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lbe.com/2159244354   3탄 로베르토 두란

 

http://www.ilbe.com/2145475456   2탄 토마스 헌즈

 

 http://www.ilbe.com/2144248128   1탄      조지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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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마블러스'헤글러 키 177cm
전적 62승 2무 3패 (52KO)   

 

 

 

 

 

 

해글러는 54년 5월 23일 뉴욕의 브라운스빌과 더불어 미국의 손꼽히는 슬럼가인 뉴저지주 뉴아크 흑인 빈민가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사생아로 태어난 해글러는 로베르토 두란과 같이 어릴 때부터 혹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어. 아버지가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1년 내내 쉬는날 없이 일해야했고 가난은 해글러의 가족에겐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였다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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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민머리 흑형의 모습이다.강해보이지 않노?

 

 

 

 

가난했지만 해글러의 집안분위기는 괜찮았다고해. 언제나 부지런하고 성실한 어머니는 해글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지. 어머니의 철저한 가정교육 아래 자라난 해글러는 결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비행소년도 아니었어. 해글러의 어머니는 해글러가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몇 가지 생활의 지침을 내려주었어. 항상 남을 존중할  것. 이유없이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 것. 절대로 먼저 싸움을 걸지 말 것. 단 정당하다고 생각할 때는 끝까지 싸울 것 등이었다고해.(훌륭한 어머니노?) 해글러는 어머니를 존경했으며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절대로 먼저 싸움을 걸지 않았으며 싸울 때에도 절대 무기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이건 카더라 니깐 믿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소년시절 해글러의 영웅은 전 헤비급 세계챔피언 플로이드 패터슨이었어. 60년 6월 20일 열렸던 패터슨과 잉그마르 요한슨과의 재대결 포스터가 해글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담벽에 붙었고 빗물에 젖어 너덜거리는 포스터 속에 실린 패터슨의 날렵한 모습에 해글러는 완전히 매혹되고 말지. 그리고 그 포스터는 해글러의 인생을 결정짓게 돼.

 

 

 

 

플로이드 패터슨.jpg

 

 

마빈 헤글러의 어릴적 영웅 플로이드 패터슨(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매너가 좋기로도 유명하고 복싱선수로서 순둥이라는 말까지 나왔지.

 

 전적 55승1무8패 40KO

 

9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헤글러가16세가 되던 70년 해글러의 가족은 매사추세츠 브록턴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해 가을부터 해글러는 본격적으로 복싱을 배우기 시작하지. 맨처음 해글러가 찾아간 곳은 동네의 철물점 2층에 있는 허름한 체육관이었다고해. 그 체육관은 이탈리아계인 페트로넬리 형제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세 사람의 인연은 해글러가 은퇴하는 87년까지 이어지게 돼.

 

 

 

해글러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고해. 손톱과 발톱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뛰고 두들겼으며 매일 남들보다 2배 이상 훈련에 매진했지.성실한 해글러의 자세에 감명받은 페트로넬리 형제는 열성을다해 해글러를 지도했어. 입관 초기에는 백인에게 복싱을 지도받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페트로넬리 형제의 진심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전적으로 그들을 신뢰하게 되었고 71년 아마추어 복서로 링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노력으로 73년.매사추세츠 로웰 벌어진 주 골든글러브대회에 출전한 해글러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고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지.

 

 

 

결승전이 끝난 후 페트로넬리 형제와 함께 라커룸으로 돌아온 해글러는 믿지 못할 일을 경험하게 돼. 라커룸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흑인 사나이가 들어와 "자네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고 말해 주는데 그 흑인 사나이는 다름 아닌 소년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플로이드 패터슨이었어.  자식이 매맞는 운동을 하는 것을 반대하던 어머니도 골든글러브 우승을 하자 반대를 굽히게 되고 이후 해글러는 AAU(전미선수권대회)에 출전, 역시 우승을 차지하고 73년 5월 프로로 전향하게 된다. 헤글러의 나이 19살때의 일이야.

 

 

 

 

해글러의 행보는 순조로웠어. 73년에 8연승(6KO), 74년엔 9연승을 달리다가 뮌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슈거 레이 실즈와 시애틀에서 맞붙었는데 홈타운 디시전으로 억울한 무승부를 기록하게 돼. 이후 다시 8연승을 거두었으나 76년 들어 필라델피아 원정전에서 보비 왓츠와 윌리 몬로에게 모두 텃세 판정에 밀려 두 번의 패배를 기록하게돼.

 

 

해글러는 주로 보스턴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보스턴과 필라델피아는 뉴욕을 중심으로 같은 동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지역감정이 매우 심했다고해.(전라도가 생각나노?) 해글러는 지역감정의 애매한 희생자가 된 것이지.

"텃세 판정? 그런 거 신경쓰지 않습니다. 진 건 진거죠"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멘탈 ㅅㅌㅊ?) 다시 링에 오른 해글러는 무패 가도를 달리며 78년 3월 WBC 미들급 8위에 오르며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어.

 

 

 

당시 미들급은 카를로스 몬존의 은퇴 이후 강력한 통치자가 없었어. 몬존의 타이틀은 로드리고 발데스를 넘어 우고 코로에게 가 있었지. 해글러는 정상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좀처럼 세계도전의 기회를 얻질 못했다. 돈 킹이나 밥 애럼 같은 거물 프로모터에게 소속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해글러는 데뷔시절부터 자신의 시합을 주선해준 늙은 프로모터 립 바렌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해글러를 주목하고 있던 선배 복서 조 프레이저는 해글러를 자신의 사무실에 불러 인상적인 충고를 해줘.

 

 

 

"자네가 세계타이틀에 도전하지 못하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흑인이라는 것. 둘째, 왼손잡이라는 것. 셋째, 너무 강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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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몬존 아르헨티나의 영웅

 

전적 87승 3패 9무 59KO

 

 

 

 

 

해글러가 시합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세계도전의 길은 멀어져갔어. 우고 코로는 너무 강한 해글러와의 대전을 노골적으로 기피했지. 그래도 해글러는 이기는 것만이 세계왕좌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고 그 신념에 따라 꿋꿋이 연승가도를 이어간다.

 

 

 

79년 2월 해글러는 자신에게 무승부를 안겨주기도 했던 라이벌 슈거 레이 실즈를 불과 80초만에 실신시키고 세계 미들급 랭킹 1위에 올라. 그리고 4개월 후 자신과의 대결을 거부해 온 우고 코로가 비토 안투오페르모에게 패해 타이틀이 이양되자 해글러는 79년 11월 30일 대망의 첫 세계도전 기회를 잡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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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 안투오페르모

 

전적 50승7패2무(21KO)

 

 

 

 

 

 

경기 전 전문가들의 예상은 5 : 1의 압도적인 해글러의 우세였지. 그날 라스베가스 시저스팰리스 호텔에서는 세계타이틀 더블헤더가 준비어 있었는데 해글러vs비토 안투오페르모의 미들급 타이틀전과 슈거 레이 레너드vs윌프레도 베니테스의 웰터급 타이틀매치였지. 해글러는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석연찮은 무승부로 끝나고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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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부로 끝난 첫번째 타이틀전

 

 

 

 

이 경기 이후 해글러는 "절대 심판을 믿지 않겠다. 모든 경기를 KO로 끝내버려 심판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해. 비록 경기에 패했지만 해글러의 랭킹은 내려가지 않았지. 80년 3월 안투오페르모의 타이틀은 엘런 민터에 의해 다시 바다 건너 영국으로 넘어가버려.

 

 

 

그리고 80년 9월 두번째 세계도전의 기회가 찾아와. 영국에서 열린 경기였지. 민터는 웸블리구장에 모인 광적인 영국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시합에 임했지만 경기 내내 해글러의 냉정한 펀치에 양쪽 눈위가 모두 찢어지며 피투성이가 된 채 시합을 포기하고말지. 수 년을 기다려온 감격적인 챔피언 벨트였지. 그러나 환호도 잠시, 격분한 영국관중들의 물병세례에 해글러는 경찰에 휩싸여 황급히 링을 빠져나와야만 했어. (영국새끼들 축구말고 복싱도 지랄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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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TKO로 승리한 헤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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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헤글러 에게 오물을 투척하는 영국관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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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터를 꺽고 챔피언이 된 마빈 헤글러

 

 

 

꿈에 그리던 왕좌에 오른 해글러는 모든 도전자들을 모두 KO로 가라앉히고 거침없는 방어행진을 이어나가지.

박종팔, 백인철과의 대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풀헨시오 오벨메히야스(당시 전적 30승 무패 28KO박종팔이 KO로 패배한다.) 1차 방어전에서 만나 기량 차이를 보여주며 8회 TKO승, 비토 안투오 페르모와의 재대결에서 4회 종료 TKO승 을 거두고 완전한 자신의 우위를 확인했으며 시리아에서 날아온터프가이 무스타파 햄쇼와의 대결 역시  눈언저리를 커트시키며 11회 TKO승을 거두고 롱런의 발판을 다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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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시리아 성님 무스타파 햄쇼

 

전적 44승5패2무 28KO

 

 

 

 

 

이후 헤글러는 강력한 기량을 과시하며 6차방어전까지 무난하게 방어한다.이 시합의 해설을 맡았던 레너드는 "여러분들은 왜 내가 은퇴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지금 보고 계십니다"라며 해글러의 기량에 찬탄을 보낸다.그리고 레너드는 나중에 헤글러 기량이 예전만 못할때 컴백해서 통수친다.(고향이?)이무렵 헤글러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Marvellous". 바로 '경이로운' 챔피언이라는 뜻이지.

 

 

 

대단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해글러는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어. 당시 인기의 중심은 미들급이 아닌 웰터급에 있었거든. 두란의 웰터급 월장으로 시작된 웰터급 슈퍼 시리즈는 레너드vs두란 1, 2차전, 레너드vs헌즈전을 거치며 전세계 복싱팬들을 달궈놓고 있었고 독재자 해글러가 철권통치를 휘두르고 있던 미들급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었어. 또한 해글러는 화려한 언변이나 제스처 등 프로기질이 별로 없었어. 묵묵히 운동만 하는 타입이었던 거지. 그런 탓에 해글러는 막강한 실력과 통합챔피언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있으면서도 방어전에서 챙기는 파이트머니는 푼돈에 지나지 않았었던 거야.(뭐든지 쇼맨쉽이 중요하노?)

 

 

 

84년 10월 햄쇼와의 재대결에선 더티한 버팅으로 일관하는 햄쇼를 두 번의 다운을 이끌어내며 철저히 패대기치고 10차 방어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84년 12월 13일 밥 애럼은  이전부터 대전설이 피어오르던 디트로이트의 저격수 토머스 헌스와의 세기의 대결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예정 일자는 85년 4월 15일. 흥행수익을 제외한 두 선수의 순수 파이트머니만 해글러 540만 달러, 헌스 530만 달러였으니 어마어마하지않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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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주하게 된 마빈 헤글러와 토마스 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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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라운드 TKO승으로 승리하는 마빈 헤글러

 

 

 

헌즈를 꺾고 난 후 적당한 도전자를 찾지 못하던 해글러에게 러브콜을 보낸 겁없는 선수가 있었는데 "아프리카의 야수"라 불리던 존 무가비라는 아프리카 성님이였다. 모스크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무가비는 영국의 매니저 미키 더프의 눈에 들어 유럽무대를 위주로 전적을 쌓아가던 주니어미들급 출신 선수였다.

 

 

 

라이트훅을 앞세워 26연속 KO행진을 벌여나가던 아프리카 성님 무가비는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지명도전권을 획득하게 되고 해글러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지. 해글러는 부상으로 인해 4개월 가량 시합을 연기하는 바람에 50만 달러의 금전적 손해를 입으며 링에 올라야만 했어. 아프리카 성님 무가비에게 초반엔 밀리다가 11회에 TKO로 헤글러가 승리를 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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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라운드에 아프리카 성님 에게 승리한 마빈 헤글러

 

 

 

이후 체력과 기량의 저하로 은퇴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해글러는 레너드가 자신과의 대결을 위해 조건부 컴백을 선언하자 결국 레너드와의 꿈의 대결에 사인하게 돼. 무가비전 이후 IBF는 해글러가 지명 방어전 시한을 넘기자 타이틀을 박탈해버리고 WBA 역시 해롤 그래햄과 지명 방어전을 치르지 않고 레너드와 대결을 벌이는 것을 이유로 타이틀을 박탈해 버려. WBC 타이틀을 놓고 벌인 레너드와 해글러의 대결은 WBC 룰에 따라 12라운드로 합의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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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와 헤글러의 슈퍼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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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전 예상을 깨고 레너드의 2 : 1 판정승으로 막을 내린다.

 

 

 

 

 

근 11년간 패배를 모르던 해글러는 헤글러. 경기 후 해글러는 분명한 자신의 승리였다며 심판 판정에 불쾌함을 표시했으며 헌즈와의 재대결, 레너드와의 재대결 등 수백만 달러를 더 벌 수 있는 꿈의 카드들을 남겨두고 은퇴를해버려.

 

 

 

은퇴 이후 영화판에 뛰어든 해글러는 B급 액션물 "인디오"의 주연을 맡아 영화계에서의 성공을 꿈꾸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망라. 레너드전 이후 아내 와 자주 다투게 되었는데 결국 90년 이혼까지 하게 돼. 이혼 직후 이태리로 건너가 "인디오 2"를 촬영했으나 속편 역시 흥행에 실패하자 영화계에서도 떠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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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B급 영화에 출연하신 헤글러 성님

 

 

 

 

복싱계에선 여러 차례  컴백설이 나돌긴 했지만 해글러는 다시는 링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최상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할 바에야 링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지. 나이 마흔이 넘도록 링에 서면서 추한 모습을 보여준 레너드, 두란과는 상반되게 퇴장에 있어서도 챔피언 다운 모습을 보여주어 현재까지 그의 위대함은 더욱 빛나고 있다고 봐.

 

 

 

 

해글러가 사라진 이후 미들급은 현재 버나드 홉킨스라는 강력한 챔피언이 있긴하지만 해글러 시절의 카리스마를 느끼기는 힘들어.강한 챔피언임에는 분명하지만 경기스타일이나 인기 면에서 해글러와 비교하기에는20% 정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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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영감 버나드 홉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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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지금도 가끔씩 헤글러 성님의 대머리와 근육질 몸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들이 그리울때 있다.딴지일보 복싱기사도 참고해서 썼다.

 

읽어줘서 고맙다 게이들아.

 

 

 

 

 

 

 

1.카리스마 넘쳤던

 

2.대머리 헤글러 성님

 

3.짱짱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