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성리학이란 학문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악영향을 끼쳤다.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 시대때 만들어졌다.
중국 송나라는 문치주의로 인해 군사력이 약했기에 북방민족들에게 여러차례 짓밟혔다.

중화사상에 빠져있던 중국 지배층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왜 우리 송나라는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때처럼 강성하지 못할까?
송나라 사대부들은 외래종교인 불교에 화풀이를 했다. "불교는 거란, 고려, 서하, 여진 같은 오랑캐들이 믿는 종교이기에 배척해야 한다! 우리 중화민족 성인들의 사상(유교)을 무시하고 오랑캐들의 사상(불교)를 따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당시 유교사상은 그저 예법이나 학문으로만 머물러 있었기에 불교를 이기기 위해 철학적인 틀을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성리학이다.

주자: "세상은 이와 기로 나눠지고 이것을 토대로 세상만사를 깨우칠 수 있다."
하지만 성리학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관념적인 이론들 투성이었다.
이것은 금나라에 밀려서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난 남송인들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명분론적 사고(주리론, 정신승리)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비록 양자강 이북 영토(중원)를 오랑캐에게 빼앗겼지만 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원래 우리 중화민족의 전통을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
성리학이 폐쇄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남송인들의 현실부정 사고관 때문이었다.
결국 중국의 학문은 실용학문이 아닌 관념적 철학이 전부였고 문명의 발전에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 뿐만 아니라 유교(성리학)를 받아들인 조선, 일본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에도막부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교호개혁은 중농억상과 검약이라는 중국식 유학사상에 기반하여 상업을 희생시켰다.
특히 중농억상 사상에 따라 상업을 천시하니 자본이 축적되지 못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자본이 축적되고 축적된 자본을 과학기술에 투자하면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근대화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자본이 축적되기도 전에 상업의 싹이 잘려서 문명과 학문이 더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중국, 조선, 일본의 지배층들은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사회가 불안해지면 사회기강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상업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동아시아는 서양에 의해 피동적으로 근대화를 이루게 되고 오직 해외유학을 통해서만 학문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