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은 명나라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명나라는 후금군을 상대할 야전군이 모두 전멸하였다. 누르하치는 요동 공략에 앞서서 명나라에게 최후의 통첩을 하였다.
"나는 만력제의 핍박을 받아 7가지 원한이 있어서 명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우리 여진 땅에도 모든 것이 다 있기에 명나라 본토(중원)를 침공할 생각은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조건을 수용하라!"
1. 전쟁의 책임이 명나라에 있다고 인정하라.
2. 우리의 동맹국인 몽골의 칼카5부에게 상을 내려줘라.
3. 요동땅을 우리에게 할양하라.
요동땅을 넘기는 조건은 2가지로 제시하였다.
1. 요하를 경계로 동쪽 지역을 후금땅으로 인정하라.
2. 만약 태자하를 경계로 한다면 후금에게 조공을 바쳐야 한다.

너희가 화친을 택하면 후금, 몽골, 명 3국이 동맹을 맺고 교역을 하며 영원히 평화롭게 공존할 것이다.
만약 전쟁을 원한다면 다시는 평화는 없다! 너희 명나라가 멸망할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있다면 나를 백두산까지 몰아붙여라! 그렇지 못하면 내가 너희를 남경(난징)까지 몰아붙이겠다!



중화사상에 빠져있던 명나라는 누르하치의 조건을 수용할 수 없었고 전쟁이 계속되었다. 결국 베이징의 명 조정은 1644년 멸망하게 된다. 중국본토로 들어온 후금군(청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1645년 5월 초 남경(난징)에 입성하고 명나라(남명)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이로써 중국 한족은 또다시 이민족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가 이민족 왕조였다는 것은 중국 한족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