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계속■■■■■■■■■■■■

 

■ 8월18일   미국의 간접 메시지에 소련의 비공식 반응(?)
                      일단은 *젖까!
                      두발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일단 한 발 전진!

*참고)
-1991년 국내 기사
https://imnews.imbc.com/replay/1991/nwdesk/article/1849143_30445.html

-2021.11 국내 기사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1/11/15/2021111500223.html
-2023년 관련 좆선기사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5/27/WD4SEYWMLVEALMFZ5S5G3FXWEI/

■9월1일 소련군의 38도선 이북으로 후퇴(철수?)
서울ㆍ경기 지역까지 점령한 소련군
38도선 이북으로 유턴(철수)-아래 지도.
원산항에 대기중인 소련의 남한상륙해군 작전중지.(8.20)
(이미 소개한 이미지의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 8월17일    스탈린에게 트루먼에게
https://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draft-message-joseph-stalin-harry-s-truman

      '일반명령 제1호는 접수,
      한반도는 38도선에서 내가 양보하겠어!
      일본의 쿠릴열도와 훗카이도 북부 절반을 먹고 싶은데
      문제없겠지?


 

■8월18일 
     소위 장안파가 조선공산당(1925~28)을 재건을 선언한다.
                     이에 박헌영(소위 재건파)는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 
                     당해체를 요구하며 노선투쟁을 선언한다.
                     (이런 식의 1국1당론은 코민테른 빨갱이 방식이다.
                     조선공산당 당원 소집ㆍ회합은 15일
                     재조직은 16일~17일에 이루어졌음에도
                     선언이 이 날에 이루어 진것은 아마도 1818...)
                      암튼 일부 조선씹선의 진성후예들이
                      쥐새끼처럼 숨어서(비밀) 활동만하다 비로소
                      '나는 공산주의자요'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빨갱이 활동을 시작했고,
                      코민테른의 지령을 들먹이며 1920년 이후
                      확립된 코민테른의 투쟁원칙을 내세워
                      공산당내 노선투쟁 시작한다.
                      (NL주사파가 PD를 몰아내듯이.)
                      이후 이 역사의 혼란기에서 다시 한번
        씹선비의 사대전통이 (찬탁돌변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현장을 보게된다.

 

■ 8월19일 트루먼 8월 17일의 스탈린의 전언에 답하다.
https://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translation-message-harry-s-truman-joseph-stalin

  쿠릴열도(얄타밀약)는 먹어도 좋아!
  근데, 내가 맥아더에게
  일본의 홋카이도,혼슈,시코쿠,큐슈를 접수하라고
  명령했거든!

홋카이도 본섬은 건ㆍ들ㆍ지ㆍ마ㆍ라!

-스탈린 어쭈! 이 쒸벌놈 보소!  잘하면 한 판 뜨겠네!
  전후처리를 위한 런던회의 때문에 일단 참는다!
  빅엿은 쫄리고 소심하게 38선 봉쇄?
  스탈린은  이후 만주와 북한을 이용해 통크게 응수한다.

■8월21일 스탈린 미국의 일반명령 제 1호에 정명대결하려는
                  모택동의 모험주의에 제동을 걸다.
                  모택동이 중국 공산당을 전면에 내세워
                  일본군의 항복을 받으려하자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미국의 제의에 따라 일단 국민당과 협상할 것을 종용한다.
                  모택동은 스탈린의 명령을 따라
                  충칭(重慶)회담(8.29~10.10)을 통해
                  미국을 방심하게 하고 시간을 벌다.

충칭(重慶)회담-마오와 장제스의 회담
왼쪽부터 장즈중(張治中),마오(毛澤東)  ,주중 미대사 헐리 (Patrick Jay Hurley),저우은라이(周恩來),왕 루오페이(王若飛)

모택동은 8.12 만주로 일부 병력을 파견,
충칭회담이 끝날 무렵에는
9개 연대병력을 동북지역 파견하고 만주출신 공산당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조직화를 시작할 것을 지시한다.

참고)

https://www.google.com/am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Amp.html%3fidxno=98720

참고)
국공내전의 대강에 대한 이해를 위해
http://contents.nahf.or.kr/item/level.do?levelId=edeah.d_0006_0020_0010_0010


■8월24일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京元線) 철도 운행을 중단
■8월25일 경의선(京義線:서울-신의주) 운행 중단.
■8월26일 소련은 38선을 공식 봉쇄(베를린 봉쇄는 48.6)하고
                   북한을 스탈린 입맛대로 요리,
                   추후 백두개족보의 원조가 되는
                   김일성의 괴뢰를 내세워
                   이후 북한을, 중국과 한반도의
                   공산 혁명을 위한 '민주기지'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