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늘의 내용 스모 은퇴 후의 인생에 대해 쓰기 전에 댓글란에서 자주 받은 질문들에 대한 답부터 올린다.



1. 스모 심판이 하는 소리는 무엇인가?

먼저 "핫키요이(發氣揚揚: 기운이 뻗쳐나온다)~" 하고 외친 다음에 "노콧타, 노콧타(残った: 아직 모래판에 남아 있다)"고 계속 말한다. 한마디로 응원하는 것.



2. 습관성 탈구에 시달리던 치요노후지는 왜 수술을 받지 않고 근육을 키우기로 했는가?

스모는 1년에 6번의 바쇼(대회)가 있다. 바쇼를 빠져도 반즈케(계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오직 요코즈나 뿐이다. 아무리 오오제키라 해도 시합을 빠지면 계급이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진짜 뼈나 인대가 나가는 부상이 아닌 한, 억지로라도 출전하려고 한다. 치요노후지는 당시 아직 요코즈나가 아니었고 어깨 수술을 받으면 요양까지 최소 1년은 스모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쉬면 시합감, 근력, 반즈케 모두 작살날 게 뻔했다. 바쇼를 빠지지 않고 계속 시합에 출전하는 길은 상체 근육 강화 뿐이었다. 복싱도 세계랭커의 경우 1년에 3시합 뛰면 많이 뛰는 걸로 봐주는데 (세계타이틀전은 12라운드니까 최대 12*3=36라운드) 스모 선수는 1년에 6*15(스모 바쇼 한번에 15전 겨룬다)=90전을 계속 출전해야 한다는 건 매우 가혹한 스케쥴이다.  



3. 요코즈나 아케보노는 최홍만에게 지지 않았는가?

아케보노가 요코즈나에 등극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는 스모에서 2001년 은퇴했는데 이미 2000년부터 무릎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고 결국 무릎이 망가져서 은퇴를 선택한 것이다. 당연히 은퇴 후 운동을 계속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본 여성과 결혼하라는 압력을 거부하고 미국 국적의 여성과 결혼한 일을 계기로 후원회가 해산되고 사실상 스모계에서 추방된다. 돈이 필요했던 아케보노는 씹창난 무릎 때문에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허겁지겁 K-1에 출전한 것이다. 게다가 아케보노는 69년생이고 최홍만은 1980년생이다. 



4. 스모 선수의 평균 수명은 짧지 않은가?

메갈 같은 파오후와 달리 스모 선수들은 평소 운동량 자체가 일반인보다 많다. 그래서 은퇴 후 대부분 다이어트에 성공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스모 시절의 영향으로 밥 자체에 신물을 내는 바람에 멸치가 된다). 그리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환갑 넘겨서도 산다.

평균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은 직종은 프로레슬러인데 스테로이드, 진통제, 마약 등의 오남용으로 요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약이 탄수화물보다 더 무서운 물질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5. 스모 선수는 문신 해도 되는가

일본 전통문화에서 문신은 죄인이나 반사회적 조직(야쿠자를 의미함)의 상징이므로 '초자연적 힘을 상징해야 하는' 스모 선수에게 문신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아케보노는 스모에서 사실상 추방당한 후에 문신을 넣었다.



6. 스모 선수가 돈은 많고 일찍 죽으니까 스시녀들이 스모 선수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스모계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고 따라서 극단적인 남존여비의 세계이다. 아마추어스모가 아닌 프로 스모에서는 여성이 모래판 위에 오르는 일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여자가 나대는 일은 일단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여자가 스모를 비판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니가 뭘 알어 미친년아' 취급을 받을 뿐이다. 오타쿠 문화까지도 씹고 까는 우에노 치즈코를 비롯한 저페니즈 꼴페미조차도 건드리지 못하는 게 스모이다. 대부분 생계형 페미들인지라 스모를 깠다간 국가공인 미친년이 되고 밥줄 끊어지는 거니까.


스모 선수의 부인은 내조에 전념해야 한다는 무형 유형의 압박이 존재하기때문에 조금이라도 '유리 천장'이니 뭐니 같은 괴랄한 컨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여자는 일주일도 견딜 수 없는 세계이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남편과 같이 나와서 내조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 전부이다.

스모 선수들이 일찍 죽지도 않을 뿐더러 스모 선수의 부인이라면 스모계 인사들, 후원회, 남편의 후배와 제자들, 팬들 등등 각종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궁예가 빙의해서 '스모 선수의 아내는 순수해야 해! 순수를 잃으면 무엇이 남는가? 더럽고 음탕한 것만이 남아'하고 생각한다. 남자를 이용해 한몫 뜯어내기에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반면 스모 선수의 아내가 되면 광범위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어딜 가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다. 신사임당처럼. 왜 페미들이 신사임당을 싫어하는지 생각해보면 스모 선수의 아내가 되는 여자들이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자

스모의 선수 생명은 매우 짧다. 물론 30대에도 현역을 유지하는 노장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20대 초반에 한계를 느끼고 은퇴한다.

한가지 능력이 후달리면 다른 능력을 개발해서 자신의 길을 찾는 야구와 달리 스모는 극단적으로 순발력만을 요구한다.

게다가 워낙 육체에 가해지는 충격도 큰 스포츠인지라 몸의 내구성이 없는 선수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은퇴하는 나이가 이른 만큼 스모는 입문도 매우 빠르다. 사실 (스모협회가 교육을 제공한다는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에) 중졸이 입문해도 되는 몇 안 되는 업계이다. 물론 대학생 때 입문하도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0대 때의 입문이 많다.

입문 연령대가 워낙 어리다 보니 세키토리가 되지 못하고 마쿠시타 이하에서 은퇴하는 사람들은, 은퇴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20대 초반이다. 그때 다시 대학교에 가거나 다른 직장에 취직해도 사회 평균적으로 보면 전혀 늦지 않다.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택한 사람들의 미래까지 다 소개하면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이고 또 스모는 세키토리가 되지 못하면 아직 어엿한 스모 선수로 인정하지 않는 암묵의 룰이 있다. (솔까 세키토리 안 되면 졸라 박봉. 은퇴한다고 해봐야 퇴직금 나오는 것도 아님) 그래서 세키토리의 은퇴 후의 인생만을 소개하겠다.







쉽지 않은 오야카타의 길

세키토리 출신 중 현역 시절 몇 바쇼 이상에 출전해야 하고 몇 승 이상을 올려야 한다 등의 조건을 통과한 선수는 오야카타가 될 자격이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대뜸 '나 스모베야 세우겠소'하고 선언하는 게 아니라, 스모협회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오야카타의 추천을 받고, 스모협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오야카타로서의 타이틀을 받는다.


그런데 '스모협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 조건이 대단히 까다로운 게, 스모베야를 열기 위해서는 아무 타이틀이나 자기 멋대로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라 협회에 이미 등록되어 있는 전통 스모베야의 이름들 중 남아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스모 협회에 놀려두고 있는 타이틀이 없을 경우, 기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만의 스모베야를 가질 수 없다. 그 점에서는 은퇴한 복서가 복싱짐 설립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일례로 불가리아에서 온 스모 선수 '카로얀 말리아노프'는 '사도가타케 베야'에 입문하면서 '코토오슈 카츠노리'라는 시코나(스모 선수의 링네임)를 받았다.

시코나는 스승이 지어주는 이름인데, 사도가타케 베야는 코토니시키가 창립한 스모베야였고 그 제자들은 창립자의 영향으로 모두 시코나에 '코토(琴)'가 들어간다.

카로얀의 스승은 코토니시키의 3대 제자인 코토노와카였다. 코토노와카는 유럽에서 온 제자의 시코나를 고민 끝에 코토(琴)와 유럽을 의미하는 오슈(欧洲)를 합쳐 코토오슈로 지어주었다. 그리고 '카츠노리'라는 이름은 자신의 본명에서 따와 지었다. 이렇듯 시코나에는 제자를 친자식 혹은 자신의 분신으로 여긴다는 스승의 애정이 들어있다.


오오제키까지 올라가며 인기 선수가 되었던 코토오슈는 은퇴를 앞두고 (역시나 거한 선수들의 고질적인 고민거리인 무릎 부상) 오야카타가 되기 위해  일본에 귀화할 결심을 한다. 오야카타가 되는 첫번째 조건은 일본 국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화하면서 이름을 '안도(安藤) 카로얀'으로 바꾸었다.


안도 카로얀은 자신의 스승 코토노와카 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습명 신청을 했고, 코토노와카는 "오오제키를 역임했으니 자격이 충분하다"며 (역시 계급제 사회 스모답다) 카로얀을 추천했다. 마침 스모협회에 '나루토베야'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나루토베야는 14대까지 운영되다가 계승할 사람이 없어서 스모협회에 그 타이틀이 반환된 상태였다. 그리하여 안도 카로얀은 나루토베야의 타이틀을 계승하여 유럽인 최초의 오야카타인 '15대 나루토 오야카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지도했던 2명의 신인을 데리고 옛 스승 코토노와카의 사도가타케 베야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현재 나루토 베야는 나루토 오야카타의 고국 불가리아에서 레슬링 선수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영입해와 현재 총 3명의 선수를 거느린 상태이다.



안도 카로얀도 스모 선수를 키워내어 유럽 출신 최초의 요코즈나를 길러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나 배움이 부족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오야카타가 되기 위한 길을 준비하면서 일본체육대학에서 스포츠과학 학위를 받았다. 현역 시절 부상으로 고생했던 카로얀은 제자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오야카타가 스포츠과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카로얀은 전통을 고수하던 스승과 달리 필요하다면 현대과학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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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세키토리만 되면 큰 돈을 벌 수 있긴 하지만 그때까지의 상명하복의 공동체생활 등, 부담이 만만치 않아 지망생을 모집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다행히 카로얀은 코토오슈 시절, 고국은 물론이고 동유럽에서 인터내셔널 스타로 대접을 받아 스모에 대해 선망 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많은 편이라고. 카로얀은 유럽에서 각종 스포츠 경험자들이 참여하는 아마추어 스모대회에 참가하여 프로 스모 선수를 지향하는 인재들을 시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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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가리아에서 키 191cm의 그레코로만 레슬링 선수 출신의 제자를 스카웃해온 상태이다. 본명은 Benzi인데 시코나는 토라키오(불가리아의 옛 지명 '트라키아'와 호랑이를 의미하는 '토라'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토라키오는 향수병과 언어장벽으로 고생이 많지만 젊을 때의 코토요슈처럼 스모로 돈을 벌어 가족에게 좋은 생활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욕 하나로 타향살이를 견디고 있다. 현재 나루토 오야카타는 일본인 선수 2명과 불가리아 선수 1명을 거느린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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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베야는 적자일까 흑자일까? 스모업계의 cash flow가 대개 그러하듯이 스모베야 운영에도 정확한 척도는 없다. 다만 후원회의 재력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다른 건 몰라도 스모 선수들의 막대한 식비는 후원회가 부담해주는 게 원칙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스모협회에서 지원금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세키토리를 배출한 스모베야에만 한정되어 있다. 옛 나루토베야처럼 운영이 중단되는 스모베야가 생기는 이유는 적자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전의 케이고(트레이닝)이 끝나고 식사를 하고 나면 오야카타도 바빠진다. 후원회를 모집하기 위해 각종 PR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나루토베야를 계승했을 당시의 나루토오야카타는 외국인이라서 후원회가 없었다. 그는 스모 선수 활동을 하면서 저축한 돈으로 초기 비용을 댔다. 그러나 지금은 후원회도 생기고 있다고.



 





스모협회의 거물이 되기 위해

오야카타는 자동적으로 스모협회의 임원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스모협회는 주식회사처럼 주식을 발행하는데 오야카타들이 (후원회의 재력을 등에 업고) 우선적으로 주식을 소유하는 거대주주들이다. 물론 나루토오야카타 같은 햇병아리 오야카타는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오야카타들 중에서 스모협회의 '이사'가 선출된다. 이들이 막대한 이권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매머드 조직 스모협회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핵심들이다. 그리고 이사들 중에서 선출되는 스모협회의 대표가 바로이사장이다.


일본을 뒤흔들었던 하루마후지 폭행사건을 통해 드러났지만, 스모협회의 내분은 현재 매우 심한 상태이다. 

저 머머리 아저씨가 현 스모협회 이사장인 핫카쿠 이사장. 그리고 맞은 편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이 타카노하나 오야카타 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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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하루마후지 폭행사건에 대해 쓸 때 스모협회의 내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겠다.









사업가

스모에서 은퇴한 후, 오야카타의 길, 그리고 궁극적으로 스모협회의 거물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은 이유는 역시 오야카타가 되는 일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혹시라도 이사회의 권력다툼에서 줄을 잘못 대면 본전도 못 찾기 때문이다. 동시에 굳이 오야카타가 되지 않아도 나름 ㅆㅅㅌㅊ의 제2의 인생들을 비교적 덜 힘들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요식업이다. 특히 스모생활을 통해 익한 요리의 노하우를 살려 (그리고 자신의 개인 인기 및 후원회의 존재 등)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다. 아케보노도 K-1에서 개쪽을 팔아가며 모은 돈으로 스테이크집을 열었다. (아케보노도 수시로 자기 가게 가서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ㅋㅋ 역시 주인이 자기가 파는 물건에 자신감을 갖지 않으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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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보노의 스테이크집은 혜자스러운 가게로 명성이 높으므로 일본 갈 일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http://akebonosteak.com/






타마카이리키(玉海力)는 자신의 시코나를 상호로 쓰는 창코나베(전골)집을 됴코 번화가 각지에 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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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가 굳이 타마카이리키 전골을 소개하는 이유는 존니 비싸고 씹창렬이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 가는 게이들은 부디 이 개좃같은 가게에 가지 않기를 강력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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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방에서 자신의 가게를 열어 로컬 밀착형 마케팅을 실시하는 사람도 있다.

리키오 타케시(본명은 이노우에 타케시)라는 이름의 이 인상좋게 생긴 아저씨는 고향 나라(백제 유적 많은 걸로 유명한 그 지역 맞다)에서 라면집을 열었다.

요리 경험이 긴 스모 선수들은 자기만의 요리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리키오도 자신만의 오리지널 라면을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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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리들을 찾아 정리해 올리면 일베 갈 수 있겠지만... 타마카이리키 같은 씹창렬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단념하겠다. 윤서인이 일본여행 가면서 그런 요리들을 찾아서 정리해주기를 바랄 뿐.









프로레슬러

다들 알다시피 역도산도 프로레슬러 출신이었다. 스모 출신들은 이미 수퍼헤비급 체격이 완성되어 있으므로 프로레슬링계의 러브콜을 받는 일도 많다.

특히 스모에서의 한계를 느껴 은퇴를 선택했지만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쾌감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으로 전향한다.

게다가 프로레슬링은 실전 승부가 아니기 때문에 내구성이 좋은 스모 선수들에게 매우 적합하다.  

아케보노도 치욕적인 K-1 생활을 끝내고 결국 프로레슬링으로 전향했다.


환갑을 넘겨도 현역에서 뛰었던 프로레슬링 레전드 오브 레전즈 텐류 겐이치로도 스모 선수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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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세키토리가 되면 워낙 대중적 인기가 높으니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일도 흔하다.

물론 그렇다면 모든 방송사에서 스모 선수라면 누구나 환영한다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말빨을 갖추어야 하는 건 필수적이다.

스모 선수는 잘 먹는다는 이미지가 있으니 구르메 취재(먹방)에 동원되는 일이 많고 또 스모 선수의 인기가 높은 지방 취재에도 많이 동원된다. (한국으로 치면 뽀빠이 이상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현역 시절에 무뚝뚝하지 않고 말빨이 좋았던 타입의 선수는 십중팔구 방송인으로 갈 거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타카노하나의 친형이면서도 동생과 의절하고 본명 '하나다 마사루'로 활동 중인 와카노하나(왼쪽에서 두번째)는 대단히 유명한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구가하고 있다. 다만 하나다 마사루 앞에서 타카노하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예능방송에서도 금기 중의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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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얼굴과 약간 꺼벙한 컨셉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벗겨보면 장난 아니다. (온천 탐방 방송에서 4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한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는 마사루)

역시 스모 선수, 그것도 요코즈나까지 올라간 사람의 몸관리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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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언

흔한 길은 아니지만 코메디언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일단 뚱뚱한 체형은 무대 위에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웃긴다. (김형곤씨도 초창기에는 뚱뚱한 체형으로 인기를 얻었다)


일본 방송의 특징은 미리 정해진 컨셉이나 통념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스모 선수들에 대해서는 점잖고, 착하며, 약삭빠른 역을 연기하는 개그맨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허허 웃는 역할이 주로 많다. 진짜 '곰아저씨' 컨셉이다. 그래서 유민상처럼 겉모습만 뚱뚱하고 남을 가르치려 들며 표정도 음침한 인간들은 인기가 없다.


'야스다 서커스'의 멤버 '히로'는 스모 선수 출신이며 뚱뚱한 체형과 아둔한 인상을 살려 인기를 얻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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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부터 비만이라 건강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지 다이어트에 돌입해서 저렇게 살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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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다이어트 기획인데 주로 몇 개월에 걸쳐 뚱뚱한 방송인에게 다이어트를 시키고 그 변화를 보여주는 기획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 운동량이 부족하고 굶는 일을 우선시하는 뚱뚱한 여자들은 요요현상으로 다시 옛 비만체형으로 되돌아가 그 다음해에 또 비슷한 기획에 출연하는 일이 많다. 


다이어트는 식사량보다 운동량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가수
스모 선수들이 일반인보다 대체적으로 잘하는 주특기가 바로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다.
우선 스모 선수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는 게 주로 가라오케이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일본어를 배우는 데에는 가라오케가 가장 좋다고 하여 오야카타가 노래방에 보내는 일도 많다. 음주가무 중에서 특히 가(歌)를 빼고서는 스모를 논할 수 없다.

게다가 스모 선수들은 다들 체중이 많이 나가니까 음정이 매우 안정되어 있다. 성악가들이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체중을 불리는 것처럼. 스모 선수치고 노래 못하는 놈 없다고 할 정도이다. 다만 프로 가수의 길을 걷는 스모 선수들이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업을 하는 게 더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코토카제 코우키'는 아예 프로 엔카 가수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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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학/접골원

스모 생활을 통해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피트니스의 길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나루토 오야카타처럼 대학원에서 스포츠과학을 배우는 사람도 있지만 좀더 빨리 개업하고 싶은 사람들은 접골원이나 스포츠마사지점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다가 단골고객들을 확보한 다음에 개업한다.

이런 자영업자들의 경우, 자본금도 있고, 노하우도 있으며, 명성도 있으니 땅값 비싼 대도시보다는 지방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사업을 전개한다. 

이렇듯 스모는 지방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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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저녁식사와 취침 시간 사이의 자유시간 때 만화를 열심히 연습하면 만화가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만화가 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살빼기는 힘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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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대중적 인기를 갖고 있다면 누구나 정치인을 꿈꿔보지 않겠는가.

김제동 그 쓰레기 따위도 정치에 깐죽거리는데 스모 선수들이 정치를 하지 말란 법 있나?

다만 (일본의 경우) 장관까지 역임한 스모 선수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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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스포츠 선수 출신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진출한 사람은 프로레슬러 하세 히로시이다.

그는 아베 정권에서 문부과학대신(교육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대학 시절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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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고, 올해 56세의 나이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빼먹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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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추억의 노란빤스를 다시 입고 프로레슬링 시합에도 출전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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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스모의 경우

아마추어 스모 지도자는 스모협회에서 실시하는 세미나를 수료하고 자격증을 받아야만 남을 가르칠 수 있다.

세키토리 출신이 아마추어 스모에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하지만,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유로 스모 교실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야카타가 아닌 이상, 아무나 함부로 지도해서는 안된다.

저렇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자격증을 받아야만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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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마추어 스모 강사가 되고 싶은 아재들이 마와시 입고 운동하는 모습 보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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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인생의 한계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





다음에는 하루마후지 폭행사건에 대해 쓸지, 아니면 스모와 관련된 전통산업에 대해 쓸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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