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 안녕? 일베하면서 심심풀이로 역사글 하나 보고 가라고 글 하나 써볼까 한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장기병에 대해 알아볼까 해. 참고로 중장기병은 중무장한 기병을 의미한다.
중국에 '중장기병' 으로 부를만한 기병이 모습을 보인 때는 바로 후한 말 부터라고 할 수 있어.
우리 고구려에도 개마무사라고 부르는 중무장 기병이 있었듯이 중국에도 이런 형태의 기병이 있었다.
물론 기병자체가 전장에 등장한 때는 춘추전국시대부터이고.
단, 혹시 여기서 중장기병은 이미 춘추전국시대부터 있었다고 말하는 게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의 마갑이 발견된 경우가 있어서 그런건데, 그렇지 않아도 이를 두고 중국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다고 해. 이걸 단순 전차용 마갑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승마용 마갑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말이지.
나도 전문가는 아니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부분은 논외로 하고 나는 마갑이 등장한 시기를
위진남북조 시대로 보고 글을 쓴다는 점을 미리 알려둘까 해.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후한이 멸망하고 시작된 삼국시대에는 특히 위(魏)나라에서 이 중장기병을 주력으로 도입했었다.
위나라의 중심지가 되는 화북지방이나 중국 북부에는 원래부터 말이 흔하기도 했거니와,
말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했던 옹주-양주 일대, 즉 현재의 감숙성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관계로
위나라는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강력한 중장기병 부대를 구축할 수 있었어.
반면 촉(蜀)이나 오(吳)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렇지는 못했는데 이는
두 나라가 말을 생산하고 키우기에는 비교적 부적합한 지형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야.
알다시피 산악지대에 위치한 촉은 험준한 산지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릴 기병을 생산하기엔 힘들었고
오나라 역시 강과 습지가 많은 강남지방에 기반을 두고 있던 관계로 기병을 키우기엔 애로사항이 많았다.
후한 말~ 삼국시대의 기병과 보병
중장기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말에게까지 마갑을 입히지는 않았다.
이렇듯 주력군이 기병대인 위나라와는 달리 이렇다할 말 생산지도, 기병을 생산할 만한 조건도 갖추지 못했던
촉이나 오는 당연히 주력군은 보병일 수 밖에 없었고 마땅히 기병대를 장기로 하는 위나라에 대항할 대책을 마련해야 했어.
그래서 특히 촉의 제갈량은 대기병전술로 정면으로 부딪혀 싸우는 정공법 보다는
기병대의 고유장기인 기동력을 없애는 쪽으로 전략전술을 고안해내어 힘을 꺾으려 했지.
그래서 위 지도에 나와있는 전술작전도 마냥 복잡하게 전략/전술에 의지해서 위군을 상대하곤 했어.
물론 제갈량이 그 쪽엔 도사라서 저런 전술을 구사한 점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다국면의 기동전이라든지, 보급선 차단과
같이 정공법이 아닌 다양한 전략을 통해 위군의 기병대의 힘을 조금이나마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거야.
이는 위나라가 중장기병대를 운용함에 있어서 한곳에 집중하여 그 전투력을 극대화 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효과를 노린 전술이었다.
그리고 제갈량은 대기병전술의 일환으로 대기병용 무기도 고안해냈는데, 바로 '제갈노' 라고 불리우는 연노였어.
연노는 말그대로 '연달아 화살이나 쇠뇌따위를 발사하는 노' 를 말해. 물론 이 연노를 처음으로 만든게 제갈량은 아니다.
연노는 엄밀히 과거의 춘추전국시대부터 쓰여오던 무기였고 전한-후한 시절에도 폭넓게 쓰여오던 무기였어.
고로, 제갈량이 기존의 연노를 개량하고 손봐서 성능을 강화하여 개인용 병기로 발전시켰다고 보면 돼.
그리고 이 연노부대를 수천단위로 편성하여 운용했었는데, 주로 중장기병대를 깊숙히 끌어들여서 목책이나
장애물로 기병대의 진입을 방해하면서 포위된 사정거리 내에서 일제히 사격하여 격멸하는 식으로 쓰였지.
아무튼, 제갈량의 이 '궁노병에 의한 대기병전술' 은 삼국시대 이후 들어선 서진(西晉)에서도 거의 대기병전술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져서
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민족의 반란도 이 연노부대로 격퇴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서진시대에도 기본 대기병전술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서진도 머지않아 내란과 북방 이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졌고 서진이 무너진 화북지방에는
흉노나 선비족 같은 북방 이민족들이 들어와 우후죽순 나라를 세워대는 이른바 5호 16국 시대가 열리게 돼.
흉노니 선비족이니 하는 것들은 웬지 말타고 싸우는데에는 도가 텄을 듯한 양반들이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기존의 대기병전술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유는 간단해.
지금까지의 대기병전술은 보병 vs 기병의 싸움을 전제로 해서 보병의 입장에서 기병에 대항하는 전술이었지?
하지만 이젠 기마민족으로도 부를 수 있는 이민족들의 세상인 5호 16국 시대가 전개됨에 따라
5호 16국 시대의 이민족 왕조들은 저마다 주력군을 중장기병 내지 최소 기병으로 삼았었다.
이제 전장의 구도는 기병 vs 기병의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던거야.
그러니 당연히 이 구도와 궤를 같이 하여 대기병전술의 주체도
이젠 보병이 아닌 같은 기병의 입장에서 고안해야 했던 거지.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말에게도 '마갑' 을 입혀주었다라는 거야.
이젠 모두가 기병을 운용하는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자 그동안 우려먹어 왔던 대보병전에 있어서의
기병의 우위를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되자 고안해낸 대응책이었어.
좀더 쉽게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보자.
노업상태의 동일 유닛들끼리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말그대로 선빵 날리는 놈이 이긴다고, 그만큼 예측하기 힘들고 확률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유닛을 방1업을 시켜주면?
당연히 방1업 한놈이 이기게 된다.
바로 이 원리를 적용한거라고 보면 돼.
5호 16국 시대~남북조 시대의 보병과 기병
말에게도 마갑을 입혀준 게 보이지?
전장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병의 방어력을 높여줄 겸해서 마갑을 입혀줬던거야.
이런 요인도 있고 앞서 말한 제갈량의 '궁노병에 의한 대기병전술' 을 극복하기 위해 마갑을 입혀준 원인도 있어.
궁노병에 의한 대기병전술도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발전하게 되는데, 제갈량의 병법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사진(射陳)' 의 발달도 기병의 말에게 마갑을 입혀준 원인 중 하나였어.
사진은 말그대도 '활이나 쇠뇌를 쏘기 위해 자리잡은 진용' 을 말해.
왜 요즘도 포를 쏘기 위해서도 진을 펼치거나 하다못해 전투사격할 때도 위치 고려해서 배치하지?
예나 지금이나 원거리 무기 사용할 때는 위치와 진용을 고려했다. 학익진이 좋은 예가 되겠어.
이렇게 사진을 짜고 돌격해오는 기병대에게 사격하면 기병에겐 상당히 치명적이었겠지.
하지만 굳이 기수만 골라서 사격할 필요는 없다.
자고로 기병은 말을 타고 있어야만 기병의 의미가 있고 전투에서의 어드벤티지가 있는 법이잖아?
근데 기수가 타고 있는 말도 쏴서 죽여버리면 어떨까?

마갑을 걸치지 않고 있는 관계로 말 역시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지?
그 말만 쏴서 죽여버린다면 기수는 말을 잃고 굴러떨어질 것이고, 그럼 말을 잃은 기수는 일개 보병에 불과하지.
즉, 말을 골라서 저격해 버려도 기병의 전투력은 사라진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에게 마갑을 입혀서 기병의 전투력을 보존하려 했던거야.
특히 이 5호 16국 시대에서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연노는 더욱 발전하여 그 살상력과 관통력 등에 있어서 대폭 강화되었어.
서진시대에는 '신노(神弩)' 라는 노가 개발되었고 동진(東晉)에서는 남하하는 이민족 기병들을 막기 위해 위의 그림처럼
'만전신노' 라는 대형 노를 개발하여 성벽에 배치하고 수성전에도 써먹었다고 한다.
저 정도 쇠뇌라면 살상력이나 관통력은 어마어마 했을 것이고 기수의 중무장이나 말의 마갑 따위도 소용없었겠지.
남북조 시대 북조의 중장기병
아무튼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비로소 남북조 시대에 중장기병이라 부를 만한 기병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그에 맞는 방어구와 무기도 등장하게 돼.
왼쪽이 양당개, 오른쪽이 명광개
양당개는 삼국시대에서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쓰여오던 갑옷이었고
명광개는 남북조 시대에서 이후 수, 당대에까지 널리 쓰이던 갑옷이었다.
그리고 무기로는 '삭' 이라고 불리우는 창이 있었는데, 이놈의 길이는 무려 4~6m나 되었다고 해.
순전히 기병용 무기다 보니 말탄 높이까지 고려해서 길게 만들었던 거야.
푸른색 영역이 북위(北魏)
특히 이 남북조 시대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중장기병 부대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는 '북위' 라는 나라였어.
북위는 선비족의 나라였는데, 본래 기마민족이기도 했던 선비족인지라 기병의 전통이 강하기도 했지만
북위의 중장기병의 갑옷과 복장이 가장 두껍고 화려했다고 기록에서 전하고 있어.
그만큼 이 중장기병에 많은 투자를 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화북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고.
수, 당대의 기병과 보병
하지만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나 이후 당나라 때에 이르면 이 중장기병의 전통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해.
수나라 때까지는 아직 중장기병이 주력으로 운용된 걸로 보이지만 당나라 때에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된다.
이유는 당시 발흥한 토번이나 돌궐같은 이민족 때문이었어.
토번 기병
토번이나 돌궐은 중장기병을 주력으로 하던 당나라와는 달리 가벼운 무장의 경기병을 주력으로 했었어.
경기병은 말그대로 가벼운 무장 덕분에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을 말하지? 반면 무거운 무장을 걸친 당나라의 중장기병대는 어떨까?
토번이나 돌궐의 경기병을 따라갈 수가 없더라는 거지.
고로,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맞춰서 당나라도 중장기병의 전통을 벗어던지고 경기병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물론 당나라 때라고 해서 중장기병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위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엄연히 중장기병은 존재했었고, 다만 주력이 경기병이었다는 거지.
읽어줘서 고맙다 게이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