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숭배문명’으로 노인들의 노예로 젊은층을 보는게 아니라, 민주주의 본래의 지지층 의사표현 대리정치가 맞다. 레이건 시대에 복지 문제를 크게 도려내고 시장 본래의 제도에 맡겼다. 그 레이건을 옹호하는 미국 공화당이 지금 복지를 쟁점화하지 않는다.
진짜 한국정치의 문제점은 ‘일반형 복지’도 아니라 김대중 복지를 윤석열 정부 내내 1도 안 건드렸으면서, 레이건 시대의 반 복지논리와 연동된 군사정권의 반 복지의 표현을 빌려온다. 실제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노인 저학력층만 물개박수로 이끈다.
레이건 시대 반 복지 논리는 순수한 종교개혁 정신과 연결된 근대계몽주의 연장선이다. 반면에, 군사정권 반 복지 논리는 성장으로 번 돈을 재투자해야 하며, 분배하면 성장이 어렵다는 전혀 다른 논리다. 그러나, 지금의 국힘 조기대선용 반복지는 ‘원불교’(사탄교)에 깔린 중용 논리로, 국힘은 중용을 지켰는데 민주당은 못 지켰다는 샤머니즘적 자의성으로 간다. 사실 보수층 원래 젊은 세대는 ‘김대중경제학’의 설계자체가 폰지사기다 라고 본다.
김대중의 복지설계는 “폰지 사기”의도다.
유신독재가 1인 지도자 중심으로 ‘충성/반역’을 내세웠으면,
김대중체제는 1당독재 상징인 ‘대동세상’(천도교 동귀일체, 원불교 일원상진리, 증산교 해원상생) 중심으로 단합을 주도한다.
유신체제의 국가는 돈 안주면서 균형잡는 정부라면,
김대중체제의 국가는 노론독재 때 고종황제가 노론독재에 쳐발리면서 노론귀족들 무한보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 배급제”와 “김대중체제 복지”는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같다.
배급제가 있기에 ‘당 국가’로서 이익을 독점한 귀족이 귀족연합(당)의 이으로 神이 된다.
김대중체제의 복지는 남북문제로 북한중심으로 처주는 공산마을에 말 잘들으면 준다는 자기편 챙기기다. 그래서, 자기편 귀족연합을 신으로 보게하는 계기다.
스웨덴 총리는 복지는 국민의 집이라고 부른다. 그 복지 설계를 위해서 국민의 동의를 받고, 금융수학을 통해 설계한 것을 복지로 본다.
지금 한국의 복지는 <노론독재>때 ‘대동미’(즉, 백골징포와 연결된)의 연장이며, 박헌영의 ‘8월테제’(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에도 이어지고, 이 논리의 연장이다. 민정당 반공교육이 김대중 복지체계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목적이 결국은 정부에 말 잘듣게 길드는 어떤 군중을 목적하기에, 이게 불가능해지는 시점을 상당히 두려워한다. 재원이 바닥나면 6.25 전쟁 때 가차없이 원색적 약탈경제로 나아갔다.
조갑제씨 영향 받은 노인 정치인들은 군사정권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원불교 박지원이 싫어하는 김대중 시스템의 비판을 안하고 빠져나가는 기회를 만든다. 정작 보수유권자는 도대체 뭘 우리를 대변하는건데? 조갑제 세계관에 길든 정치인들은 환멸을 느끼게 한다.
방송은 공산국가 수준으로 젊은 층 배운 사람 눈에는 지속불가능한데, 지속가능하다는 착각을 심는 방송광고로 일관했다. 언제? 윤석열 정부 기간 내내 그러했다. 조갑제 추종자들이 레이건 시대의 영남 씨족의 기억만으로 고정하여 현실 부적응 시키면서, 실제 젊은층에 느끼는 영역에서는 다르게 나아갔다.
부동산 자본시장을 가계부채 유발하여 부풀리고, 그 개평 뜯는 수준으로 경제민주화라 하여 세금살포 나아간다. 그런데, 부동산 자본시장이 대 박살나면, 이 설계는 모든게 끝이 난다.
민주당은 대대로 전라도 사대부 통치학으로 선물로 길들이는 노비층에 대한 향수가 있다. 실제의 복지가 아니라 이런 마인드로 설정된 모든 것이 경제수학의 복지 자체가 아닌게 문제다. 민주당의 전라도 사대부 통치학은 매우 공산주의적이며, 조갑제처럼 한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영어권에서 같은 내용을 분석하면 호남에서 북한 공산당식 공산주의정서가 파생됐다는 사실을 무난히 이해할 것이다.
분배냐 성장이냐 이 논리는 군사정권 때 재벌들이 번 돈은 재 투자해야 한다는 그 시절 판단을 전제한다. 지금은 설계 자체가 전라도 사대부들의 통치학으로서 백골징포와 연결된, 귀족들의 선물 정치를 위한 부담의 엽기적 전가와 연결된다.
설계 자체가 잘못이다.
이 말을 ‘협치’란 말을 강요당하는 지난 30년의 보수정당은 말을 못한다.
경선에서 의제 설정이 과도하게 노인 편향이다.
<거덜>이 걱정이란 말은 레이건시대 전두환 체제 재벌들의 논리였다. 지금에서는 김대중 때부터 폰지사기형으로 설정되고, 촛불두목 원불교 백낙청은 자신의 창작과 비평에서 기본소득을 북한식 배급제로 당 국가에 줄세우는 의미로서 바라보면서, 시장경제 자체를 발본적으로 끝내는 것으로 본다.
설계 자체! 가 문제인데, 김문수씨나 국힘 조기대선 출마자는 말을 못한다. 한동훈은 거론을 절대 못할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