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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0월 18일 미국 디트로이트 출생이야.

별명은 디트로이트 코브라,저격수,히트맨(별명이 많盧?)

신장 185cm

세계 타이틀 6체급을 석권한 레전드 챔피언이야.

총전적 67전 61승 5패 1무

 

미국 네바다주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토머스 헌스는 여느 흑인 복서들과 마찬가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흑형들은 다 불우하盧?). 여섯 날 나던 해 아버지는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리고 이후 영영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고해.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어머니 로이스 헌즈는 흑인 폭동을 계기로 1964년 네바다를 떠나 디트로이트에 정착하게 돼

헌즈가 살던 이스트사이트 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강력 범죄가 들끓는 전형적인 빈민굴이었어. 헌스의 어머니는 청소부, 미용실 보조 등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9남매를 길렀지. 대부분의 빈민가 흑인 소년들이 범죄와 탈선의 유혹에 빠져 험난한 청소년기를 보내는데 반해 소년 헌스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모범생이었어.(다른흑형들보다 착하盧) 홀로 9남매를 키우는 어머니의 고초를 어린 헌스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

 

 

원래 헌즈는 소년 시절 복싱과는 거리가 멀었어.큰 키때문에 농구선수가 될려고 노력했지.개인적으로 농구를 했더라도 아주 잘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장점일수있는 큰 키로인해 헌즈는 길거리 싸움꾼들에세 자주 괴롭힘을 당했고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10살때 처음으로 복싱을 시작하지.밴텀급으로 첨 복싱을 시작한 헌즈의 전적은 그리 좋지 못했어.6전을 싸울동안 2승4패였으니까.

 

 

이후 훌륭항 지도자를 만나 숨겨진 재능이 빛을발하고 주니어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하기도하지.모든 운동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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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토마스 헌즈

 

 

 

 

나이가 들면서 덩치가 더 커진 헌즈는 라이트 웰터급으로 체급을 상향한 헌즈는 마땅한 라이벌 없이 라이트 웰터급을 평정하지.그리고 77년 11월 프로로 전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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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더파이팅의 마시바가 토마스 헌즈를 모델로 한건

게이들도 알고있지?

 

 

 

1980년을 맞이한 헌스는 전 세계 챔피언 앙헬 에스파다(4회 KO승)를 꺾고 USBA 웰터급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5월에는 역시 전 세계 챔피언 에디 가소를 1회에 셧아웃시키며 대망의 WBA 웰터급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다. 챔피언은  유명한 멕시코의 턱분쇄기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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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에바스는 18세의 나이에 챔피언에 올라 11차 방어까지 한

강력한 챔피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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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경기는 2라운드 헌즈의 강력한 스트레이트 한방에 KO되고

싱겁게 끝나버리지.

 

 

 

 

 

 

챔피언에 오른 헌즈는 1차 방어에 성공하고, 랜디 실즈를 맞아 다소 루즈한 경기 끝에 힘겹게 13회 부상 TKO승을 거두고 2차 방어를 마쳤으며 81년 6월 25일 레너드와의 통합전에 앞서 파블로 바예스를 맞아 4라운드 라이트 스트레이트 일발 녹아웃을 거두고 최종 점검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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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타이틀 전을 앞둔 레너드와 헌즈

MMA 선수 라샤드 에반스가 레너드를 닮아서 별명이 슈가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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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너드에게 사상 첫 패배를 맛보게되지.

 

 

 

 

레너드에 패한 후 헌스는 레너드와의 재전을 추진하는 한편 주니어미들급으로 전향을 노리며 3개월 후 어니 싱글태리를 재기전 상대로 맞이하게 된다. 싱글태리는 로베르토 두란이 재기 상대로 택했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한 적이 있는 네임 밸류에 비해 꽤나 실속 있는 선수였지.

 

레너드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주니어미들급으로 무대를 옮긴 헌즈는 지명 도전자의 자격으로 82년 12월 3일 3체급 제패에 빛나는 전파탐지기 윌프레도 베니테스가 가진 WBC 수퍼웰터급 타이틀 사냥에 나서게 된다. 이 무렵 헌즈와 해글러와의 대전설이 몇 차례 오가곤 했지만 양측간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고 있던 차였는데 돈 킹은 200만 달러의 파이트머니를 보장하며 먼저 베니테스와 싸울 것을 권유했고 집도 절도(타이틀) 없던 헌즈는 돈 킹의 권유를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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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 토리코 복서 윌프레도 베니테스

 

 

 

 

뉴올리안스 슈퍼돔에서 벌어진 이 시합은 두 선수의 네임밸류에 비해 다소 루즈한 편이었다. 각각 한 번씩 슬립성 다운을 주고받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꽃 튀는 스파크는 일지 않았으며 후반 주도권을 장악했던 헌스의 판정승으로 끝났어.

그리고  84년 6월에 벌어진 3차 방어전에서 헌스는 마나마의 영웅 로베르토 두란을 상대로 맞이하게돼.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적인 전투력을 선보이며 로베르토 두란을 2회 KO로 잠재워 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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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의 영웅 로베르토 두란

 

 

 두란전을 승리로 이끈 헌스는 한차례의 방어전을 더 치른 후 85년 4월 미들급의 독재자 마빈 해글러에게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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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해글러와 토마스 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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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헤글러에게 3라운드 KO를 당하면서 두번째 패배를 맛보게 되지.

 

 

 

 

해글러전의 패배 이후 1년에 가까운 긴 공백을 가졌던 헌즈.

당시까지 헌즈는 WBC 수퍼웰터급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나 존 무가비와 의무 방어전이 잡히자 4체급 제패를 이유로 타이틀 반납하고 두 체급을 건너뛰어 데니스 안드리스의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헌즈는 한 수 위의 기량으로 6회에 네 번의 다운, 9회에 또 한 차례 다운을 뺏으며 10회 TKO승을 거두고 복싱사상 아홉 번째 3체급 석권을 달성한다. 경기 후 헌즈는 "누구와 싸워도 자신 있다. 복싱 사상 최초로 4체급 석권의 신화를 이루어 복싱사상 불멸의 챔피언으로 남겠다"며 기염을 토한다. 87년 3월의 일이야.

 

 

3체급을 석권한 헌즈는 레너드가 해글러전을 승리로 이끈 후 곧바로 타이틀을 반납하자 다시 미들급으로 내려가 아르헨티나의 터프가이 후앙 롤단과 WBC 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 4라운드 KO로 장식하며 현대 복싱 역사상 최초로 4체급을 석권하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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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역사상 최초로 4체급을 석권한 토마스 헌즈

 

 

 

해글러와 레너드가 떠난 미들급은 당분간 헌즈의 독주가 예상되어졌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이노?. 전 헤비급 챔피언 마이클 스핑크스의 영양사 매키 쉴스턴을 고용 해글러와의 재대결을 준비하던 헌즈는 1차 방어전에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된다. 필생의 천적 아이란 바클리에게 3회 KO로 무너져버린 것이다.

헌스와 마찬가지로 186cm의 장신에 떡 벌어진 당당한 체격의 소유자였던 바클리는 비록 B급 챔피언이었지만 유독 헌스에게만은 천적이었다. 88년 6월 헌스는 첫 방어전에서 압도적인 스피드와 테크닉을 바탕으로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 3라운드 말미 바클리에게 불의의 기습을 허용하고 다운을 뺏기고 곧바로 다시 맞섰으나 재차 좌우연타를 허용하고 로프줄 사이로 나가 떨어져버리지.

 

바클리에게 예상치도 못했던 험한 꼴을 당한 헌즈는 5체급 제패를 위해 WBA 수퍼미들급 챔피언 풀헨시오 오벨메히야스에게 추파를 던졌으나 오벨메히야스의 보이콧으로 경기가 성사되지 못하자 제임스 킨첸을 상대로 신생기구인 WBO와 NABF 수퍼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결정전을 벌여 4회 한차례 다운을 빼앗기는 악전고투 끝에 조금은 석연찮은 2 : 1 판정승을 거두며 5체급을 석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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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체급을 석권한 토마스 헌즈

 

 

 

 

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헌즈는 노쇠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바클리전의 패배, 킨첸전에서의 고전 등 전성기의 용맹함이 누그러졌다는 평가를 들을 무렵 숙원이던 레너드와의 재대결이 잡히게 되고 헌즈는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걸고 전장에 나서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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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부로 끝난 레너드 와 헌즈의 2차전.개인적으론 헌즈의 승리라고 본다.

 

 

 

 

 

 

 

 

레너드와의 재대결 이후 캐나다의 복병 마이클 오라지데와 WBO 수퍼미들급 타이틀 방어전을 벌여 9회 한차례 다운을 뺏었으나 결국 KO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판정으로 타이틀 수성에 성공한다. 근 2년 간 KO승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헌즈의 시대는 갔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헌즈는 전성기를 넘긴 91년 6월 다시 라이트헤비급으로 월장해 언더독의 예상을 깨고 무패의 챔피언 버질 힐을 판정으로 잡는 이변을 일으키며 다시 왕좌에 오른다. 노장의 마지막 불꽃이지. 그러나 이듬해 벌어진 1차 방어전에서 또다시 바클리에게 판정으로 무너지면서 천적관계임을 재확인하게 된다.(헌즈에겐 아이란 바클리가 완전 척적임) 

93년 11월 재기하여 앤드류 메이너드를 1회 KO로 부수고 크루저급까지 체급을 올려 활동하던 헌즈는 한 해 1-2경기 정도를 치르며 크루저급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2000년 4월 유라이어 그랜트와의 시합에서 무릎을 삐어 TKO패를 당하게 되며 완전히 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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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명예에 전당에 헌액된 토마스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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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들의 사진 헤글러,레너드,헌즈

 

 

 

헌즈의 위대한 점은 빛나는 링 커리어뿐만 아니라 성실한 생활 태도와 각종 자선활동을 통해 링 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체육관 명의로 사재를 털어 수십 명의 불우 청소년들의 생활비를 대주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갱생원, 고아원 등에 기부를 하는 등 자선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 또 여자문제 등 사생활에서도 전혀 잡음이 없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헌스는 한 여자만을 사랑할 것이며 첫사랑과 결혼할 것이라며 밝혀왔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었다. 그렇기에 더 위대한 챔피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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