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김경율의 ‘노이즈’가 시끄럽다는 생각에 대하여-

원래, 군사정권 한국교회의 출애굽기에 대한 교회 설교문은, ‘애굽=북한땅’, ‘출애굽=월남’ 상징이 일반적이었다. 반공실향민 중심의 기독교 체험이었다. 이 설교문이 한번에 좌파 두목 문익환 목사에 의해서 무너졌다. ‘애굽=군사정권’이었다. 반공실향민에 낙원이 남로당층에서는 군사정권 대한민국이 애굽땅의 박해일 수 있다.
그러나, 토건 공화국의 미래를 논하며, 부동산 폭락론을 논하는 이들에게는 ‘김대중 경제학’으로 나타난 ‘김대중체제’가 거대한 애굽땅이고, ‘문재앙 파라오’ ‘노무현 파라오’ 등으로 나타난 것이겠다.
이명박 박근혜는 <김대중 = 이집트>로부터 출애굽이 아니라, 찌그러진 파라오를 자처하다가 박근혜 정권이 수모를 겪었고, 윤석열도 김대중체제에 대한 출애굽(부동산가격 조정)을 원하는 민심을 역주행하여 또다른 ‘파라오’가 되고자 했다.
군사정권을 ‘애굽땅’으로 느끼는 체험의 세계에 대해서 논해보자.
유신체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대와 만났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저가 상품 시장에 대한 문제가 열려 있었다. 한국은 선진국의 저가상품 시장에 수출을 하고자 했다. 유교자본주의로 박정희 전두환 왕권제를 공고히 하고, 국가는 기업의 원가관리를 위한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안정적으로 대기업의 수출이익을 늘려야, 그것을 기반하여 자본시장 팽창이 가능했다. 그렇게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목적이 모든 과정을 압도했다.
➀ 박정희 정권 내내 경기 불황이었다. (민주당 학자)
➁ 박정희 정권 내내 귀족들의 체제 전복 시도가 반복됐다.(보수유권자 일반체험)
➂. “➀+➁”의 입장으로 반론은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권위주의는 반론을 강화했다.
그 당시에 반복된 주장이 있다.
- 군사정권은 지속 불가능하다.
- 국가가 우리를 위할 때도 있네.(호남유권자를 대체로 배제했다)
- 서민을 위해주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한동훈, 김경율의 모습은 유신체제에서 박정희, 전두환에 충성 맹세바치며 존재하는 ‘뻘소리 정치인’이 오버랩된다. 사실, 냉정한 말로 군사정권은 박정희, 전두환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관료가 있다. 제대로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 김대중 체제에서 박정희, 전두환 같은 존재가, 원불교 박지원(2명을 꼽자면, 원불교 김무성까지)이다. 호남사람들에게 유신체제의 정부관료로 제대로 기억나는 이름이 없다. 박정희 전두환을 위한 관료이고, 호남 서민을 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수유권자들에겐 한동훈 김경율은 원불교 박지원을 위하지, 보수유권자를 위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유신체제에서 공권력 남용에 기초하여 그 내부에서는 지금 대부분 다 잊어버릴 ‘뻘소리’ ‘뻘 말’경연대회가 있었다. 지금은 김대중체제 부채버블 시대에 한동훈 김경율 등은 김대중체제식의 ‘뻘소리’ ‘뻘 말’경연대회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진영이 학문의 자유를 진흥하는 동네라면, 당연히 쓰여져야 할 책이 있다.
그것은 <영끌 자본론>이다. 원래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서양의 정상적인 시장경제를 전제로 한다. 군사정권 유교자본주의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 기억한다. 영남식 유교봉건제로 해석한 케인즈주의였다. 김대중체제는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 위에 작성됐고, 중국식 개혁개방 공산당 경제학을 연상시키는 이중 노선이다.
老子식으로 상향식 민초들의 투자를 받아서 얻어진 부채버블 이익은, 경제민주화로 민중복지로 환원한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1994년 무렵에 김영삼정권을 세운 할아버지들과 연결된 원불교 백낙청 진영과 교류를 자주했던 박세일 교수, 김정호 자유경제원장의 논리를 반복한다. 마치 유신체제 경제학을 민심을 거슬러서 반복했던 노태우 정권처럼.
여기서, <老子=미국 보수주의 시장경제>라고 불법적으로 같다고 놓은게 모든 문제의 발원이다. 시진핑이 트럼프와 논쟁하면서, 중국 남부 장가계와 계림이 영국 런던 같은 시장경제의 본거지와 같다고 시진핑이 트럼프에 윽박지를 때, ..... 사실은 그 시진핑의 이단경제학적 확신이 한국이 심어준 거 아니냐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
여기서, 김대중-김영삼 정권을 세운 동학 할아버지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토털 불법행위 종교범죄 패키지의 문제를 제기할 때가 됐다.
1987년 6월 항쟁 때도 슬로건이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원불교 백낙청 평론집은 그런 의미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 반복된다. 이문열의 ‘명성황후’ 뮤지컬도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임을 팔았다.
시진핑의 ‘중국남부=시장경제 본고장’이란 해석은, 트럼프 및 자유진영에 ‘이게 뭔 개소리야’ 하는 판단을 유발했다.
표현 자체는 서구 시장경제 개념인데 (가장표시), 숨겨진 은닉행위는 전통적인 중화민족 씨족경제 원리(은닉행위)다.
김대중의 시장경제는 표현은 서구 시장경제(가장표시)인데, 숨겨진 은닉행위는 전라도 동학파의 씨족원리(은닉행위)다. 여기서, 가장표시로서 속이 텅 빈 개념을 믿은 사람의 문제다. 민법상 사기가 명백하다.
김대중체제는 모든 것이 표현과 실제의 분리가 나타났다.
유신체제는 표현과 실제의 분리가 국가 영역뿐이다. 일상은 표현과 실제의 분리가 이렇게 나타나지 않았다. 김대중체제는 일상 모든 것에서 동학 포접제로 오호담당제 비슷하게 조직하여 원불교가 이익주도권을 가지려 했고, 그로 인해서 분리가 된다.
(이 분리된 양상에 전세사기도 있고, 이재명 대장동사건도 있다)
군사정권은 국가주의 공권력 비호 아래에서 부동산 투기 이익을 거둔사람과, 호남서민들의 투기의 자유로부터 배제된 노동을 해야 하는 지대로 분리가 됐다.
군사정권은 반론할수록 권위주의가 세지고, 반론하면 더 세지고, 이렇게 갔다.
김대중체제는 일제 강점기 공산씨족의 가치가 모든 배타적인 문제를 좌우한다.
김대중체제는 일제 강점기 공산좌익 씨족귀족들의 돈 벌어주려 민초들이 빚지고 투자단결하면, 그 공산좌익 씨족들을 관리하는 동학 붕당 자장이 손실나면 빼주고 이익나면 이익은 너희꺼 하고 봐주는 체제로 된다.
유신체제에서 투기의 자유(?)에서 배제된 호남서민들을 위한 투기판이 노무현 때 벌어지고, 문재앙 때 벌어졌다.
그래서, 호남 귀족들은 영남에 금권 면에서도 압도하게 됐다.
군사정권에서 박정희, 전두환 왕에 충성맹세하는게 시장경제냐? 는 현타가 든 사람이 있었다.
김대중체제에서는 (1) 일제 강점기 공산가문 귀족 돈벌어주는 빚지고 투자하는 환경자체가 말이 되느냐? (2) 그렇게 귀족들의 재산증식이 정치의 시작과 끝이 되는게 말이 되느내? (3) 그 과정에서 민초들의 재산보호가 도외시되는게 말이 되느냐? (4)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원불교 박지원, 원불교 김무성에 충성맹세바치는 전라도식 씨족경제가 실제 ‘시장경제’ 맞는가?
미국의 강달러로 금융시장이 강해지면 제조업이 망한다. 미국 백인 서민들이 망한다.
한국은 공산귀족 돈벌어주러 부채 레버리지 최대치로 땅겼다. 자본시장이 실제보다 2-3배 강해졌다. 한국의 대부분의 자영업이 망한다.
유신체제에서 권위주의 체제에서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하던 분들은, 부동산 거품 이익 먹자 더 이상 서민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는데 김대중체제에 고분고분하여 말 잘듣는 세금투하를 받아먹는 공산씨족 유관자만 서민이라고 본다.
토건공화국의 미래는 어둡다.
부채 버블로 만든 국민소득위에서 어이없는 당쟁으로 뻘소리, 뻘 말 경연대회를 벌어는 것도 웃기고, 부채 버블로 만든 귀족의 파워로 박근혜 정권 무너뜨리기, 윤석열 정권 무너뜨리기도 웃기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질척거리는 차원으로 신호를 안 보냈으면 한다. 미국인은 한국인만큼 정보 분석한다.)
해리스가 미국 대통령이 됐으면 버블 꺼지지 않고 나타나는 자본시장으로 첨단 산업을 진흥할 명분은 조금이라도 생겼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 꿈을 깨야 한다.
국회의원은 입법부다. 시스템과 체제에 대해서 이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게 모범이 돼야 한다. 김건희가 모범이 아니래요, 미친 여자래요. 라는 지적은 남탓일 뿐이고, 국회의원도 모범 의무를 벗어날 자유가 없다.
토건공화국은 <전라도동학신앙=정치경제사회문화 만병통치약>이란 잘못된 가치관 위에 있다. 여기서, 자유진영을 벗어나자는 사람들은 이 사회를 망친 장본인들이, 완전히 성공적으로 망치고 도망치기도 성공하자는 이야기다.
뻘소리, 뻘 말들이 왜 언론을 가득 메우나?
왜 뻘소리, 뻘 말을 주목하고 들어줘야 하나?
미국과 중국의 통화 패권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가개조가 우째야 하나 문제도 시급하다.
군사정권 극복하는 민주화어법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권력양반계급이 아니다. 그렇게 대안 세력이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홍역을 감당할 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눈치를 보면, 경제유튜버 아무도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물론, 미국도 자기를 책임지지 않는 나라를 위해서 좃뺑이 안친다고 말한다.
필자는 군사정권식 동학 차별론자가 아니다. 동학신자들이 자기들끼리 생각하는 “동도서기”로 조화균형의 세계가, 동학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를 막론하는 종교범죄의 세계로 나타난다. 원불교는 교단전체가 백낙청 내란죄 처벌과 함께 사법처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본다.
버블은 터질 것이다.
군사정권 유교자본주의가 87년 6월 항쟁 이후에 폐기되고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듯, 트럼프의 관세체제는 한국의 버블을 터뜨리고 자유진영의 경제학 학문만이 진짜가 될 것이다.
학문이 짧은 노인들의 노이즈도 한동훈-김경율 못지 않다.
아, 시끄러!!
원래의 자본론은 99대 1, 혹은 그 1에서도 매우 적은 영역이 미국 경제를 다 휘어잡는 영역을 말한다. 한국의 영끌자본론은 조선왕조 중세의 신분제 씨족습속을 사용하여, 귀족이 백성의 몫을 싹다 불의하게 털어먹는 것의 시장경제 명분화로 나타난다. 백성과 민초가 다 망하는데, 재벌들의 자본시장이 남아있길 바라는게 비정상적이다.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노론가문이 정치권에 들어가서 자기 가문 재산증식하는 속마음과, 그에 기반한 뻘소리 뻘말 경연만 나오고 있다.
국가개조에 수반되는 이성언어를 말하지 않는다.
아직 버블 안 터졌으니까. 라는 기대는 어긋날 것이다.
정치인이 일반인보다 도덕과 지성에서 확실한 우위가 보여지면 듣게 된다. 지금까지 한동훈과 김경율은 노이즈였다.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인데, 그것 뿐만 아니라 ‘약을 판다’는 듯한 감정의 벽도 있다.
군사정권은 내내 1인 지도자 왕권 집중의 유교자본주의 이야기.
김대중체제의 부동산 부채버블과 이에 기반한 정치인 매수와 민초들 세금살포를 하는 노론독재 영역의 다시 한번 이야기. 김대중체제는 언제나 가장 비생산적, 비효율적으로 귀족들의 갑질만 보장하는 체제 이야기다. (그 갑질의 영구화를 위해서 중공식 공산화하자는 민주당 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개새끼만 가능한 발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