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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3대 대전 중 하나인 비수대전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5077992513

위진남북조 시대의 백인종, 갈족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5094237015

5호 16국 시대의 갈족의 나라, 후조(後趙)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5123451510

5호 16국 시대 흉노족의 나라, 전조(前趙)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5131157555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무장 기병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5159778343

 
황제는 ㅎㅌㅊ 신하는 ㅅㅌㅊ의 나라 동진(東晉)에 대하여 - 上 : http://www.ilbe.com/51608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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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편에 이어 下편 마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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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17년, 최후의 보루 장안(長安)은 흉노에 의해 함락당했고

서진(西晉)의 마지막 황제 민제(愍帝)가 투항함으로서 서진은 멸망했어.

 

물론 정확한 표현으로는 서진의 중앙정부가 무너졌다고 보는게 맞다.

각지엔 아직 서진의 잔존세력이라 할 수있는 지방군벌과 황족인 번왕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강남의 통치자가 된 낭야왕 사마예가 그 대표적 번왕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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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제가 투항했다는 소식을 접한 강남의 신하들은 너나 할 것없이 단절된 서진의 황통을 계승할 것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주군, 낭야왕 사마예를 새 황제로 옹립할 것을 결의했어.

 

방계황족이긴 했지만 안정된 지역에서 안정된 기반을 두고 있던 이는 사마예 뿐이었던데다

앞서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으로 황족이란 황족들은 거의 죽고 없어서 방계황족이라 할지라도

이미 민제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던 사마예는 암묵적인 황위 계승자 1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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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서기 317년, 사마예는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로 즉위, 동진(東晉)의 초대황제, 원제(元帝)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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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화북에는 이민족들에 의한 5호 16국 시대가, 화남에는 한족의 동진이 들어서게 되었지.

 

특히 동진정권의 수립소식에 제일 먼저 반응한 이는 화북에서의 이민족 열국들도 아닌, 같은 한족출신의 호족, 사족집단이었어.

 

위 링크에도 띄워 두었지만 혹시 내가 예전에 쓴 갈족에 의한 후조(後趙)에 대해

쓴 글을 읽은 게이들은 석륵이 회유하려 했던 한족출신의 호족, 사족들을 기억할거야.

 

서진이 무너지고 5호 16국 시대가 도래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호족들은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유민들을 모아 거두어

스스로 무장하고 침입해온 이민족들로부터 스스로 방어하고자 일종의 자위대 같은걸 만들었었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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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오벽(坞壁)' 집단 이라고 한다.

 

이들 오벽집단들의 우두머리는 당연히 유민들을 거두고 무장시킨 지방의 호족들이었다.

그리고 이 호족들이 이렇게 자체무장해서 이민족들의 나라에 개기는 것도 애초에 이민족들의 정권에 굴복하고 협조하기 싫어서였겠지?

이민족들한테 깨갱할 것 같았으면 애시당초 이렇게 힘들여서 싸울 이유가 없잖아?

 

그러다 마침 강남에서 서진을 계승한 동진이 세워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오벽집단들은 너 나 할것없이 남하하여 갓 수립된 동진에 귀순하기 시작했던거지.

 

그렇다면 동진에서는 귀순해온 오벽집단을 어떻게 대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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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받아줬지.

 

인구가 늘어나는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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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짜로 받아줬던건 아니고 이들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쥐어주어서 북방에 배치하여 남하해오는 이민족들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겼다.

뭐 애초에 오벽집단 부터가 군사집단으로 시작한 무리였던지라 큰 애로사항은 없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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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오벽집단은 점차 정예화 되어 훗날 동진의 양대 군단 중 하나인 '북부군' 의 시초가 돼. 

얘네가 나중에 비수대전이라고 불리우는 전투에서 전진(前秦)의 백만대군을 개박살낸 북부군단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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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듯 나름의 국방력도 갖추고 황제를 칭해 하나의 제국으로서 전환한

사마예의 정권이었건만, 아직 찜찜한 구석은 여전히 존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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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上편에서 말한 강남호족들을 기억할거야.

 

중원호족들에게 멸시받고 열등감으로 점철되어 있던 이 강남호족들을 벼슬로 회유해서 포섭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실질적으로도 강남은 그들의 홈그라운드였다는게 여간 거북할 수 없었거든.

 

일단 황제인 사마예부터가 강남에 올때부터 빈털털이였고 그나마 조력자 포지션인 왕도와 낭야 왕씨 가문도

나름 강남에서 끗발날리는 호족가문이긴 했지만 엄연히 북방출신 가문이라 강남호족들과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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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 강남호족들 입장에선 동진이 수립된 곳인 강남 지역부터가 예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지네 홈그라운드였고

재정이나 국토 같은 물질적인 것들은 실질적으로 걔네들 소유였으니 어디 하나 강남호족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는 마당에

거기 한가운데 황제랍시고 군림하고 있는 사마예가 얼마나 찜찜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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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반란이라도 터지면 어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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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놈도 이 강남호족들이고 그걸 진압해야 할 군사를 통솔하는 것도 이 강남놈들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 강남호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현재의 동진이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이고 사마예도 황제가 될 수 있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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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초대황제 사마예부터가 신하들 눈치나 보며 빌빌 기던 처지였던게

훗날 이후의 역대 동진황제들의 황권이 바닥을 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던거지.

 

고로 사마예 입장에서는 훗날을 위해서든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든 간에 마땅히 자구책이 필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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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센 놈들을 적절하게 짓눌러주고 견제하기 위해서 사마예는 앞서 말한

벽집단의 지도자이자 따지고보면 북방 내지 중원출신의 호족들을 끌어들인다.

 

역시 上편에서 말했듯이 예전의 서진시대나 지금의 동진시대나 다를 것 없이

항상 강남호족들보다 甲의 위치에 서 있던게 중원호족들이었다.

 

거기다 얘네가 북방에서 뭘 데리고 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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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면 군사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벽집단이었지?

 

강남호족들이 거느린 사병들을 제압할 수 있는 숫자나 능력이 되었던 북방호족들의 오벽집단은

사마예에게 있어서 든든했을거고 강남호족들의 군사력에 대항할 만한 힘이 되어주기엔 충분해 보였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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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마예는 이 중원호족들을 실질적인 힘이라 할 수있는 군사력을 좌지우지하는 

군부의 핵심자리에 앉히기 시작했고 동진의 군부는 거의 이들 중원호족들로 채워진다.

 

힘으로 강남호족들을 압도하고 견제하기 위해 내린 고육지책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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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 인물이 북방사족 출신이면서 최종 통수권자이자 군부의 수장이었던 왕돈(王敦)이란 인물이었어.

성씨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왕돈 역시 낭야 왕씨 가문이었고 킹메이커 왕도의 사촌형이었다.

 

당시 동진의 조정은 정계에서는 왕도가, 군부에서는 왕돈이 꽉 쥐고 있었으니

동진은 거의 낭야 왕씨 가문의 세상이었다고 봐도 무방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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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사마예는 제위에 올랐을 때부터 왕도를 승상으로 임명했고

왕돈도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초장부터 낭야 왕씨 가문을 대폭 밀어주고 있었어.

 

오죽했음 사마예부터가 일찍이 왕도에게 자신과 함께 용상에 앉으라고 했다고도 하고 '왕씨와 사마씨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 라는

말이 나돌정도로 낭야 왕씨는 동진을 대표하는 문벌귀족이자 실권자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서성(書聖)' 이라고도 불리우며 게이들도 잘 아는 왕희지도 왕도의 조카로, 이 낭야 왕씨 출신이다.

 

 

즉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초대황제 원제 사마예의 황권부터가 신하들의 눈치나 보며 바닥을 기고 있었고 

특히 강남호족들의 군사력을 두려워하여 역시 무력을 보유한 북방호족들을 대거 기용했고

그 대표적인 북방호족 가문이 낭야 왕씨였다는 거야.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기지.

 

 

대놓고 북방호족들에게 밀려난 강남호족들이 이러한 처우에 불만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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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있었다.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생각해 보자.

 

애초에 사마예 정권에 협력하게 된 계기도 벼슬을 줘서 가담하겠다는 조건이었는데,  기껏 자신의 부와 땅을

사마예에게 바쳐서 동진정권의 수립에 기여했는데 돌아온 보답이 미미한 한직이었으니 안빡치고 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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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진의 고위직은 문무계를 막론하고 주로 북방호족 출신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그 하위는 강남호족들의 몫이었어. 

 

예를 들어 문관계를 보자면 재상이라 할 수있는 승상을 비롯한 소위 말하는 삼공(三公)이나 거의 장관급 직책들은

북방호족들이 독차지 하고 있었고 요즘으로 따지면 차관급 같은 속관은 강남호족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던거지.

물론 요즘의 차관이 낮은 직책은 아니다만 굳이 예를 들어서 북방, 강남호족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그렇다는거야.

 

그리고 무관계 쪽도 역시 마찬가지고.

 

군부의 통수권은 북방호족들이 쥐고 있으되, 강남호족들의 포지션은 참모 쪽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이렇듯, 강남호족들에 대한 처우는 보잘것 없거나 좋아봐야 북방호족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강남호족들의 불만은 나날이 쌓여갈 수 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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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불만이 결국 폭발해서 겉으로 표출된 게 위에서 언급한 '왕돈의 난' '소준의 난' 이라는 두 차례 반란사건이야.

 

모두 왕돈과 소준이란 인물이 일으킨 난으로, 왕돈의 난은 원제 사마예의 대에서 2대 황제 명제(明帝) 사마소의 대에 걸쳐 이어졌고

소준의 난도 거의 맞물려서 2대의 명제에서 3대 성제(成帝) 사마연의 대에 걸쳐 발발한 난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불만을 품은건 강남호족들인데 왜 북방호족 출신의 왕돈이 반란을 일으켰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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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돈이 너무 시건방진데다 군권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원제 사마예가 좀 꺼려해서 왕돈이 이에 불만을 품고 거병한 탓도 있지만

왕돈의 부장들이자 참모진이라 할 수있는 강남호족들이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킨 요인이 더 크다.

 

소준의 난 역시 마찬가지고.

 

모두 부하들인 강남호족들의 권유와 선동에 화딱지가 나서 반기를 든 케이스라고 볼 수 있어.

 

 이때도 동진 황제들의 황권이 미약했음을 알 수있는 사례가 있는데,

이 두차례의 난을 겪는동안, 

 

원제 사마예 왕돈의 반란에 충격을 받고 앓다가 죽어버렸고

뒤이은 명제(明帝) 사마소 진압에 골머리 썩히다가 요절,

3대 황제 성제(成帝) 사마연은 소준의 난때 아예 감금되어버렸다.

 

 

그리고 왕돈과 소준 모두 수도 건강(建康)을 점령하고 자신의 막부를 열고 전횡했다는 공통점이 있지.

황제는 거의 허수아비 신세였고.

 

왕돈이 반란을 일으킨 서기 322년부터 소준의 반란이 종식되는 서기 328년에 이르기까지

이 7년간의 군부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진의 수도권을 방어하는 수도군이 손도 못써보고 격파당했기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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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북부군이나 서부군 같은 두 군단은 뭐하고 있었냐고?

반란을 일으킨게 차례로 왕돈의 서부군과 소준의 북부군이었다.

 

이렇듯, 강력한 두 군단의 연달은 반란에 조정은 장악당하고 황제는 유린당할 정도로 황권은 미약했던거야.

명색이 나라의 양대 군부로 응당 그 군부를 장악했어야 하건만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고 있던게 동진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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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군약신강의 전통은 이후 동진의 역대 황제들까지 쭉 이어졌어.

 

황제들의 생몰년을 보다시피 요절한 탓에 황권에 힘이 실릴 겨를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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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중에 황제들이 줄줄이 요절해버린 탓에 미처 황권이 힘을 기를 시간을 벌지 못한 요인도 있지만

원제 사마예부터가 첫단추를 잘못끼운 바람에 벌어진 사태라고 보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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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와는 반대로 동진의 조정은 시대별로 명문호족들이 주도했는데,

대표적인 가문들로는 낭야 왕씨, 양하 사씨, 초국 환씨 등이 있었지.

동진은 황제들보다는 신하들이 더 조명 받는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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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

 

낭야 왕씨야 앞서 말했고 이 양하 사씨는 동진 중기에 집권한 가문인데 위에 링크걸어둔

 '비수대전' 에서 전진(前秦)'의 백만대군을 깨뜨리는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가문이기도 해.

대표 인물이 재상을 지낸 사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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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온

 

북벌이라는 땅따먹기로 동진의 국토를 크게 확장했지만 희대의 권신이었다.

 

마지막으로 초군 환씨는 중기에서 말기에 득세한 가문인데 혹자는 <삼국지>에서 환범의 후손이 동진에 와서 뿌리내린게 이 초군 환씨라고도 본다.

대표적인 인물이 환온, 환현인데 둘은 부자지간으로 부자가 사이좋게 각각 7대 황제 사마혁과 10대 황제 사마덕종을 폐위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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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문제 사마욱

 

특히 7대 황제 사마혁을 폐위하고 8대 황제 간문제(簡文帝) 사마욱을 옹립한 환온은

아예 제위를 빼앗을 생각에  간문제를 겁박하기까지 했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어.

포인트는 그만큼 환온의 권력이 막강했다는 것이고 황제는 그냥 무늬만 황제였다는거지.

 

그리고 그 아들인 환현이란 놈은 일시적으로나마 아예 동진을 전복시키고 초(楚)라는 나라를 세워 황제를 칭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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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그러다 동진 최후의 권신이자 찬탈자로서 집권하는 이가 '유유' 라는 인물이야.

유유가 등장할 무렵의 동진은 이미 나라의 기강이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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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북부군, 서부군의 군단장들은 파벌이 나뉘어 서로 치고 박느라 여념이 없었고,

황족들은 다른 군벌들과 내란을 벌이며 사치와 폭정을 병행하여 백성들 삥뜯기에 바빴어. 

기껏 나라 지키라고 힘 실어준 북부군, 서부군이 이젠 나라를 갉아먹는 해충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한마디로 개판이었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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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말~5세기 초의 판도

 

이때 유유는 거듭된 북벌에서 공을 세운 것을 기반으로 실력을 쌓아 입지를 든든히 한 후

실권자로 군림했고 결국 동진의 11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가 되는 공제 사마덕문을 폐위하고 제위에 올라

남북조 시대 남조의 첫번째 왕조인 송(宋)을 건국하게 돼.

 

 

신하들의 힘을 빌어 건국되고 결국 권신에 의해 무너진 동진되겠다.

 

 

읽어줘서 고맙다 게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