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국정치 지배시스템은 이런 아이디어 위에 있습니다.
메인 시스템은 전라도 지배체제인 영정조 탕평 대동 모델입니다. 그리고, 이에 붕당연합의 모델로 권력의 골조를 세웁니다. 하나의 붕당은 보수, 다른 붕당은 진보라고 붙입니다. 그 붕당에는 성리학에서는 도통이 되는 선비, 동학에서는 英雄이 있습니다.
조갑제기자 유튜브(조갑제TV)는 이런 메시지를 걸었습니다. “600발 맞고도 안 죽는 한동훈” 이랍니다. 영웅이 곧 씨족영웅이고, 조갑제 붕당에서 한동훈을 새 동학교주로, 조갑제세력이 띄우는 한동훈의 영웅 가치는 파벌의 가치와 같습니다. 73년생 한동훈은 x세대 가치가 없고, 조갑제기자가 뭐 하라면 뭐해! 수준인겁니다. 마치, 64년생 이재명의 후원회장으로, 거의 상당한 주문을 1938년생 원불교 백낙청이 해서 권력을 만든것과 겹칩니다.
여기서, 문제는 영웅신화입니다. 남로당 혁명영웅 옹호하던 사람들이 바로 이승만 자유당에 줄 섰다가, 이승만 하야 이후 자유당 붕괴되니 바로 원위치가 가능한 것도, 이런 동학에서 유불선 신앙 및 동학이 기독교교리 훼손을 주문하며 동학 주도권 안에 놓으려는 의지는 이런 문제입니다. (일본우익은 한국이 일제시대 소련마을 정체성과 한미동맹 정체성을 자기들끼리 대승불교나 탕평 대동으로 한다는데, 서방자유진영 부숴뜨리는 스윙 스테이트 아니냐고 펌프질 합니다.)
여기서, 모든 여야 정치는 동학이 장악하고, 어떠한 절호의 기회에 한쪽으로 갈아타고, 다른 쪽에 파산시켜 버리는 식으로 고대중국의 종족싸움 승리의 중원 독차지 상상을 할 때, 자신들만 바라볼 국민에 인류가 생각가능한 최대치의 야만행위를 하자는 발상이 깔립니다.
필자는 국부 국모 프레임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그 시대에서 군사독재 기득권자만 모르지, 대부분의 서양사회와 한국 국민은 아시아적 전제주의로 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질서가 48년부터 이어진 전제로서는 긍정합니다. 결국, 민법질서로서 사자 명예훼손은 명백히 맞는데, 박지원은 ‘길 위의 김대중’ 파벌들의 시점에서 그들 씨족 단결을 위한 의미로서, 영화 한번 더 보기 운동을 주장합니다.
사실, 씨족신화 속에서 타씨족에는 원래 조선시대는 무례했습니다. 조선시대는 씨족을 넘어서는 사고가 없었습니다.
박지원은 ‘~~오적’ 운운하는 오랑캐몰이 논리를 쓰면서(그의 우주관은 호남중화사상과 오랑캐척결), 표현의 자유(다원주의나 기독교문화 전제)를 주장합니다. 이재명은 호남중화사상으로 오랑캐몰이 하면서 ‘혐오’운운합니다.
결국, 원불교 박지원이 ‘길위의 김대중’을 안 본 시청자(영화 건국전쟁을 시대착오적으로 부족주의로 가서 안보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의미에서)에, 최대치의 무례함으로 가고, 그것이 민주화라고 할 때, 이는 조선시대식 노론독재 권력론으로서 노론독재식 문화구조 깔기라고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왕 중심 유교는 이 씨족 밖에 죄를 묻습니다. (군사정권 정치재판) 당파중심 유교는 그 씨족 밖에 죄를 묻습니다. (지난 30여년 정치재판. 특히, 윤석열 재판에 그 모순이 심각함)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죄는 사회 시스템의 신뢰를 지키는데, 그 신뢰를 해친 사람에 죄를 묻습니다.
결국, 이렇게 민주화신화가 자유민주라고 믿는 사람에, 1당독재 권력에 감히 덤비겠어? 하는 심리로 최대치의 무례함으로 간다면, 민주화신화는 공소시효가 중단되지 않은 의미의 사기로, 국민은 취소로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 신앙 계명의 서로 사랑하라는 씨족을 넘어서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씨족 내부가 아닙니다. 호남개신교 교회에서 박지원 말듣는 사람은 자동으로 예수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영화 건국전쟁 및 길위의 김대중 모두를 안 보고, 모두를 비판해야 맞지 싶어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법치국가의 토대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신뢰를 안 지키는데, 민주화신화는 자기꺼라는 정치는 어떻게 믿음이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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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하신 글은 현재 한국 정치·문화의 깊은 구조적 문제—영화를 매개로 한 편가르기, 동학·유교적 붕당/씨족 신화가 현대 정치에 스며든 양상, '민주화'라는 이름의 배제와 무례함, 기독교 가치와 자유민주 질서의 괴리—를 복합적으로 제기하고 계십니다. 각 층위를 나누어 정리하고, 논쟁적 지점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1. 논점의 핵심: 신화의 정치, 배제의 문화
제기하신 주장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영화를 통한 상호 배제: 《건국전쟁》과 《길 위의 김대중》이 단순한 역사 서사를 넘어, 반대편 시청자에게 일절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낳고 있으며, 특히 '민주화'를 자임하는 측에서 그 배제성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비판입니다.
- 고대적 정치구조의 현대 재생: 영정조의 탕평·대동, 동학의 영웅·교주론, 조선 붕당의 씨족 중심 논리가 오늘날 보수-진보 양 진영에 투영되고, 인물을 '영웅'으로 신격화해 파벌 결속을 다지고 타 집단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십니다.
- 신뢰 붕괴와 정당성의 위기: '국부·국모' 프레임도, '민주화 신화'도 결국 자기 파벌의 정당성만 내세우고 법과 신뢰의 원칙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공적 정당성을 잃은 '사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 가치의 괴리: 기독교의 보편적 사랑과 자유민주 질서는 씨족·파벌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보편 규범이어야 하나, 정치권에서는 오직 자기편 정당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2. 쟁점별 펼침
2-1. 두 영화와 시민의 분열
두 영화는 단순한 작품을 넘어 정치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 《건국전쟁》은 이승만 중심으로 건국과 자유민주 수호를 강조하며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았고, 반면 일부 진영에서는 일부 역사적 사실을 단순화하거나 독재의 측면을 희석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 《길 위의 김대중》은 민주화 운동과 인권을 중심으로 김대중을 조명하며 진보 진영에서 호응을 얻었으나, 일부에서는 인물을 신격화하고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제기하신 점처럼 어느 한쪽만 '진실'이고 다른 쪽은 거짓이라고 단정하며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문제입니다. 역사 영화는 본질적으로 해석의 산물이므로, 완전히 중립적인 서사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서사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보편적 진실로 삼아 상대를 몰아붙이기보다는—서로 다른 해석이 공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토론하는 문화입니다.
2-2. 붕당·동학적 신화가 현대 정치에 미치는 영향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로운 진단입니다:
- 동학의 '영웅·교주' 구도나 유교의 붕당 논리는 "우리 편의 위대한 지도자"를 내세워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를 배제하는 패턴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때 지도자의 공과는 개인의 판단이나 법의 잣대와 무관하게 '우리인가 아닌가'로 재단됩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한동훈·이재명 등 주요 정치인을 둘러싼 지지 담론에서 인물에 대한 숭배와 상대에 대한 적대가 두드러지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입니다. 정치인은 공적 책임을 지는 인물이지 신화 속 영웅이 아닙니다. 영웅 신화는 비판을 봉쇄하고, 잘못을 덮고, 정치를 인격 대결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다만 동학과 유교 전체를 단일한 배제의 논리로 보기에는 복잡한 측면도 있습니다: 동학에는 평등·민중의식 같은 진보적 요소도 담겨 있으며, 유교도 '인'과 '덕치'의 이상을 강조하는 면이 있으므로, 그것이 현대 정치에서 어떻게 변용·왜곡되었는지를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2-3. '민주화'라는 이름의 배제와 정당성 문제
"민주화신화가 자유민주라고 믿는 사람에 최대치의 무례함으로 간다면, 사기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은 핵심을 찌릅니다:
- 민주주의의 본령은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고 토론으로 합의를 찾는 것이지, 자기 진리만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반대 의견을 '반동'으로 낙인찍고 배제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은 법치와 보편적 인권, 공적 신뢰입니다. 죄와 책임은 파벌이나 지역이 아니라 보편적인 법과 절차에 따라 따져야 합니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대해 적용하는 잣대가 편파적이라면 법치에 대한 신뢰는 흔들립니다.
2-4. 기독교 가치와 정치의 관계
"예수 신앙은 씨족을 넘어서는 보편적 사랑"이라는 점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가족·혈연·민족의 경계를 넘어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으며, 권력과 신화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셨습니다.
- 따라서 기독교인이 정치에서 특정 파벌에 매달려 상대를 배척하거나, 교회가 정치적 선전의 장소가 되는 것은 신앙의 본질과 거리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한쪽 편에 서서 다른 편을 단죄하기보다, 양쪽의 부족함을 비판하고 보편적 정의와 사랑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더욱 신앙에 맞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 다만 개별 교회와 신자들이 각자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대해서는,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3. 자유민주 질서의 토대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점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
| 원칙 | 내용 |
|---|---|
| 법치 | 모든 사람과 정치 세력은 법 아래 평등하며, 법은 파벌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
| 다원성 | 진리와 정의는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이 독점할 수 없으며,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토론되는 것이 건강한 사회입니다 |
| 공적 신뢰 | 정치 권력은 시민의 신뢰 위에 서 있으며, 그 신뢰를 깨뜨리면 정당성을 잃습니다 |
| 보편적 가치 | 인간의 존엄성, 자유, 정의는 혈연·지역·정치적 입장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위기는 어느 한쪽이 이겨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본 원칙을 모두가 다시 세우고 지키려 할 때 풀립니다. 정치인을 영웅으로 만들거나 악당으로 낙인찍는 대신, 그들이 내놓는 정책과 행동을 법과 공적 이익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입니다.
마무리
제기하신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 편'이라고 믿는 것조차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그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이자 신앙의 가치와도 부합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어느 한 영화를 절대적인 진실로 삼기보다, 두 영화 모두 포함된 관점과 한계를 파악하고, 더 넓은 시각으로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자유민주 질서의 법치 원칙을 현실 정치에 어떻게 적용할지, 혹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싶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