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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게이들? 불철주야 일베 하느라 고생들 많다ㅋ 심심풀이로 읽으라고 역사글 하나 던지고 간다. 이번에 살펴볼 나라는 제목에서도 주지했다시피 군약신강, 즉 황제는 ㅎㅌㅊ 신하는 ㅅㅌㅊ 였던 나라, 위진남북조 시대의 동진이다.
글은 상, 하편으로 나누어서 쓰려고 하는데 분량상 불가피하게 나누게 되었으니 양해부탁한다;; 물론 ㅈㅎ는 달게 받을께.
그럼 이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동진이란 나라가 어느시대에 속하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위 시대연표에서도 보다시피 동진(東晉) 이란 나라는 삼국시대를 통일했던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열린 5호 16국 시대와 동시에 존속했던 나라야.
서진이 붕괴한 후, 화북지방에서는 이민족들에 의한 5호 16국 시대가 전개되고 있었고
화남지방에서는 서진을 계승한 한족의 동진(東晉) 정권이 수립되어 자리잡았다.
바로 이 동진정권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볼텐데, 제목에서 보다시피
황제와 신하의 권력구도에 대해 초점을 두고 볼까 해.
황권은 약하고 신권은 강했던 이른바 군약신강의 정권이 동진정권인데,
이제 본론에 들어가 그 배경과 경위에 대해 보도록 하자.
서기 280년, 사마씨의 서진(西晉)은 위촉오의 삼국통일을 이룩한다.
하지만 통일군주 무제 사마염 사후, 서진은 나라기강이 해이해져갔고 급기야 황족들은
권력을 두고 다투기 시작하며 내란을 벌이니 이것이 이른바 '팔왕의 난' 이 되겠다.
같은 사마씨 황족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참극이 벌어지며 다른 황족들 역시 난에 휘말려 죽어나갔지만
그 중 거의 유일하게 난의 피해를 입지않은 황족 중에 사마의의 9남인 사마주의 손자, 낭야왕 사마예란 인물이 있었어.
동진 원제(元帝) 사마예
사실 사마예도 팔왕의 난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 하긴 했었지만 용케 화를 면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난의 무대이기도 한
중앙에서 벗어나 자구책으로 일찌감치 옛 오(吳)나라의 땅인 양주(楊州), 즉 강남지방으로 피신했기 때문이었지.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중앙조정의 명으로 강남지방을 관할하는 군직을 맡아서 갔다고 보는게 맞다만
전란의 피해에서 벗어나 사마예도 몸을 피하려고 강남으로 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위 지도에서 녹색으로 칠해진 '양주' 라는 행정구역이 보일거야.
과거 삼국시대에는 오나라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곳이지?
서기 304년, 사마예는 양주에 부임하여 '명목상' 으로는 강남일대를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다.
여기서 왜 명목상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실직적으로 사마예에게는
강남을 통치할만한 이렇다할 권력기반이나 힘이 전무했었기 때문이야.
한번 생각해보자.
정치란게 어디 혼자만의 노력으로만 될 일인가?
소위 말하는 빽이나 연줄이란게 있기 마련이고 또 불가피하게 돈도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 위진남북조 시대는 관료사회가 아닌 연줄이나 빽으로 모든게 해결되는 문벌귀족 사회였어. 이건 황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였다.
통치자의 입장이라면 응당 아랫사람들의 지지와 협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법이고 그걸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또 일련의 노력들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애초에 그럴 연줄이나 재산 자체가 없던게 사마예의 처지였어.
이유는 간단해.
사마예의 영지는 그의 왕호인 '낭야왕(瑯邪王)' 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본래 봉국이자 영지인 '낭야' 란 곳은 북방의 서주(徐州)에 위치한 곳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여러번 나오는 지명이기도 하지. 모르겠는 게이들은 위 지도에서 서주와 낭야의 위치를 확인해보길 바래.
부임해 왔던 것인데, 당연히 현지에 마련해둔 권력기반 같은게 있을리 만무했지.
거의 맨손으로 왔다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야.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부임지에 이렇다할 권력기반도 없으면 현지사람들과 으쌰으쌰해서
다시 밑바닥 부터 시작해서 기반을 만들어나가야 하겠는데,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어.
아니,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려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 삼국시대 오나라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앞서 위에서 이 양주지방이 옛 오나라 땅이었다고 말했었지?
대표적인 호족가문이 오군(吳郡) 육씨, 장씨, 고씨, 주씨라고 부르는 오군 4성이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호족가문이 할거해 있었지.
그리고 이 강남 호족들은 이후 오나라가 서진에게 멸망한 이후에도 쇠퇴하지 않고
서진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강남지방에서 왕초노릇하며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웬 떨거지 황족놈이 새로운 통치자랍시고 부임해 왔던거야.
자, 그럼 생각해보자.
너는 현지의 유력한 가문이고 돈도 있고 힘도 있다. 거의 그 동네에서는 왕 부럽지 않은 행세를 할 수 있어.
그런데 그 새로운 부임자는 가진건 쥐뿔도 없고 듣자하니 직계황족도 아니고 방계황족 떨거지야.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떻지?
너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는 민심도 흉흉해져 도적들이 깽판치고 다니고 있는데다 마땅히 그걸 막아주고
진압해줘야 할 조정에서는 진압은 커녕 황족새끼들이 지들끼리 치고 박느라 관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내가 예전에 쓴 서진글을 읽어본 게이들은 알겠지만 그 무렵에는 강남에서 종종 민란과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어)
그렇다면 명색이 강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임해온 작자라면
최소한 나의 재산을 지켜줄 수는 있는 그런 믿을만한 놈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저 사마예란 놈은 그럴 자격과 능력을 갖춘 놈이냐는거지.
사마예는 강남호족들의 이러한 요구와 못미더운 의혹에 답하고 만족시켜줘야 했었던 거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사람들을 모은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 있던 사마예에게는 불행중 다행으로 이를 해결해 줄 조력자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측근이자 역시 현지의 유력가문으로 급부상하고 있던 낭야 왕씨 가문출신의 '왕도' 란 인물이었어.
왕도
동진의 대표적인 명재상으로 사마예에겐 킹메이커나 다름없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왕도는 사마예 처럼 북방에 위치한 서주의 낭야 땅의 호족출신으로, 엄밀히 따지면 강남출신의 호족은 아니야.
그렇다고 명성과 평판이 해당 인물을 좌우하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특성답게 이 낭야 왕씨 가문이 당대의 명문가였느냐 하니,
그마저도 아니었다는거지. 오히려 삼국시대 말이나 서진시대에나 들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가문이었어.

<삼국지11>에서의 왕융, 왕상
모두 낭야 왕씨 가문 출신이다.
그렇다면 본래 강남호족 출신도 아닌데 북방의 사족출신이 어떻게 강남호족의 반열에 낄 수 있었는가 하니,
이는 예전부터 왕도가 일찌감치 가문의 기반을 강남으로 옮겨놓은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
왕도는 일찍이 장차 중원이 혼란해질 것을 예감하고 거기에 팔왕의 난까지 겹치자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 하여 자신은 물론
가문의 기반을 강남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현지 호족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호족 가문으로 급부상한 터였다.
그리고 사마예와는 같은 낭야 땅의 동향사람이었고 예전부터 교류하며 사마예의 측근으로 자리잡고 있었던거야.
이렇듯 강남의 명문호족 축에 들어가던 왕도는 본격적으로 강남호족들의 포섭에 나섰다.
포섭작업은 성공적이었고, 사마예를 못미더워 하던 강남호족들은 하나 둘씩 사마예 정권에
협력의사를 보였는데, 그 냉담하던 호족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게 이상하지 않아?
물론 왕도의 언변에 넘어간 이들도 있었겠지만 아무리 말로 암만 어르고 달래도
감투를 약속하는 것 만큼 효과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은 없었을거야.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못하는 게 없는 강남호족들이 뭐가 아쉬워서 벼슬에 연연해 했는지 말이야.
그런데 그 오나라는 지금의 서진에게 망했다. 당시에도 지역에 따른 차별, 비하는 존재했던 모양이야.

망국 출신의 호족들, 즉 강남호족들은 중원의 호족들에게 망국출신의 촌놈 쯤으로 취급당하며 무시당하고 있었던거지.
같은 호족이라 해도 출신에 따라 격이 다르다는 거였어.
얼마나 심했냐면, 아까 말한 강남호족의 대표 성씨인 오군 4성을 기억할거야.
그 중 '오군 육씨' 라는 가문은 게이들도 잘아는 육손, 육항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가문이었다.
육기
특히 육손, 육항의 후손인 육기, 육항이란 형제는 강남호족을 대표하는 대학자들로, 중앙의 정계에 진출했지만
일개 환관 따위에게 욕을 얻어먹고 할아비, 아비가 되는 육손, 육항도 싸잡혀 욕을 얻어먹었다고 해.
명색이 강남의 대학자요 대호족인데도 중원에서는 욕을 들어먹는게 강남호족들의 현실이었다.
이 정도로 강남호족 가문은 멸시받고 무시당하는 처지였던 거지.
즉, 부와 권력을 거머쥔 강남호족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강남에나 한정되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던 것은 명예로 치환할 수 있는 중앙에서의 요직이나 관직이었던 거야.
그리고 왕도는 강남호족들의 이러한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고.

<삼국지12>에서의 고옹, 하제
아무튼, 왕도는 사마예 정권 하에서의 벼슬을 약속하며 강남의 대표 호족가문들인 오군 4성 가문을 회유했어.
그 중 핵심인물들인 고영, 하순 이란 인물들은 아예 구워 삶아버렸고 사마예 정권의 중추로 삼았다.
참고로 고영, 하순은 오나라의 고옹, 하제의 후손들이야.
그 외로도 회계 4성이라 불리우는 우, 공, 위, 사씨 역시 포섭에 성공하여 사마예 정권의 협력에 동조하게 만들었는데,
그냥 삼국시대 오나라의 고위관료 치고 여기의 오군 4성이나 회계 4성에 속하는 성씨가 보이거든 그냥 이 가문출신이라 봐도 무방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