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아 오랜만이야 ㅎㅎㅎ
몇달전에 관도대전을 쓰고 이어서 이번편을 쓸려그랬는데 정신이 없어서 못썼는데, 이제야 쓰게되네...ㅋㅋ
지금 다들 짱깨폐렴으로 인한 온갖 악영향으로 정신이 없고
지금 이 시국에 삼국지를 쓰는것에대해 많은 반발을 살 수 있어 우려되지만
삼국지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일이고 고대 중국인은 동아시아 문명의 시초를 닦은 사람들로 나름 문명인의 기개가 있었다 생각하지만,
현대 짱꼴라바퀴벌레 새끼들은 한나라 이후 온갖 이민족으로 버무려지고 마지막까지 여진쪽한테 멱따이고
문화대혁명으로서 문명인과는 완전히 연을 끊은 그냥 미개한 여진족의 후손들이라 생각하기 떄문에 반발을 무릅쓰고 이처럼 글을쓰니
너무 노여워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ㅎㅎ
이번에는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의 2차전이라고 볼 수 있는 조조와 원소 아들들의 싸움에대해 다룰건데
이 싸움 역시 소설 '삼국지 연의'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굉장히 치열했으니 게이들에게 흥미를 어느정도 자극 시켜줄 수 있을거야.
삼국지가 참 재밌는게 사람에대해 배울수 있어서인데 이번편 역시 삼국지 내에서 비중은 적지만 사람에대해 정말 잘 배울 수 있는기회이니 학습적으로도 좋은 시간이 될거라 생각해.
그럼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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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좌의 게임
때는 관도대전 직후이자, 한나라 말기 202년 5월.
하북 4개주를 지탱하던, 하북의 영웅 원소가 관도대전 패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갑작스레 죽어버렸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해온 그였지만 죽음의 순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채, 그저 피를 토할 뿐이었다.
아직 천하는 안정되지 못했고 거대한 적 '조조'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이였지만 이제 모든 것은 그의 아들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원소는 한사람에게 다 물려줘야한다는 간언에도 불구하고 관도대전시 자신의 부재에도 지역의 안정을 위해 친족중심 정치를 공고히시켰다.)
원소는 죽기 전, 하북 4개주를 자식들에게 나누었는데, 막내에다 나이도 어린 '원상'에게 수도격인 기주를 맡기고 나머지 장성한 자식들에게는(원상과 10살 이상 차이나는 걸로 추측) 사이드 지역을 맡겼다.
이렇게 된 경위는 원소는 자신의 후처(後妻)인 유씨를 매우 총애했는데,
유씨가 원소에게 '원상'의 재능을 자주 칭찬하고 원소 또한 어린 원상의 모습을 기특히 여겼기에 장남 '원담'을 청주로 보내고 아예 자신의 형의 호적으로 옮겨버리는데 이른다.
그렇게 암묵적으로 후계자가 정해지고 있는 상황이였으나 문제는 원소가 정식으로 후계자를 임명하지 못한채 급사해버린 것이었다.
(좌: 원상파의 우두머리, 심배 / 우 원담파의 우두머리 곽도)
한편 원소의 중신인 '심배와 '봉기'는 '곽도', '신평'과 서로 무리를지어 권력 다툼을 하고있었는데,
'곽도'와 '신평'을 중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장남인 원담이 나이가 많다하여 그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이에 '심배'와 '봉기'는 원담이 옹립되면 자신들이 해를 입을까 두려워 원소의 유명을 조작해 원상을 옹립해버린다.
만약 다른 사람이였다면 여기서 그쳤겠지만, 이는 원담을 오히려 더 파이팅 넘치게하는 도발이었다.
청주로 쫓겨난 원담이였지만 원담 역시 무서운 야심의 소유자였으니
청주자사를 역임하면서도 명사들을 모으려고 노력했고 서주에서 쫓겨난 유비를 받아들이면서까지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 했으며 관도대전에 직접 종군하여 원소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다.
또한 청주 역시 원담이 원소의 힘으로 날로 먹은 것이 아닌 청주의 일부 지역만을 기반으로 공손찬 무리와 황건적을 격파하여 얻어낸 것인만큼 꽤 능력도 있던데다,(문제는 정치가 개씹망이였음...)
반면 동생인 원상은 경력도 없고 나이도 어렸던만큼(10대 중후반, 원담은 30전후로 추측) 여러 상황들은 원담의 야심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이렇게 하북판 왕좌의 게임은 막을 올리게되었다.
2. 여양전투
원상파의 원상을 후계자로 한다는 원소의 유명 발표라는 강력한 정치공세에도 불구하고,
원담은 자신을 원소가 반동탁연합을 일으켰을 때 작위인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칭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싸움의 핵심지역이 되는 중국의 북쪽지역/ 원상의 수도 업성과 조조[한나라]의 수도 허도의 위치)
이후 원담은 여양으로 진영을 옮겨 협박시위에 들어가면서 형제의 상황은 악화일로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상황을 가장 원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조'였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하북의 힘이 강하여 감히 도전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온 것이었다.
202년 9월, 그렇게 조조의 오래토록 염원했던 하북공략전 역시 왕좌의 게임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한다는 소식에 크게 다급해진 원상, 원담의 형제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특히나 조조와 가까이 있어 가장 먼저 타겟이 될 원담은 원상에게 지원을 청했고 원상 역시 안도와줄수가 없는 입장이기에 자신의 모사 '봉기'를 중재역겸해서 병력을 지원한다.
그러나 지원 병력이 턱없이 부족했으니, 원담은 재차 지원을 요청하였고 원상이 이를 거절하자 크게 노한 원담은 봉기를 죽여버린다.
그러는 와중에 조조가 마침내 황하를 건너 원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담이 원상에게 위급함을 알리니, 진짜 x됬다 생각한 원상도 이번에는 병력을 크게 지원해주려하였으나, 원담이 병사들을 뻇을까 두려워해 감히 지원할 수 없었으니,
후방 행정은 심배에게 맡기고 자신이 직접 출전하여 원담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다.
전투는 치열했으며 원상의 대응은 굉장히 노련했다. 
(조조의 본대를 묶어놓는 사이, 보급차단에 들어가는 원상군)
원상군은 조조군이 황하를 통해 선박으로 보급을 한다는 것을 알고 병력을 파견해 보급차단에 들어간다.
당시 조조군의 보급은 휘하 장수 '이전'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원상의 보급차단을 우려한 조조가 명을 내렸다.
'만약 배가 지나갈 수 없으면 육로로 보급해라'
하지만 이전은 오히려 원상의 보급차단 부대가 갑옷이 많지않고, 물에 의지해 태만한 마음이 있어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 생각했다.
이에 이전이 군을 이끌고 원상군을 격파하니, 원할히 보급을 할 수 있게되었으나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우회진격을 시도하는 원상군과 협공하는 흉노)
원상의 본대가 조조군의 본대를 묶은 사이, 원상은 흉노족을 사주하여 휘하장수 '곽원'과 병주자사 '고간'에게 명해 조조의 서쪽인 '하동'을 침략케한 것이다.
이것은 조조에게 꽤나 위협적인 공격였으니, 다시 좀더 자세히 지도를 살펴보자.
먼저 흉노족이 하동군의 '평양'으로 진격했고 조조의 서쪽을 담당한 '종요'가 군을 이끌고 이에 대응는데,
그러나 종요는 흉노를 격파시킬 수 없었고, 종요가 흉노에게 발을 묶인 사이, 곽원이 하동을 초토화 시키며 내려오니 그 위세가 대단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관도대전때는 조조를 도운 서량의 군벌 마등마저 이번에는 원상에게 회유된 상태였기에 종요가 크게 불리해졌다.
종요의 장수들이 모두 하동을 포기해야된다고 말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으나, 종요가 말했다.
"지금 원씨의 세력이강해 사람들이 곽원이 오자 서쪽에서 몰래 그들과 내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이 모반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우리의 위명을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물러나 약한 모습을 보이게되면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곽원은 또 성격이 급하고 괴팍하니, 반드시 우리를 쉽게 볼 것이다.
우리가 물러나 분수(汾水)를 건너 진영을 구축하면 따라서 그들도 강을 건널 것인바, 그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강 건너 후퇴하는 종요와 진격하는 곽원/ 분수의 위치)
결국 종요는 작전상 후퇴를 실시했고 곽원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으니, 조조군의 네임드 공신인 '가규' 마저 그에게 패해 포로로 잡힌다.
그렇게 차츰 차츰 원상이 주도권을 잡아가는 가운데, 상황을 뒤바꾸는 사건이 터져버린다.
원상과 내통한 마등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떄, 마등의 부하 '부간'이 마등에게 말했다.
"지금 장군께서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계신데, 몰래 양쪽을 견주면서 승패를 관망하다가는 나중에 승패가 결정된 이후, 반드시 그 책임을 문책받아 가장먼저 참수될지도 모릅니다."
마등이 겁을먹자 다시 부간이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화를 복으로 바꿉니다. 지금 조조와 원씨가 싸우고 있는데, 곽원이 하동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조조가 비록 모든 계책을쓰더라도 이 위기를 극복할 순 없을 것입니다.
이때, 장군께서 군을 이끌고 협공을 가한다면 반드시 곽원을 격파할 것인바, 조조는 장군의 공덕을 중요시 여길 것이며 그 공은 글로써 다 적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마등은 원상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아들 마초에게 명해 군대 1만을 주어 종요를 돕게했다.
(도하를 시도하는 곽원, 협공하는 마초와 종요)
하동에서 미쳐날뛰며 승기를 잡아가는 곽원은 점점 적을 경시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에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로 종요의 부대를 격파하기 위해 도하를 시도했고 도하 도중, 마초.종요 연합군의 공격이 들어왔다.
불리한 곽원이였지만, 워낙 세력이 컸던지라 전투는 꽤 치열했다.
지휘관인 마초 조차 다리에 화살을 맞는 부상까지 당해가며 싸울 정도였고, 마침내 마초의 부장 '방덕'이 곽원을 참하며 전투를 승리로 끝낼수 있었다.
결국 싸움에 참가한 흉노족 역시 항복하며 서쪽에서의 전투는 마무리 되었다.
한편, 곽원은 종요의 외조카였는데, 종요가 전투가 끝난 후, 곽원의 목을 보고 크게 통곡했다한다...
(후퇴하는 형제/추격하는 조조)
그렇게 형제와 조조의 전투는 202년 9월부터 203년 2월까지 다방면에서 펼쳐졌다.
모든 수가 수포로 돌아간 형제도 역시 전면에서 조조와 크게 더불어 싸웠지만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여양성으로 후퇴하나,
조조가 여양성을 포위하려하자 지킬 수 없다여긴 형제는 밤중에 업성으로 재차 후퇴해 수성에 들어간다.
이에 승승장구의 기세를 탄 조조의 매서운 진격은 계속되었으나.
그럼에도 하나된 힘은 강했으니 형제는 끝내 역격에 성공했고 한 방 먹은 조조는 보리만 거두고 203년 5월경 다시 허도로 회군한다.
이후 조조는 좆밥인줄 알았던 원소 아들들에게 한방 먹은게 크게 빡쳤는지, 분노에 찬 령을 내린다.
'옛날 군법에는 [장군이 퇴각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옛 장수들이 군이 밖에서 패하면 그 집안이 죄를 받았다는 말이다.
나는 장수들에게 정벌을 명한 이래 공이 있는 자에 대해서만 상을 내릴 뿐, 죄를 벌하지 않았으나 이는 국가의 법이 아니다. 앞으로 출정을 명받은 장군 중, 패한자는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것이고 실리한 자는 관직이 면탈될 것이다.'
기지를 발휘해 조조를 물리친 형제. 하지만 형제의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3. 왕좌의 게임 2라운드
조조를 물리친 형제.
전투적 성격의 원담은 이 기회에 조조에게 크게 한 방 먹이고 싶어했으니, 원상에게 말했다.
"내가 조조에게 진 것은 우리 군의 장비가 낡았기 때문이다. 지금 조조가 패주하고 있고 조조의 무리들은 전의를 상실했으니, 그들이 강을 건널때 습격하면 이길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원상은 원담을 믿을 수 없었기에 제안을 거절했다. 또한 보급 역시 해주지 않았다.(돌아가란 뜻)
제안을 거절당한 원담은 원상이 자기 군대의 낡은 장비도 교체해주지 않은 것에 크게 화가났는데, 여기에 곽도가 불을 지폈다.
"원소께서 장군의 호적을 바꾸게한 것은 심배가 제안한 것입니다."
이에 원담은 다시금 군사를 모아 원상을 업성 밖에서 공격하니, 왕좌의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달아나는 원담과 원담을 구원하는 왕수)
그러나 원담은 원상을 이길 수 없었고, 원담의 패배로인해 설상가상으로 본진인 청주에서 반란까지 일어나 우선 '남피'로 후퇴한다.
한편, 그의 중신 '왕수'가 다행히 반란의 와중에도 오느정도 세를 모아 구원군을 이끌고 오니 원담이 크게 기뻐했다.
세력을 다시 수습한 원담이 원상을 재차 치기위해 왕수에게 물었다.
"어떤 계책이 있소?"
"형제란 좌우의 손 같은 것으로 지금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은 서로의 손을 자르는 것입니다.
참언하는 소인배(곽도?)들은 단지 중간에서 일신의 사욕을 누리기 원하는 자들로 그들을 베어버린다면 형제는 다시 친목할 것이고, 그렇게 사방을 방어한다면 결국 천하를 호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담은 이를 듣지않았다.
그리고 다시 청주와 기주 부근을 노략질하며 기세좋게 원상에게 도전했고 업성 근교에서 다시 한번 맞붙으니, 이번에는 원담이 원상을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상황은 또 다시 반전되었다.
원담이 승리의 기세를 타고 추격하는 도중, 원상의 복병에 걸려 크게 패했으니, 사서에서는 그 피해를 말 그대로 '헤아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라 표기했다.
원담은 다시 본진인 청주이자, 기주와 경계인 '평원'으로 후퇴했고 원상은 맹렬한 기세로 원담을 공격했다.
왕좌의 게임은 원상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4. 원담의 승부수.
원상에게 복구불능의 피해를 당함으로서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원담.
이때 곽도가 무시무시한 계책을 낸다.
"장군의 영토는 좁고 병사는 적으며 군량도 없습니다. 원상이 공격해오면 얼마 버티지 못할것인데 조조를 불러 원상을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조가 온다면 필시 원상은 물러날 것이며 이때 장군이 서쪽으로 다시 진격하여 기주를 모조리 차지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원상이 패하면 원상의 무리를 모아 조조에게 대응하면되고 조조 역시 먼거리를 달려와 양식이 부족하여 필시 물러 날 것입니다."(민주당이 보수이기려고 짱깨끌어들이는거랑 비슷한거같지 않냐?)

"누굴 보내면 좋겠소"
"신비(신평의 동생)이 좋겠습니다."
한편, 이때 조조는 형제의 싸움이 장기화될 것을 예상하여 그 사이 유표를 치는 준비중에 있었는데, 신비가 보내온 항복편지에 대해 의논하였다.
많은 이들이 응당 강한 유표를 먼저 공격해야하고 원담, 원상은 걱정거리가 안된다고 하였으나, 모사 순유가 말했다.
"천하에 일이터지고 있는데, 유표는 그저 보전만 하고 있으니, 그에게 야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원씨는 강력한데 지금 형제들이 나쁜 상태를 만났으나, 만약 한쪽으로 병합된다면 힘을 하나로 합치게되고 하나로 합치면 이기기 힘들 것입니다. 저들의 혼란을 틈타 취한다면 천하는 평정될 것으로 이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조조가 말했다.
"설령 원담이 간사한 마음을 품고있어 끝내 항복하지 않더라도 내가 원상을 격파하고 그 땅을 거두어들인다면 그 이로움이 많을 것이오."
그리고 조조는 원담의 항복을 수락함과 동시에 조조의 아들과 원담의 딸을 결혼(혹은 약혼)시키는 것으로 약조를 맺었다.
원담과 동맹을 맺은 조조가 다시 북진하여 여양에 이르자 원상은 원담의 포위를 풀고 업성으로 회군했으나,
이런 지리멸렬한 내분으로 원씨 일가가 몰락하고 있는것을 느꼈는지 원상의 휘하 장수인 '여광'과 '여상'이 조조에게 무리를 이끌고 투항한다.
이에 원담은 조조에게 투항한 원상의 두 장수에게 몰래 장군의 인수를 건내며 매수 시도에 들어가는 등 원담도 나름 자신의 계획을 착착 실현중에 있었다.
형제가 적이되고 아비의 원수가 오히려 동맹이 되는 묘한 상황 속에서, 또 그 동맹도 서로 믿을 수 없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원상 원담 조조 세 사람의 눈치게임은 더욱 결과를 알 수 없어졌다.
그렇게 다시 하북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2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