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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be.com/6089689684 첫번째 - KBS기자새끼 저격

 

http://www.ilbe.com/6089929769 두번째 - 개마이 저격

 

 

이번 세번째 편에선 그간 올렸던 자료에 몇가지 덧붙여서 정리하고자 한다.

중복일수도 있지만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올리는거다.

 

우선 KBS기자새끼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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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야마구치현사에

 

"전쟁발발 이틀만에 야마구치현지사가 외무성으로부터 저런 전보를 받았다는게 적혀있다"

 

라고 기사를 올렸어.

 

다음의 두 자료를 보자.

 

http://www.ritsumei.ac.jp/acd/cg/law/lex/10-56/jung.pdf

 

출처는 릿츠메이칸 대학교이고, 당시에 오사카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였던 정종우의

 [식민지 지배체제와 분단체제 모순의 전개(植民地支配体制と分断体制の矛盾の展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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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낙동강 북부에 북한군이 도달한 시점에 여마구치 현지사가 외무성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고 써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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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출처는 야마구치현사 사료편 현대2 다. 또 하나는

 

http://www.nids.go.jp/publication/commentary/pdf/commentary03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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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성 산하 전사연구센터장 쇼지 준이치로(庄司潤一郎)의

[조선반도 유사시 피난을 둘러싼 문제 - 조선전쟁을 돌이켜보며(朝鮮半島有事と避難をめぐる問題-朝鮮戦争期を振り返っ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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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8월하순 시점에 망명정권타진 이야기가 나오고 출처는 역시 야마구치 현사 사료편 현대2 이다.

 

두 자료의 공통점은

 

1. 일본외무성 & 야마구치현간의 서신(그것도 전보일 뿐이지 한국정부의 어떠한 공식적인 문서도 없음)

2. 북한군이 낙동강전선까지 도달한 8월 하순

3. 출처는 야마구치 현사 사료편 현대2

 

 

즉,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3101393&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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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7일 외무성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는 KBS 보도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2. 다음은 좌좀들이 그토록 읊어대던 <미국 외교관계>다.

 

시발 맨날

 

" <미국 외교관계>라는 문서에 그렇게 써있거든요? 흥!"

 

찾아본적도 없으면서 이 지랄들만 떨던 새끼들 때문에 나같은 멍청도 일게이가 금쪽같은 휴일 희생해가며

직접 찾았다는 생각만 하면 아직도 손발이 부르르 떨린다. 어쨌든

 

http://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50v07/d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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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오전 8시의 내용이야. 이승만은 3시, 내각은 7시에 이미 떠났고

주한미국대사 무초(John Muccio)는 아직 서울에 있었어. 그리고 국방장관인 신성모는

채병덕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시민들에게 라디오 방송을 틀게 한거지. 그 상태에서 주한미국대사에게

대통령과 내각을 일본으로 망명시킬 수 있는지에대한 가능성을 물어봤다.

 

만약 저게 대통령 명령이었다면 신성모는 당연히 대통령을 댔겠고, 무초도 당연히 워싱턴에 대한민국 정부,

또는 대통령으로부터 망명요청이 있었다고 하지 저렇게 망명 가능성을 물었지만 확답도 안했다("I made no commitment.")라고만

적어서 전보를 때리진 않았겠지.

 

그리고 무초가 다시 이승만을 만났을때 망명 얘기가 하나라도 나와야 하는데 그 뒤로는 전혀 언급이 없었어.

 

말 그대로 그냥 입으로 물어본거 뿐이야. 어떠한 공식적인 명령이나 공식적인 문서도 없이.

그러니 무초도 그냥 씹어버린거라고 볼 수 있지.

 

그냥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서술하면서 전보를 친것 뿐이다.

 

"He despaired of saving anything and inquired possibility President and Cabinet

moving to Japan as 'government in exile.' I made no commitment."

 

 

그러니,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0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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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말하지만 주한미국 대사에게 망명 가능성을 물어본건 신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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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대사 앞에서 절망한것도 신성모다.

 

개마이도 쌩구라

 

 

신성모 = 한국지도부, 대통령, 내각

 

이렇게 되냐? 그리고 한국지도부, 대통령 그리고 내각이 문의했는데 주한미국대사가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고 "씹었다"고만 본국에 보고하냐?

 

 

3. 실제 있었던 망명계획

 

<미국 외교관계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된 한국 망명은 딱 세건이야. 

 

 

1950125

 

http://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50v07/d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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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M. 창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이라는 한국대사가 직접 참가한 자리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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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동아담당 차관보였던 딘 러스크에 의해서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는 만약의 경우엔 망명정부를 세워야 하는 가능성도 있다."라고

나온게 <미국 외교관계>에서 최초로 한국정부의 망명이 언급된 첫 건이야.

 

그리고 1951년 1월 12일

 

http://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51v07p1/d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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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동참모본부가 국방장관에게 보낸 각서의 2-e에서

 

Support the South Koreans as much and as long as practicable; keeping alive an exile government of Korea,

if forced to evacuate Korean territory.

(한국정부가 한국영토를 상실할 경우 망명정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라고 언급된다.

 

 

 

세번째는

 

http://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51v07p1/d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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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17일이다. 이번 회담의 말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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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한국대사인 존 M. 창과 국무차관보 딘 러스크 사이에서 오간 대화인데

만약 불가피한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7000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는 하와이를 망명지로

잠깐 언급함.

 

이게 전부야. 좌좀들과 그 언론들이 그토록 증거가 있다고 떠들어댄, 그러면서도 영문 타이틀 하나 적어놓지도 않았던,

<미국 외교관계>를 죽어라고 뒤져봤지만 1950~1953년 사이의 문서들엔 겨우 저정도 뿐이다. 그것도 조선말로 옮길땐

단어 바꿔치기 신공이 들어갔고. 최초 보도된 1996년부터 19년 뒤인 지금까지 말이야.

 

 

4.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존 무초(John Muccio)의 인터뷰

 

https://www.trumanlibrary.org/oralhist/muccio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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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2월 10일에 있었던 자신이 공직생활 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회고한건데

여기서도 망명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안 나온다. 그만큼 신성모의 일본망명요청은 무초에게도 아무 의미 없었던거지.

이승만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도 몇번 나온다. 좋게 느낀것도 있지만 나쁘고 위험하다고 느낀 때도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게이들은 들어가서 읽어봐.

 

 

 

세줄 요약

 

1. 한국전쟁 발발 이틀 뒤에 야마구치현이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전보 받았다는 KBS기사는 쌩구라

2. 한국전쟁 발발 이틀 뒤에 이승만이 주한미국대사에게 일본망명 문의했다는 개마이도 쌩구라

3. 공식적으로 망명 얘기가 나온건 딱 세건, 그것도 최악의 상황 가정하에서 나온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