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ㅇ 일베게이들 


오랜만임 


태풍 지나간 기념으로 잡지식 하나 싸고 간다


오늘의 주제는 


프랑스의 전쟁의 천재라 불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도왔던 유명한 장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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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 (51세))


프랑스 혁명기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황제가 된 장군. 


한때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전 세계에 명성을 날린 전쟁의 천재. 


유럽 역사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주인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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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의 영지였던 코르시카 섬 출신의 하급 귀족이었으나,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의 대격류를 타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 군인.


16세 소위로 시작하여, 25세에 포스타(대장)까지 초스피드로 진급하여 전공을 세우며 명성을 날렸음.


솔까 프랑스 혁명 당시 장군들이 줄줄이 기요틴에서 사망크리 맞거나 외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고속 승진이 가능했다곤 하지만 이것도 그의 운명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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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각설하고


본 주제인 <나폴레옹의 장군들>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겠음.


나폴레옹은 1796년 부터 1815년까지 수많은 정복전쟁을 벌였는데, 이 시대가 가히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끗발날리던 리즈시절이라 하겠음.


아무리 나폴레옹이 한 시대를 풍미한 전쟁의 천재였다고는 하지만


그 혼자서 수많은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법.


그를 도왔던 수많은 별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나폴레옹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명장들이었음.


물론 그 중에서도 흑역사로 남은 병신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쟁의 천재 아래에서 활약한 명장들도 상당수 존재했었음.


나폴레옹은 자신의 활약기간 동안 총 26명의 원수(5스타)를 임명했고,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포풍처럼 전장을 누볐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 


지금부터 그들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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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폴레옹 1세






<참고> - 뒤에 등장하는 장군들이 언제 어떤 전투에서 활약했는지 찾아볼 수 있도록 참고 연표를 싣도록 하겠음.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 개요>


- 이탈리아 전쟁 (1796~1797)

    ㄴ 아르콜 다리 전투

        노이비트 전투


- 이집트 원정 (1798 ~ 1801)

     ㄴ 아크레 공성전


- 제 2차 이탈리아 전쟁 (1799 ~ 1801)

    ㄴ 마렝고 전투 (1800)

        몬테벨로 전투


- 오스트리아 전쟁 (1805)

     ㄴ 뒤렌슈타인 전투

         울름 전투


- 독일 폴란드 원정 (1806 ~ 1807)

   ㄴ 잘펠트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예나 - 아우어슈테트 전투

       아일라우 전투


-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4)

    ㄴ 오카냐 전투

        탈라벨라 전투


- 제 2차 오스트리아 전쟁 (1809)

    ㄴ 라싱 전투 

        레겐스부르크 전투

        아스펜-에슬링 전투 


- 러시아 원정 (1812)


- 나폴레옹 쇠퇴기 (1813 ~ 1814)

    ㄴ 뤼첸 전투

        바우첸 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 워털루 전투(1815)





그럼 시작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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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란.  Jean Lannes


나폴레옹의 가장 뛰어난 원수 중 한 명이자, 친우이기도 했던 명장. 많은 전투에서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싸웠다. 


평가 : ★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 1792년 23세에 프랑스 혁명군에 자원 입대. 


그 뒤에 스페인 군과 싸우면서 렙업을 시작. 1795년엔 대령까지 승진하는데 성공함.


이탈리아 전쟁 당시 여단장이었으며, <아르콜 다리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이 우주 방어를 치고 있는 아르콜 다리를 향해 척탄병들과 함께 수류탄을 들고 직접 돌격을 감행하다가 부상을 입음.


이때 3색기를 들고 함께 돌격하던 <나폴레옹>을 만나 그와 인연을 쌓게 되었음.


그 뒤 나폴레옹의 가장 신임받는 장군이 되었으며, 그 유명한 알프스 산맥 횡단에서도 선봉에 섰음.


몬테벨로 전투에서는 2배의 병력을 이끌고 있던 오스트리아 군을 상대로 싸워 대승을 거둠. 이 전투의 공적으로 몬테벨로 공작에 임명.


(오스트리아 군 사상자 - 5000명. 프랑스 군 사상자 - 500명)


1806년에는 프로이센의 군대와 잘펠트에서 싸워, 프로이센의 초특급 유망주라 불리던 루드비히 황태자를 민주화시키고 대승을 거둠


당시 프로이센 군은 900명 전사, 1800명 부상, 6000명 패주 / 프랑스 군 전사자 172명


1809년 제 2차 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레겐스부르크 전투>에서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전공을 세우는데


성벽에 가로막힌 프랑스군이 머뭇거리자, 스스로 수류탄과 사다리를 집어들고


"이 몸도 원수이기 이전엔 척탄병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라고 외치며 별 5개 원수가 직접 사다리를 들고 적 성벽으로 돌격해 직접 성벽을 넘어 칼을 휘두르며 싸웠음.


그리고 보기좋게 요새를 민주화시키고 3색기를 꽂는 기염을 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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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언제나 선봉에 섰던 장 란 원수



그러나 최고의 돌격대장의 운명은 거기까지였으니,


당해 <아스펜-에슬링 전투>에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선봉에 서서 돌격하다가 적이 쏜 대포에 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음.


그리고 7일 뒤, 나폴레옹의 친우이자, 프랑스 군 최고의 돌격 원수였던 장 란은 눈을 감고 말았다.


그의 죽음에 나폴레옹은 칼을 떨어트리고 대성통곡을 하며 슬퍼했다고 함.



장 란과 나폴레옹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유명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장 란과 나폴레옹은 너, 나 할 정도로 말을 낮추고 서로 장난치고 노가리를 깔 정도로 친했음.


장 란은 돌격의 귀재 답게 저돌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하루는 장 란이 빡쳐서 나폴레옹에게 독설을 퍼부음


"내가 저런 창녀에게 열정을 품었으니, 뒤져도 싸지. 씨팔..."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를 웃으면서 넘겼고, 장 란을 달랬으며 다시 평소처럼 너 나 하면서 놀았다고 함.


일국의 황제에게 창녀라고 디스를 걸었음에도 장난으로 넘어갈 정도였음.


삼국지의 조조 - 하후돈. 이 정도 포지션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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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니콜라 다부. Louis-Nicolas Davout


나폴레옹의 26원수 중, 발군의 지휘능력과 전술력을 자랑했던 최고의 야전 사령관. 별명으로는 <강철 원수>, <짐승(The beast)>.


<단 한번도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불세출의 명장>. 자세히 보니 전땅끄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평가 : ★



대대로 군인집안이었던 다부 가문에서 태어나 당연스럽게 사관학교에 들어갔고 기병 연대 소속으로 군인 생활을 시작함.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연대 내에서 유일하게 혁명파 손을 들어줘서 투옥당했으나, 혁명이 성공하고 복직 성공.


각종 자잘한 전투에서 경험치를 쌓으며 최강의 장군으로 성장했으며


이탈리아 전쟁, 이집트 원정에 참여하여 많은 공을 세움.


특히 나폴레옹이 민주화당할 뻔 했던 <마렝고 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워 나폴레옹의 눈에 들었고 곧바로 사단장으로 승진함.


그 뒤로 독일, 폴란드 원정에 참여하여 하이 커리어를 쌓는데,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는 48시간 강행군을 완수하여 완전히 탈진한 병사들을 이끌어 오스트리아군을 민주화시켰으며,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는 28000명(대포 45문) 의 병력으로 63000명(대포 245문)의 프로이센 군을 철저하게 격파하는 대전공을 세움


특히 이 전투는 나폴레옹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승리였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크게 기뻐했다고 함.


역사가들이 평하길 <아우어슈테트 전투>는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이긴 전투 라고 평함.


이 전투의 전공으로 다부는 <베를린>에 1등으로 입성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림.


이때 다부는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어떤 경우에라도 기꺼이 폐하를 위해 제 피를 흘리겠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인정해주시고 따뜻함을 베풀어주시는 그것으로 저는 족합니다."


그 뒤 아우어슈테트 공작으로 임명되었으며, 1809년 에크뮐 전투,  바그람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둬 또 다시 에크뮐 공작의 칭호를 받았음.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좆ㅋ망ㅋ하고 프랑스로 퇴각할 때, 


13군단 병사들을 이끌고 함부르크를 점령. 여기서 극악의 버티기를 시전하면서 


1년 동안 열악한 보급과 부족한 병력을 극복하고, 미친듯이 몰아치는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와 타 적국의 병사들의 러쉬를 방어한다. 


근데 1814년 나폴레옹이 민주화당하고 부르봉 왕조가 복위되면서 함부르크를 버리고 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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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 원수는 그야말로 혹독하게 군기를 잡고 훈련을 감행하여 최강의 정예군을 육성했는데, 


일례로 적국의 마을을 함락한 뒤 약탈행위를 금지했고, 이를 어긴 병사는 즉결 처형에 처했다고 함.


덕분에 다부 원수가 이끈 제 3군단은 프랑스 군 내에서 최고로 질서있고, 딱 부러지는 정예 병사들이었다고 한다.


병사들을 존나 굴렸을 걸 상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폴레옹이 유배지에서 탈출하고 다시 100일 천하를 잡을 당시, 프랑스 전쟁장관에 임명되어 군 보급과 체계 정비에 힘썼으나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민주화당해서 다 좆망. 


제국 원수의 직위는 유지했으나, 그에게 실권은 다시 주어지지 않았고,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살다가 폐결핵으로 퇴갤.


그야말로 나폴레옹 다음가는 전쟁의 천재였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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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Louis Alexandre Berthier


다른 원수들처럼 화려하게 전장을 누빈 건 아니었지만, 당대 최고의 참모였음. 


평가 : ★




특이하게도 이 인간은 제국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맡아 지휘한 경험이 전무. 


아니 딱 1번 있었지만 전투를 하기도 전에 3일만에 나폴레옹이 "야 씨발 딴 새끼들 답답해서 일 처리가 안된다. 너 그냥 소환 컴온." 


해서 다시 참모의 자리로 귀환함.


병법이고 전술이고 잘 몰랐지만,


<전체 대국의 흐름을 읽고, 병력과 물자의 루트를 확보하고, 전투의 타이밍을 재고, 장군들의 배치를 설정하고,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


에 대해선 그야말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함.


거의 나폴레옹의 생각을 읽고 작전을 입안했다고 할 정도로 참모로써의 능력이 탁월했는데


나폴레옹이 거둔 수많은 전투들이 베르티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평가할 정도로 최고의 참모였음.


어느 정도였냐면 나폴레옹이 베르티에를 평가하면서 한 말이


"내가 한 마디만 해도 작전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재능이 있다." 라고 말할 정도


베르티에가 사망하자


"이젠 누가 내 명령을 이해하고 작전을 세우냐..." 라고 탄식하며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고 100일 천하를 잡을 당시, 나폴레옹은 그가 빨리 귀환하기를 바랐으나,


얼마 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가설로는 암살설, 프로이센의 군대가 프랑스를 공격하는 걸 보고 전쟁의 승기를 잃었다고 판단해 스스로 운지했다는 설 등 많음.



나폴레옹이 베르티에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혼자서 삽질하고 헤매고 있던 <그루시>(ㅇㅇ 그 그루시 맞음.ㅋㅋㅋㅋㅋㅋㅋ) 를 찾으라고 참모장인 니콜라 술트에게 명령했을 때


술트는 전령 1기를 보냈다.


그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은 격분하면서


"씨팔! 베르티에라면 20명은 보냈을 거라고!"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 결과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워털루 민주화로 이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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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마세나. André Masséna


나폴레옹의 원수 들 중 가장 유명하고, 또 능력있는 원수로 평가되는 장군. 요즘엔 신진 원수들이 대거 발굴되면서 저평가 당하는 감이 있음.


당시 전 유럽에서 최고의 야전 커리어를 자랑했으며, 별명으로는 <승리의 여신이 가장 아끼는 아이>


평가 : ★



나폴레옹이 데뷔하기 이전부터 프랑스의 장교였음.


평민 출신임에도, 그의 유능함과 전과로 귀족들을 제치고 부사관 이상의 장교로 올라온 노력파. 


혁명이 터지면서 다시 군대로 돌아와 1792년 대령으로 승진함.


당시 프랑스 혁명 중 장군들이 기요틴에서 줄줄이 민주화당하면서 고속 승진을 자랑했고, 대령이 된 다음해 사단장으로 포풍 진급


2차 이탈리아 전투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으며, 


오스트리아의 전쟁의 천재 <카를 대공>과 대전투를 2번 벌여, 1승 1패를 나눠가졌음.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도 활약했으며


나폴레옹이 마렝고 전투에서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제노바에서 농성하여 시간을 끌어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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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프랑스 원수로 임명되었고, 마세나의 종횡무진 정복기가 시작되는데,


오스트리아 군을 상대로 싸워 베로나 함락, 칼로디에 함락, 나폴리 왕국 공략, 폴란드 공격 등


이 인간이 안 빠지는 야전이 없을 정도.


장 란 원수가 전사한 <아스펠- 에슬링 전투>에서도 에슬링을 탈환하기 위해 2일 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을 상대로 혈투를 벌여 승리.


그 뒤 전투의 공으로 에슬링 공작의 칭호를 받음.


이베리아 반도 전쟁 당시 포르투갈 침공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유명한 영국의 <웰링턴>이 건설한 강력한 방어 기지를 뚫는 데 실패하고, 결국 부싸코 전투에서 웰링턴에게 대패.


야전의 달인 커리어가 끝나버리고 만다.


훗날 나폴레옹이 복권했을 때에도 전쟁에 질렸는지, 복직을 거부했고.  그 뒤에 조용히 퇴갤하여 역사에서 발을 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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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모르티에. Édouard  Mortier


화려한 전공은 없지만, 뛰어난 지휘 실력과 작전 구상 능력으로 소수 정예 엘리트를 이끌고 싸운 특전대 원수.


평가 : ★




초반 스타트가 다른 원수들에 비해 많이 늦었는데, 혁명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791년에 중위로 입대.


주로 네덜란드 방면에서 싸웠으며, 제 2차 이탈리아 전쟁이 진행되던 1799년에 여단장, 사단장을 거치는 고속 승진을 달성함.


위에 소개한 <앙드레 마세나>의 소속으로 싸웠으며, 


1803년에는 직접 1만의 군대를 이끌고 하노버를 공격. 저항세력인 하노버 군을 분쇄시켜버리고 하노버에 삼색기를 꽂았음.


이 전공으로 이듬해 원수로 진급함.


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뒤렌슈타인 전투에서 


황제의 독수리 깃발이 약탈당하고, 4000명의 병사, 47명의 장교가 포로로 잡히는 극한 상황에서 좌익군을 이끌고 분전해


다 져 가는 전투를 무승부로 이끌었다.


이베리아 원정 당시, 오카냐 전투에서 스페인 군 60000명을 민주화시키면서 그 능력을 재차 입증함.


탈라벨라 전투에서도 마세나 원수와 함께 싸워 영국군을 패퇴시켰고, 이때 부상당한 영국군을 치료해주는 따뜻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1810년 바다호스 전투에서 


9000명의 병사로 스페인 군 1만 3000과 격돌. 5000명을 민주화시키고 아군 사상자 400명이라는 괴랄한 전공을 세우기도 함.


그 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좆ㅋ망ㅋ하고 퇴각할 때


1만명의 청년 근위대를 이끌고 후위대를 자처. 8000명이 전사하지만, 프랑스 본대를 보호하는데 성공하고 귀환한다.


이때 어린 병사들에게 자신의 비스킷과 위스키를 나누어주고, 동상에 걸린 병사들을 막사 안에서 불을 쬐고 재워주는 등


어머니같이 따뜻한 덕장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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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라이프치히 전투.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대패한 나폴레옹을 끝까지 호위해서 퇴각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1814년 파리 방어전에서도, 수많은 장군들이 도주하거나 항복하는 중에서도 나폴레옹과 함께 끝까지 싸운 걸로 유명하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갔을 때 루이 18세에게 항복했고, 다시 나폴레옹이 100일 천하를 잡을 당시, 루이 18세를 안전하게 영국까지 망명시켜 주었음.


워털루 전투 직전, 신경통으로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본인은 이걸 대단히 아쉬워했다고 함.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권력을 잡자, 총리 겸 육군장관에 임명되었고


1835년 코르시카의 혁명 분자인 주세페 피에스키가 루이 필리프를 저격하려고 쏜 총에 대신 맞아 인생 퇴갤한다.



일생 내내 신사적이고 교양있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전후에는 따뜻한 면모를 보여준 보기 드문 덕장이었다고 볼 수 있겠음.


여담이지만 영어 실력이 대단히 우수해서 적장인 <웰링턴> 도 모르티에를 존경하고 호감을 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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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네. Michel Ney


저돌적이고 다혈질적인 프랑스 돌격대장 원수. 고집이 매우 세고 성격이 더러워서 별명은 red face(다혈질), <용사 중의 용사> 가 있음. 


평가 : ★




평민 출신으로, 지금의 독일 지방인 사르루이에서 태어나서 독일어에 능숙했음.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다 안 맞아서 때려치우고, 화끈하게 군대에 투신하여 기병 연대 하사관으로 복무를 시작함.


프랑스 혁명 당시, 전 유럽에서 프랑스를 린치하려 달려드는 동맹군과의 전쟁에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으며


1799년 사단장을 찍으며 장군 직책 획득!


1797년 <노이비트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창기병대를 맞아 자신의 경기병대를 지휘해서 정면 충돌하여 승리했으나


뒤이어 시간차 러쉬를 들어온 오스트리아 중기병대에게 개털리면서 포로로 잡힘. 나중에 포로 교환으로 돌아오긴 함.


원수가 된 이후 대육군 6군단을 맡아 지휘했으며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는 자신을 포로로 잡고 모욕감을 준 오스트리아 군을 상대로 처절한 복수전을 감행해 대패시켜버림


그 뒤의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도 기병대를 이끌고 프로이센 군을 관광보냈으며 


1807년 <아일라우 전투>에서도 프로이센-러시아 동맹군을 상대로 분전해서 전공을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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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최악의 흑역사인 러시아 원정 당시 참전했으며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목에 관통상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병상을 박차고 다시 전장으로 ㄱㄱ


<보로디노 전투>에서 최일선 기병대를 이끌며 용감무쌍한 돌격을 펼침.


이때 목에 감은 붕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딴거 걍 개무시하고 칼을 휘둘러 러시아군을 개바름.


결국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퇴각하기로 결심할 때


최후방 저지대를 맡아 추격해오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분전함.


이 모습을 보고 나폴레옹이 감탄하며 <용사 중의 용사> 라는 별명을 붙여줌


또 프랑스 군 사이에서 네는 <가장 마지막으로 러시아 땅을 떠난 프랑스인> 이라고 불렸다고 함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나폴레옹 꺼지셈 이라는 장군들의 줄에 붙어서 함께 나폴레옹을 디스하는 만행을 저지름.


하지만 나폴레옹이 유배지를 탈출해서 100일 천하를 잡자, 다시 나폴레옹에게 용서를 구하며 다시 그의 아래로 들어감


but...


<워털루 전투>에서 네 원수는 최악의 자충수를 두고 마는데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의 only 기병 개돌 작전>이 바로 그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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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단단하게 방진을 짜고 있던 영국군 보병대에게


미셸 네 원수는 기병대 개돌 명령을 내렸고, 


이 작전으로 프랑스 군 주력 기병대가 녹아내리면서 그야말로 개ㅋ좆ㅋ망ㅋ


뒤늦게 기병 + 보병 + 포병 조합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한번 뒤집힌 승기는 뒤집을 수 없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루시>의 대삽질로 프랑스군 대패...


1815년 왕당파에게 포로로 잡혀 총살당하면서, 저돌적인 돌격대장의 최후를 마쳤다.


그의 유언은


"병사들이여, 내가 사격 명령을 내리면, 바로 내 심장을 쏘아라. 명령을 기다려라. 이것이 내 마지막 명령이다. 

 나는 내게 내려진 판결에 이의가 있다. 나는 프랑스를 위해 백번의 전투를 치루었지만, 내 조국을 배반한 적은 한번도 없다...  사격을 개시하라!"


마지막까지 허세부리다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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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생 뮈라. Joachim Murat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 군 최강의 기병 돌격대장. 개돌왕. 프랑스의 여포. 닥치고 돌격. 로한의 기마대의 재현. 


평가 : ★




키가 크고 곱슬머리를 자랑하던 당당한 미남으로, 기병대 병사 출신.


1795년 파리에서 왕당파가 일으킨 반란을 나폴레옹과 함께 진압하면서 친구가 되었음.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전쟁, 이집트 원정 등 여러 전투에 함께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1800년 <마렝고 전투>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용감무쌍한 돌격을 감행. 민주화 당하기 직전의 나폴레옹을 구해냈음.


그 뒤에도 <아우슈터리츠 전투>, <예나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고


특히 1807년 <아일라우 전투>에서는 기울어져가는 전세를 기병대 돌격으로 단숨에 역전시킨 대단한 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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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욕심이 좀 많아서, 특히 <왕위>에 대한 탐욕이 심해 일을 하나 크게 치고 마는데


당시 카를로스 4세와 페르난도 7세가 왕위를 다투던 스페인 왕가에 난입해서 지가 왕이 되려고 했다가 역관광.


마드리드 폭동의 씨앗이 되면서 나폴레옹에게 오지게 욕을 먹음.


그 뒤에도 왕이 되고 싶어 나폴레옹을 마구 졸랐으며,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형이 앉아 있던 나폴리의 왕위를 뮈라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근데 이것도 만족 못하고 자신이 이탈리아 전체의 왕이 되고 싶어해서 비밀결사를 조직.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결국 좆망하고 또 사고치고 욕먹음.


러시아 원정 당시 <보르디노 전투>에서도 크게 활약했지만


자신이 다스리던 <나폴리>왕위가 위험해질 것 같아서, 그대로 전장을 탈주해서 되돌아가는 병크를 터트리고 만다.


이래저래 왕위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인간.


나폴레옹이 몰락할 당시, 직위를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으나


다시 나폴리의 왕이 되고 싶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fail. 


오스트리아 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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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은


"내 잘생긴 얼굴을 쏘지 말고, 내 가슴을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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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많고 지나치게 저돌적인데다가 이기주의적 성격으로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었지만


조아생 뮈라의 기병 돌격 능력은 그야말로 전 유럽구 클래스.


전술이고 뭐고 오로지 자신이 선봉을 맡아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서 쑥대밭으로 만드는 그의 용맹함은


적과 아군 구별없이 인정받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고 자신의 칼을 휘두르며 싸웠던 기병 돌격의 대명사.


조아생 뮈라의 이미지는 두고두고 유럽 군인들에게 경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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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술트. Nicolas Soult


나폴레옹 군단의 원수. 왕정 복고 당시 프랑스 대원수까지 진급함. 처세술의 달인.


평가 : ★



부르주아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프랑스군 이등병으로 입대함.


어릴때 훌륭한 교육을 받고 큰 탓일까, 남들보다 진급이 빨랐고 훈련 교관에 임명. 여기서도 뛰어난 애들 굴리기 기술을 발휘해 6년만에 대위로 진급(?!)


그 뒤로도 대대장, 연대장 등 포풍 승진을 하다가


이탈리아 전쟁 당시 <앙드레 마세나>의 천거로 나폴레옹에게 중용되었음.


상당히 유능한 야전 사령관이었으며


유명한 일화로는 


1805년 <아우슈터리츠 전투> 당시, 오스트리아군이 포진한 고지를 20분 내로 격파해 보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15분만에 고지를 함락하는 기염을 토함



그 뒤로 여러 전투를 전전하다가


이베리아 원정 때, 스페인 군을 지원하러 오던 영국군과 조우하고 이를 격파.


영국군 사령관인 <무어 장군>을 전사시키는 대전과를 세우기도 함.


그러나 그에게도 라이벌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명장 <웰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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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웰링턴 장군. 영국군의 훌륭한 명장이었다.




갓 부임한 신임 사령관인 영국 웰링턴과 프랑스군 유망주였던 술트는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음.


처음 포르투갈 전선에서 웰링턴에게 깨진 술트는 복수를 감행.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 군과 연합한 웰링턴의 영국군과 맞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임.


스페인의 <바다호스 요새 전투>에서는 술트의 승리.


그러나 <비토리아 전투>에서는 웰링턴의 승리.


3차전으로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에서 결전을 준비하지만, 웰링턴의 기습 공격으로 8만명의 프랑스군이 공중분해당하면서 대패.




여담이지만 웰링턴과 악연을 계속하던 술트는


1838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식 때 프랑스 측 특사로 영국에 가게 되었음.


근데 거기서 웰링턴이 술트를 보고 그대로 달려가 술트의 팔을 덥석 붙잡음


깜짝 놀란 술트에게 웰링턴은 장난스럽게


"이제 그대를 잡았군!"


이베리아 원정 당시 내내 술트와 추격과 공방전을 벌이던 웰링턴으로써는


드디어 적국 원수를 자기 손에 붙잡았다는 농담을 한 것이었다.


물론 전쟁은 다 끝난 직후였으므로 둘이 껄껄 웃고 헤어짐.








이런 술트가 장군 외에 주목받는 면모는 바로 처세술.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유배가자 술트는 루이 18세에게 항복.


근데 나폴레옹이 탈출하고 100일 천하를 잡자 다시 나폴레옹에게 리턴


워털루 전투 당시 참모장으로 참전했으나 대패하고, 다시 1819년 루이 18세에게 용서받고 부르봉 왕조에 재항복.


여기서 술트는 국방장관의 직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1830년 7월 혁명 당시 부르봉 왕조가 실각하고 <루이 필리프>가 권력을 잡자, 다시 필리프에게 항복.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1848년 다시 혁명이 일어나자 루이 필리프를 버리고 혁명파에 가담한다.


그야말로 프랑스판 <꺼삐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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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 Jean-Baptiste Bernadotte


나폴레옹의 원수. 레알로 원수 개객끼.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배신자. 스웨덴 국왕(응?)


평가 : - ★




프랑스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해병대 병사 출신.


두고두고 나폴레옹과 애증의 관계였으며, 비하인드 스토리도 기가 막힌다.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 파>의 최고 인기인으로 등극해서, 정치적으로는 나폴레옹과 대척점에 섰으나


그의 능력으로 중용되었다.


1796년 라인강에서 오스트리아에게 개털린 프랑스군을 수습해 역관광을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804년 원수 칭호를 받는다.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묵인하긴 했으나, 속으로는 그에게 충성하지 않았고, 나폴레옹 역시 그를 정치적 라이벌로 간주했다고 한다.


1805년 <울름 전투>에서 프로이센 군을 대격파하는 공을 세우지만


이 무렵, 베르나도트의 아내와 나폴레옹 사이에 불륜 관계가 싹트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르나도트의 아내인 <데지레 클라리>는 사실 나폴레옹의 약혼녀.


이 시점을 기준으로 베르나도트는 점차 나폴레옹에게 반항적으로 변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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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데지레 클라리



<예나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명령을 씹어 직위 해제당할 위기에 처하나


그의 아내인 클라리가 나폴레옹의 침대에서 눈물로 사정하여 직위를 유지한다.


자기 아내가 남과 떡쳐서 직위 유지했으니, 베르나도트의 속이 얼마나 끓어올랐는지는 상상에 맡김. 


그 뒤에도 나폴레옹의 아들의 대부가 되어주면서 나폴레옹과 화해하는 듯 보였으나....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1810년, 스웨덴의 칼 아우구스투스 황태자가 사망하면서 후계자가 공석이 된 스웨덴에서


스웨덴 왕 칼 13세가 베르나도트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그를 후계자로 지명해버린 것!


사실 베르나도트는 덴마크 전쟁에서 스웨덴 군 포로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사건으로 스웨덴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나폴레옹 역시, <이번 기회에 스웨덴과 동맹관계를 구축하자>라는 착각에 빠져 베르나도트의 후계 인정을 묵인하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1813년.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퇴각하고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바로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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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에게 맛깔나게 통수를 후리고


그대로 스웨덴의 왕 <칼 14세 요한>으로 등극해버린다!



이에 나폴레옹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버리고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스웨덴 군을 보내 나폴레옹을 린치하는 데 성공한 베르나도트, 아니 칼 14세는 그대로 스웨덴의 왕으로 명성을 날림.


그가 스웨덴 왕위에 앉은 뒤, 스웨덴은 내정이 안정되었고, 오늘날까지 유명한 <복지 국가>의 시스템의 초석을 닦았다.


그야말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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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오늘날 스웨덴 왕가의 혈통이 바로 이 <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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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Józef Antoni Poniatowski


프랑스의 원수였지만 폴란드의 영웅. 폴란드 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에 참여했던 왕족. 


평가 : ★





특이하게도 포니아토프스키 이 양반은 정통 폴란드 인 장군임.


오스트리아 출신이나 26세에 폴란드 군으로 이동하면서 장군이 되었음.


당시 나태해지고 노후화 되었던 폴란드의 군대를 개편할 필요성을 느꼈던 포니아토프스키는 


계속 건의를 쌩까는 폴란드 의회에게 무력을 동원해 군대 개편을 추진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젊은 개혁파였음.


1792년. 폴란드를 침공한 영원한 폴란드의 원수 러시아군을 맞아 분투했으나, 


바르샤바 공방전 직전, 그의 숙부가 독단으로 러시아에 항복선언을 해 버렸음.


이에 절망한 포니아토프스키는 폴란드를 떠나게 되고....


한동안 폴란드는 전쟁과 반란 등 격동의 혼란기를 겪게 되었음


그러던 어느날


절망에 빠진 이 젊은 장군의 눈 앞에 전쟁의 신이 강림하였으니... 그가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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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군대가 프로이센 군을 개작살내면서


폴란드 내의 프로이센 영지가 사라지게 되고, 폴란드는 해방을 맞게 됌.


나폴레옹에 의해 폴란드는 <바르샤바 공국>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고,


포니아토프스키는 프랑스의 원수 다부 의 지휘아래 용감히 공을 세워 나폴레옹의 눈에 들게 되었음.


그리고 마침내 1809년. 꿈에도 그리던 조국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었음.



포니아토프스키는 폴란드 군을 이끌고, 당시 최고의 전략가 중 한명인 오스트리아 카를 대공과 용감히 맞서 싸워서 남 폴란드를 해방시켰으며


나폴레옹의 흑역사인 러시아 원정 당시에도


10만이라는 대군을 직접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참가. 프랑스의 전위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


심지어 모스크바에 가장 먼저 입성한 군대가 바로 이 포니아토프스키의 폴란드 군.


그러나 러시아 동장군의 위엄 앞에 프랑스-폴란드 연합군은 무너져버렸고


<베레지나 전투>에서 러시아에게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맛보기도 함.




그러나 풍운아 포니아토프스키의 운명도 거기까지.


나폴레옹이 무너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폴란드 군은 프랑스 군의 엄호 역할을 맡아 싸웠고


포니아토프스키 역시 싸우면서 퇴각을 시도했으나


전투 막판에 다리가 붕괴.


항복을 권유하는 적을 무시하고 포니아토프스키는 그대로 강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달아나려 했으나 


결국 익사하고 말았다.




나폴레옹은 훗날 포니아토프스키의 장례를 자신과 같은 황제의 권위에 맞게 치러주었으며 그를 실제로 황제로 인정했다.


순수하게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불꽃처럼 싸우다 간 젊은 영웅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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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그루시. Emmanuel de Grouchy


"그루시는 어디 있어?(Ou est Grouchy!?). 이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나는.... 미묘하게 유명한 프랑스군 원수.


평가 : ★






나폴레옹의 원수들 중, 특이하게도 정통 귀족 출신. 후작가의 아들로 태어났음.


귀족임에도 혁명가 기질이 다분하여, 진급에 불이익을 얻었으나


혁명 이후엔 상황이 반전되어 곧바로 고속 승진. 1792년 대령찍고 곧바로 사단장 테크를 찍었다.


이전까지는 그저 그런 사단장에 기병대장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한 직후 곧바로 그에게 붙어서 원수 칭호를 받았다. 나폴레옹이 임명한 마지막 원수. 그리고 진짜 원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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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성을 안겨 준 워털루 전투.


그 전투에서 그루시는 3만 3천의 기병대 지휘권을 맡아, 리니 전투에서 대패하고 달아난 프로이센 군을 추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근데 중간에 적장 블뤼허 장군이 미끼부대로 보낸 1만 7천의 적군을 발견하고 이를 냅다 추격. 그리고 끝까지 추격. 추격. 추격. 닥치고 추격.


부하들이


"워털루의 상황이 안 좋아 보이는데, 퇴각하고 황제와 합류하는게 어떻습니까?"


라는 간언을 


"임무는 끝까지 수행해야지."


라고 묵살하고 걍 그대로 추격만 함.


그리고 결과는 그대로 좆망.


그루시가 미끼 부대에 낚여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동안 나폴레옹의 군세는 이미 끔살 직전까지 가 있었고


마침 그루시가 잡았어야 했던 프로이센 기병대가 프랑스군 후방에 나타나자 프랑스군은 기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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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폴레옹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피맺힌 절규를 토한다.


"씨발 그루시는 어디있어?!"




프랑스군이 신나게 영국군과 프로이센 군에게 샌드위치 당해 개털리는 동안


그루시는 임무대로 프로이센의 미끼 부대에 낚여 1만 7000명의 적군을 섬멸하고 당당히 귀환....은 씨발 좆망 병신새끼.





이후 쪽팔려서 지휘권을 반납하고 미국에서 살다가 1822년 프랑스로 돌아옴.


근데 평생동안 그루시 병신새끼. 바보새끼. 바보, 바보 추격밖에 모르는 바보 ㅠㅠ 라는 조롱을 들으며 쓸쓸하게 살다 죽음


마지막까지 워털루 전투는 내 탓이 아니라는 회고록만 쓰다가 죽은 바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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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원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힘들다 ㅠㅠㅠㅠㅠ


유명한 프랑스 장교 1명 소개하고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음.


원래 원수 26명인데. 그거 다 했다간 파일 첨부 용량도 넘치고 나도 힘들어 죽을듯


ㅅ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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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샤를 앙트완 드제. Louis Charles Antoine Desaix


프랑스의 장군. (원수 칭호는 못받고 죽음). 이집트 방면에서 활약함. 별명은 <정의의 술탄>


평가 : ★




프랑스의 몰락 귀족 출신의 장군. 


네덜란드 방면군에서 활약했지만 좀처럼 출세길이 열리지 않아 끙끙 고민하다가


에라이 될대로 되라 하면서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


그리고 거기서 나폴레옹을 만나 둘이 친해지면서 승승가도를 달리게 됌.



이집트 원정 당시, 그의 사단은 그 악명높은 이집트의 <맘루크> 기병대를 개작살내고, 그곳에서 탄압받던 이집트 농부들에게 환호를 받음


이때 붙은 드제의 별명이 바로 <정의의 술탄>



중간 과정은 걍 생략하고



1800년 <마렝고 전투>에서 드제는 최고의 공훈과 그의 목숨을 맞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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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폴레옹의 군대는 오스트리아 군에게 낚여서 개작살이 나고 있었고


드제는 마렝고 쪽에서 들리는 포성을 듣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 그대로 별동대 기병을 이끌고 직접 마렝고로 달려갔음.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프랑스군이 좆망하고 있었고


사색이 된 나폴레옹이 드제에게 이렇게 물음.


"귀관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드제의 대답


"이 전투는 명백한 패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이길 차례입니다."


그 뒤 곧바로 3개 기병 연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 군 중앙으로 개돌.


전세를 역전시키며 승리로 이끌었으나,




최후의 순간에 오스트리아 군에게 저격당해 전사하고 만다.


33세. 유망했던 젊은 장군의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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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드 보아르네. Eugène de Beauharnais.


나폴레옹의 양아들이자 프랑스군 장군. 친아들 못지않게 아버지를 따랐던 명장.


평가 : ★





원래 프랑스 장군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의 아들이었으나,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 당시 아버지가 단두대에서 민주화당하면서 가문 몰락.


젊은 장군인 외젠은 나폴레옹을 직접 찾아가, 아버지의 칼을 먹튀한 알렉상드르의 정부를 잡아 족치고 칼을 되찾고 싶다고 읍소했고


이에 감동한 나폴레옹이 그를 위해 보아르네 저택을 방문함.


그리고 거기에서 나폴레옹은 한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가 바로 알렉상드르의 미망인인자, 훗날 프랑스 제국의 황후가 되는 <조제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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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폴레옹이 결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외젠은 나폴레옹의 양아들이 되었음.


15세인 외젠을 나폴레옹은 참모로 임명했고


외젠은 아버지를 따라 각지의 전장을 전전하면서 빠르게 실전 경험을 쌓았음.


이집트 원정에도 참전하여 <아크레 전투>에 참전했다가 부상까지 입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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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15세의 외젠. 나이는 어렸지만 당시 프랑스군 참모였다.




2차 이탈리아 전쟁때도 참전했으며


아버지가 민주화당할 뻔 했던 <마렝고 전투>에서는


프랑스의 정예 추격기병 <샤쇠르(엽기병)>대를 지휘하여 큰 공을 세우기도 함.



나폴레옹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사랑하고 따랐는데


일단 원래 친아버지가 존나 바람둥이에 문란한 막장이었고,


조제핀이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간 당시 딴 남자랑 바람을 피웠는데, 


자신을 아껴준 나폴레옹에게 보답하고자, 어머니(조세핀)에게 당장 애인이랑 헤어지고 아버지(나폴레옹)에게 잘해주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음.




나폴레옹이 외젠에게 보내는 신뢰는 날로 깊어졌으며


마침내 외젠은 양아들임에도 불고, 이탈리아 군단의 사령관까지 진급함.


그리고 당연스럽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도 동행했음.


자신의 이탈리아 군대와 용감히 싸웠으나,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원수 <조아생 뮈라>가 나폴리로 튀어버리는 바람에 혼란에 빠진 프랑스군을 외젠이 수습하여


간신히 퇴각시키는 데 성공했음.



나폴레옹이 민주화당한 <라이프치히 전투>에 지원을 파병하려 했으나


<조아생 뮈라>의 방해로 실패. 결국 아버지의 패배를 손 놓고 볼 수 밖에 없었음.




결국 1814년. 패색이 짙어진 프랑스를 떠난 외젠은 자신의 장인인 적장 막시밀리앙 1세에게 귀순하게 되고


아버지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여생을 보내고 사망함.




역사 덕후들이 좋아하는 만약 시리즈에 추가한다면


"만약 나폴레옹이 일찍 외젠을 후계자로 지명해 놓았다면....?"


그래도 좆망했겠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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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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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캉브론느. Pierre Cambronne


프랑스군 장교. 워털루 최후의 전투의 일갈로 유명함.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고참 근위대(Old Guard)를 지휘.


마지막에 모두 패주하고 근위대가 남아 포위당했을 때


영국군의 항복 권유에 피에르는 이렇게 답했다.


"Merde!"(똥)


의역하자면 "좆까!"

그리고 영국군의 사격.


근위대는 최후를 맞이한다.













근데 피에르는 살았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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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여기까지 읽어준 니들이 승리자임


다들 ㅅㄱ했음


ㅂㅂ





출처)


- 엔하위키

- 구글 이미지 다수

- 다음 블로그 <역사를 창조한 전투>

- 네비어 블로그 <총독 관저>

- 이글루스 <3월의 토끼집>







BGM 정보 : http://heartbrea.kr/index.php?mid=recommend&category=98970&document_srl=1798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