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 주열 열사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은행원이 되기 위해서 마산 상고에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 확인(합격함)과 마산 유학 준비를 위해서 이모 할머니가 있는 마산으로 가게 되었다.............
김주열 열사는 이전에 이승만 정부에 항거한 적은 없다....그런 그의 대모 구경을 시위 참가로 좌파가 몰아 가는듯...
김 주열과 그의 형 김광열은 3,15 부정 선거 마산시청 시위(구경) 도중 헤어지게 되고 그 이후 행방불명 되었다........
그 실종 사건으로 모친 권찬주 여사는 아들을 찾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마산에서 국회 조사단에게
아들의 생사를 알려 달라고 호소한다.......그 이후 그의 시신을 마산시청 연못에 버렸다는 시민의 제보로
연못 2개의 물을 다 퍼냈지만 시시은 발견되지 않았다........그 이후 행방불명 된지 27일만에 마산 앞바다
중앙부두에 눈에 최루탄이 깊게 박힌체로 그의 시신이 떠오르며 그 충격적인 사진은 전국을 강타하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지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사건 개요는........ 마산 경찰서 교통 주임이 박종표 경비 주임에게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이 사실을 손 석래 마산 경찰서장에게 알리자 알아서 처리 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 시신을 마산세관 해안가로 가서 순경 한대진과 운전수등 세명이서 시신에 6군데 돌을 달아 유기했으나
묶어 있었던 돌이 풀리면서 마산 앞 바다로 그 시신이 떠 오른 사건이다.......... 법원에서 박종표는 시신
유기죄로 무기징역을 판결받고 5,16 혁명이후 7년형으로 감형 받았다......최루탄 발사자는 못 밝힘.......
그렇지만 나의 의문점은..... 그 많은 데모 군중들 중에서 그 처참한 죽음을 본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것이고
눈에 최루탄이 박힐 정도라면 바로 눈앞에서 발사 해도 가능할지 의문이고....... 중학교 3학년 졸업생인
어린 그를 무슨 원수가 졋다고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할 이유는 아무도 없는것 아닌가...........그후 수 십년간
수 많은 시위데모 군중 피해자 중에서 최루탄이 사람 신체에 박히는 사건은 나는 없는것으로 알고있다.......
박종표 경비주임은 일제시대 부터 형사를 해온 경험이 풍부한(?) 형사이다 그런 그가 시신에 돌을 제대로 묶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분명히 억울하고 죄없는 죽음이지만 그분의 생명을
누군가가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했고 그 거짓이 지금도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 혹시 아닐까 하는
개인적 의문점을 두서없이 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