 윤회를 벗어나는 길로 이끌어 줍니다.
- 궁극적인 깨달음: 위 조건들을 충족하는 것은 결국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모든 번뇌와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고, 아뢰야식에 저장된 모든 번뇌의 씨앗이 사라질 때, 비로소 생사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