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봐준 게이들 고맙다ㅋㅋ 그리고 지도 지적하는 게이들도 있었는데 지적 고맙다. 참고로 중뽕 그런건 아니고 그냥 자료를 구하다 보니 그런걸 들고 오게 됐네..;; 보기 언짢았으면 미안하다.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이 연재글은 좀 호흡을 길게 해서 써볼 생각이야. 물론 그렇다고 나도 무턱대고 길게 가는건 아니고 조절할 것이며 좀 중요하다 싶으면 자세하게 쓸 생각이라 편수가 좀 길어질 수도 있어. 물론 도중에 게이들 지적 달게 받는다.

 

간잽이 ㅈㅎ 달게 받겠고 나는 어차피 그냥 가벼운 역사글로 볼 게이들만 보라는 생각으로 쓰는건지라 맘에 안드는 게이들 ㅈㅎ도 달게 받을께.


1편 : http://www.ilbe.com/502294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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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에 걸친 진압이 족족 실패로 돌아가자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한 진의 조정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겠지.

그렇게 논의 끝에 나온 답은 '가충'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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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2>에서의 가충


뭐 가충이라면 게이들도 익히 알고 있을법한 인물일 것 같아. 삼국지에서도 심심찮게 이름이 보이는 인물이니 말이야.

 알다시피 위의 중신인 가규의 아들로서, 사마의에게 등용되어 나중에는 사마사, 사마소 등 사마씨를 섬기고

서진이 건국된 후에는 명실공히 공신 중의 공신으로 등극하는 인물이기도 해. 

그리고 그 유명한 가남풍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가남풍 얘긴 차차 나올테니 나중에 써볼께. 

 

 

뭐 아무튼.. 앞서 말한대로 가충은 인맥상으로나 관직상으로나 모두가 인정하는 정치거물 중의 거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권력을 지닌 실력가였어. 그런 가충에게 지금 양주에서 깽판치고 있는

독발수기능의 반란을 진압하게 시키자는 것이었지.

 

 

 이유인즉 가충은 지략도 뛰어나고 군재도 우수하니 작금의 사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물론 얼핏 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 근데 웃긴건 정작 가충 이 양반이 그 먼 변방으로 나가기 싫어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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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했어. 

 

앞서 말했듯 가충은 조정의 최고 실권자였지, 그런데 갑자기 외지로 나가서 군직을 수행하게 되면

혹시나 중앙조정에서의 자신의 권력이나 입지가 약해질 거라고 걱정했던 거야.

명색이 한 국가의 재상급에 버금가는 인물이 국난이 닥쳤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좀 웃기는 거지.


그래서 해결책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일 좋은 보험을 들어놓게 되는데, 바로 정략혼인이었어.

가충 본인이 혼인하는건 아니고 지 딸을 누군가와 맺어두고 떠나려 했던 건데 그 누군가는 바로 

무제(武帝) 사마염의 아들, 태자 사마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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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남풍

 

게이들도 한번씩은 들어봤을법한 중국의 4대 악녀라고도 불리우는 가남풍은 가충의 딸이야. 

알다시피 상당한 추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애꿎은 사마충만 불쌍하지.. 아니, 사마충도 장애였으니까

서로 쎔쎔이라 해야되나? 가남풍에 대해서는 훗날 팔왕의 난을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잠시

지나가는 인물로 봐둬.


아무튼, 가충은 무려 황실과 이렇게 혼인관계를 맺어두어야 설령 자신이 자리를 비운 후에도 

권력기반에 별 탈이 없을거라 판단했던 거지. 이게 곧 정략혼인이고.


하지만, 웃기게도 정작 가충은 난을 진압하러 떠나지는 않았어. 

무슨 변수가 생긴게 아니라 그냥 지가 가기 싫어서 안가고 눌러앉았던 거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변화 없이 기존의 최고 권력자 지위에다 

황제의 사돈까지 겸하게 되서 가충만 살 판 나게 된거지. 거기다 감히 자신을 외지로 추천한 신하를 

찾아내서 탄핵해버리는 위엄도 보여준다. 그렇게 서기 272년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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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독발수기능은 간헐적으로 양주-진주 일대를 침략했어. 서기 274년부터 서기 276년에 이르기까지

간간히 기록에 이름이 간간히 보이거든. 물론 서진도 두차례 쓴 맛을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령관을 내보내서 막게 했는데 바로 사마의의 7남, 부풍왕 사마준이란 인물이었다.

 

앞서 1편에서 말한 것처럼 사마량이 패전의 책임을 물어 파직당하고, 가충도 어영부영 간만 보다 끝났고

진압군의 총사령관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는데 거기에 사마준을 앉혀 토벌을 일임했던거야.

그리고 사마준은 기대에 부응한다.

 

몇년에 걸쳐 독발수기능 외에도 꾸준하게 변방을 침입해오는 이민족 격퇴에 공헌하여

상승세 타던 독발수기능의 기세를 꺾는데에 한몫한 셈이었지. 이후 다룰 팔왕의 난에서 병크로 점철된 

사마씨 황족들을 보노라면 부풍왕 사마준 이 인간은 사마씨들중 그나마 제대로 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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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2>에서의 문앙

 

그리고 이듬해 서기 277년, 독발수기능이 다시 난을 일으키자 문앙이란 인물이 조정의 명을 받고 토벌에 나선다.

<삼국지>  읽은 게이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인간흉기 문앙이 지휘봉을 잡았던 거다.

그리고 문앙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어. 독발수기능을 격파하고 그를 따르던 호족 수십만의 항복을 받아냈던거지.

 

말이 수십만이지 사실상 독발수기능을 따르던 세력이 거진 무너졌다는 뜻이었을거야. 이제 좀 토벌되나 싶더니만 지지리 운없게도

서진은 이듬해 독발수기능에게 다시 한방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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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1>에서의 양흔

 

위의 자료에도 나와있듯이 양흔은 서기 278년, 즉 문앙에게 독발수기능이 털리고 난 바로 이듬해에

양주로 재침해온 독발수기능에게 패사하고 만다. 저기서 양흔을 죽인 나발능은 약라발능으로, 독발수기능 휘하의 무장을 말해.

 

이 패배의 여파로 그 다음해인 서기 279년에는 아예 양주(凉州)가 함락되어 버려 사실상 서진은 서방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해버려.

 

서진입장에선 참 지겹고도 성가신 존재였을거고 읽는 게이들도 독발수기능 얘기가 슬슬 지루해지겠지?

그래서 서진조정에서도 마무리 투수로 '마륭' 이란 인물을 내보낸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마륭이 자청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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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9>에서의 마륭

 

게임상에는 웬 듣보쩌리무장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양주 함락으로 패닉에 빠져있던 무제 사마염을 찾아간 마륭은 정병 수천만 주면 독발수기능을 평정해보이겠다고 말해.

 

자신의 명성과 평판이 커리어를 좌지우지 하던 위진남북조 시대 특성상 마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명성이나 평판은

그다지 유명하지 못했고 오히려 듣보스러웠는데다 앞서 말한 호열, 견홍, 양흔 같이 커리어 빵빵한 장수들도 죄다 나가서 쳐발리고 죽었는데

웬 애송이가 찾아와서 수천만 주면 독발수기능 목을 따오겠다고 호언장담하니 누가 믿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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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고관대작들은 마륭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였고 그의 청을 들어주지 말 것을 진언하지만 무제 사마염은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륭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사마염의 윤허를 받은 마륭은 정병 수천을 뽑아 바로 양주로 향한다.

 

여기서 마륭이 어떻게 독발수기능을 쳐발랐는지에 대한 전술, 전략까지 풀자면 글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으니

대강이나마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때 마륭은 제갈량이 구상한 팔진도 전법을 이용해서 독발수기능을 무찔렀다고 해.

 

고작 수천의 병력으로 말이지. 아까 말한것처럼 전성기 시절의 독발수기능을 따르는 호족의 무리가 수십만이었던걸 감안하면 그 사이

사마준에게 꾸준히 쳐발려서 쇠락세를 탔다 하더라도 그 무리가 아무리 적어도 수만은 됐을텐데 그걸 극복하고 격퇴했으니

마륭이란 인물의 능력을 보여준다 할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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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서기 279년 말, 마륭은 독발수기능을 사로잡고 그 목을 벤다.

 

약 10여년에 걸친 난이 진압되었던 거지. 승전보를 들은 사마염은 기뻐하며 마륭의 등용을 반대하던

고관대작들에게 "그대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양주는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해.

 

여기서 눈치빠른 게이들은 배경년도를 보고 눈치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륭이 독발수기능을 잡아 죽인 년도를 보자.

서기 279년 말, 즉 오(吳) 토벌전이 이루어지기 불과 몇달 전이야.  서진은 오 토벌을 구상하고 준비에 착수하기 직전까지

독발수기능의 난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던거지. 웃기지 않냐? 국내의 반란도 진압 못한 마당에 외적을 도모할 궁리하고 있으니 말이지.

뭐 그만큼 국력이 뒷받침 되어줬다는 말도 되겠지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독발수기능의 난을 진압한 서진은 이제 본격적으로 주적 오(吳)를 멸할 준비에 착수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서기 280년, 장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각 요충지로 나아가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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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군(晉軍)은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총 세갈래로 남진해갔다.

 

초록색은 1편에서 말한 낭야왕 사마주가 이끄는 한갈래,

 파란색은 역시 1편에서 언급한 두예의 군세,

빨간색은 왕준이란 장수가 이끄는 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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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2>에서의 두예, 왕준

 

수적으로도 불리했고 사기충전해있던 진군을 막을 재간이 없던 오군(吳軍)은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패퇴했고

여기서 이른바 '파죽지세' 라는 고사성어가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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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2>에서의 손호

 

손권의 손자이자 오(吳)의 마지막 황제였던 손호는 전전긍긍하여 대책을 논의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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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과 진나라 군대를 막을 논의를 하는 손호

 

이미 때는 늦었었지. 오랜 손호의 폭정으로 인심은 이미 돌아선지 오래였고

손호도 이미 답은 나왔음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항복을 결심하지.

그리하여 서기 280년, 삼국은 진(晉)에 의해 하나로 통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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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란을 걸쳐 거진 한세기만에 진이라는 통일왕조로 재통일되었다지만 웃기게도

이 진이라는 통일 왕조는 얼마 가지 못했어. 물론 이 서진(西晉)이 망하고 사마씨의 진나라도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강남으로 쫓겨가서 동진(東晉)으로 명맥이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건 '서진' 이니까

그 반세기 남짓한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뤄볼까해. 

 

사실 지금까지는 좀 삼국시대에 어느정도 맞물려 있던 시기라서 딱 서진시대라고 잘라 말하긴 좀 그랬는데

이제부턴 진짜 서진시대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