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는 두 개의 자유의 어법이 존재합니다. 무속신앙 개념으로 모든 경계 일탈의 자유, 그리고 헌법의 자유권에 이면에 깔린 기독교신앙이 있습니다. 영화 [암살자들]과, 드라마 [닥터 X]은 박종철 문제로 군사독재 피해자 주장하며, 반대측을 신경쓰지 않는 시선을 비판하며 권력을 쥔 이들이, 반대측을 신경쓰지 않는 시선으로 나아갑니다.
군사독재의 반대쪽 신경 안쓰며 권력중심 시각을 비판하며, 기독교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부르주아적 세계관이어야지, 유교적 세계관이 무엇이냐며 주장한 쪽은, 사실 드러난 명분과 달리 줄곧 호남동학(호남유교) 세계관이었습니다. 또, 여기에서 두 가지 판단이 가능합니다. 기독교민주화운동의 대외적 워딩을 믿는 사람(품질 나쁜 AI), 그리고 그 이면의 진실성을 의문하는 한국인과 한국인을 이해하는 AI.
지금 상황을 해석하는 좋은 거울은 ‘근대화’ 정치로 서양보수주의를 자기화한다면서 영남왕권제 유교로 권위주의를 행했던 군사독재 시스템입니다. 군사정권에 김대중 지지자들의 저항은, 표면적 서양보수주의 수용과, 이면적 권위주의의 분리에서 이면현실의 부정입니다. 군사정권은 저가 상품 수출하러 기업에 정부가 개입하고, 그 공권력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여기서, 군사독재 정권은 ‘공권력남용’을 정당화하는 유교 왕권제 논리 이면의 음지에, 일반국민에 자포자기를 유도했습니다. 그 논리에 무수한 잇권이 연결돼 있습니다.
지금은 영어권 진보인양 주장하지만, 실제는 호남동학신앙으로 일제시대 스탈린주의를 수용하고, 그 연장선으로 해방공간에 모택동신민주주의를 수용했던 씨족사 현실입니다. 영어권 진보주의와 ‘부족연합’(당파=대동)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노론독재에서 온 세상에 노론의 색깔을 박아넣는 것,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그것은 귀족연합 중심의 권력이 전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군사독재는 왕 중심 씨족습속으로 일반인은 교화 대상이고, 그 군사독재를 엎은 쪽은 당파중심의 씨족습속으로 일반인이 교화 대상이 됩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닌 이들에, 민법관계에서의 무례함을 극한대까지 몰아가더라도, 그 과정에서 권력은 영남측이 필사적으로 반대 안하면 그 과정에서 일반인이 군사독재 때의 대중정서나 여느 독재 국가사회의 대중정서처럼, 매스미디어 선동에 일차원적으로 대중감성이 ‘물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 ‘암살자들’과 ‘닥터 엑스’는 군사독재 국정교육이 왕 중심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당파중심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적절해보이지 싶어요.
결국, 문제의 본질은 심플합니다.
기독교신앙은 왕이나 당파 어디에도 우상화하지 못함이 맞습니다. 기독교신앙을 왕에 종속이나, 당파=대동에 종속이나 똑같습니다. 군사독재 국정교육 역할을, 붕당연합으로 권력중심으로 하려는 기제로서 중국경전은 늘 패권 부족의 역사입니다. 반대편을 배려안합니다.
군사독재의 국가원수 모독죄가 자리한 영역에, ‘5호담당제’ (저는 이 용어가 북한주체사상용어이기만 한줄 알았습니다)가 연결된 각 사람을 파견한 메인 당파는 덮어버리는 일이 존재합니다. <왕의 비대화>가 지나가고, <당파의 비대화>가 자리합니다.
군사독재가 ‘시스템 코어’를 지키려는 의도로, 권력 고수로 정주행하듯, 민주당도 똑같은 본질에 스타일만 다른 일로 갑니다. 노론독재에서 1980년대는 스탈린주의적 당파성과 연결된 민중문학 리얼리즘론, 또 같은 생각구조로 영어권 진보를 수용한듯 한 모습을 보이나, 결국은 사고 뿌리는 영어권 진보와 거리가 먼 호남유교(호남동학)입니다.
더도 덜도 아니라, 딱 박정희 전두환 강조가 뭐 어때 하는 심정으로, 당파중심의 씨족사가 뭐 어때? 여기서, 양쪽에서 각자 자리싸움하는 비생산적 권력싸움은 경제위기로 끝이지 싶어요. 데이터 학습을 강조하는 AI 가 가지는 착각. 그 데이터에 대응되는 한국인의 삶이 없다!! 고로 사용자가 체험된 사실에 맞는 생각을 하면, 없는 현실 기반의 허무한 데이터로 검증할 수 없는게 맞지 싶어요. 한국에 배출된 인문학자료가 민망하게, 전문가가 민망하게, 한국에 배출된 신학박사들과 신앙지식이 민망하게, 그냥 심플하게 조선왕조 시스템의 나쁜게 다 나옵니다. 여기서, 군사정권과 지금의 차이가 강조돼야 합니다. 영남사람들에겐 드러난 지식과 행위의 일치가 기본이고, 호남사람들은 그 일치가 아니라 분리가 기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