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고당전쟁(645년)과 제2차 고당전쟁(661년)은 16년 정도 시차가 난다. 

이 시기때도 고구려와 당나라는 동북아시아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장소는 내몽골 초원이었다. 베이징 정북쪽 내몽골 지역에 '패상초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친고구려계 유목민족과 친당계 유목민족들이 각각 고구려와 당나라의 지원을 받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 친고구려계 유목민족: 말갈(퉁구스계), 거란(몽골계), 서돌궐(투르크계)
- 친당계 유목민족: 동돌궐(투르크계), 실위(몽골계), 습족(몽골계), 해족(몽골계)


<고구려와 당나라의 격전지였던 패상초원 모습>
 
                                   <오늘날 패상초원에서 방목되는 가축의 수는 15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 658년 적봉진(赤烽鎭) 전투 
서기 658년 여름 6월 당나라 영주 도독 겸 동이 도호 정명진(程名振)과 우령군 중랑장 설인귀가 군사를 거느리고 내몽골과 요서지역의 고구려 영토를 기습 침공하였다. 당나라 설인귀는 이 때 처음으로 장군이 되어 군을 직접 지휘하게 되었는데 고구려의 적봉진(내몽골자치구 츠펑 시)을 함락시키고 고구려 군사 100여명을 포로로 잡는 공을 세운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장군 두방루(豆方婁)에게 3만의 기병을 파견하여 반격하였고 정명진과 설인귀의 당나라 군에 대적하여 초원지역에서 대규모 기병전이 벌어졌다. 

 
<고구려 개마무사의 돌격>



 
<고구려의 영토였던 적봉진은 베이징 정북쪽 내몽골 초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 659년 횡산(橫山)·석성(石城) 전투
다음 해 659년 겨울 11월, 이번에는 당나라 우령군 중랑장 설인귀가 처음으로 단독으로 군대를 지휘하여 다시 내몽골의 고구려 영토를 침공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장군 온사문(溫沙門, 바보 온달의 손자)이 당나라군을 요격하기 위해 출병하여, 횡산에서 설인귀가 이끄는 당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또한 이어서 설인귀의 당나라 군은 석성으로 침입하여, 고구려 군과 전투를 벌였다. 특히 이 전투에서는 당나라 측 사서에 당시 지휘하던 설인귀의 활약이 묘사되어 있는데 설인귀는 단기로 진격하여 고구려 군의 궁사를 생포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석성 전투가 시작되자 마자, 고구려 군에는 한 신궁(神弓)이 있어서 원거리에서 연속하여 당나라 군의 병사 10여명을 사살하는 신기를 보이자, 설인귀가 몰래 직접 말을 몰고 후방으로 기동하여 달려 들어서 그 고구려 신궁을 생포하였다.
 
<당나라 최고의 선봉장이었던 설인귀>




이때 내몽골 초원에서 고구려와 당나라간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고구려 연개소문과 당나라 설인귀 장군의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구전노래가 몽골인 대대로 전해졌다고 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몽골 전통악기 마두금을 연주하면서 이 구전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몽골인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몽골 전통악기 '마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