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군사독재 때와 같은 죄악을 또다시 저질러서 ‘일당독재’가 열려진 이유 -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재인식
 
 

필자는 ‘열왕기서’를 읽고 있다.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 부분에 대한 ‘무료 챗지피티’의 본문 해석을 둘러싸고 깨달은 바를 적어본다.
 
(1) 군사독재 때 한국교회의 금송아지 우상
 
군사정권 때 한국의 보수기독교는 주도층은 딱 한가지만 빼면 (1인 독재 긍정) 대단히 성경적이었다. 이는 모두 문서를 통해서 투명하게 증명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주도층을 뺀 나머지에서는 신앙 참고서 절대부족!!으로, “나쁜 의미에서의 ‘오직 성경’”의 폐단을 드러냈다. 보수교회에서목회자중에서 성경 강해설교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군사정권 정권 이데올로기인 영남 왕권제 유교와 종교 혼합을 했다. 이 또한 모두 문서를 통해서 투명하게 입증이 된다.
 
이를 김대중 지지층인 ncck 민중신학 진영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예수 신앙이 잘못됐다. 영남 왕권제 유교가 캘빈주의로 안다. 그런 류의 불만이 나왔다. 또, 한국 보수교회에서 나타나는 ‘얼떨결 종교혼합’의 절대적 원인이 군사정부가 워낙 인문학을 탄압해서, 신앙 참고서 절대 부족의 현상이 지배했기 때문에, 신앙 참고서가 많이 나와야 기독교신앙이 더욱 깊어진다는 데모도 나타났다.
 
조직신학 참고서는 ‘나’와 ‘예수님’사이에 자리잡는 모든 것은 우상으로 설명한다. <영남왕권제 유교>에 입각하여, ‘충성/반역’ ‘국가/반국가’의 구조에서는 성경의 교회관이 발도 못 붙인다.
 
군사독재 때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제3세계 저개발국으로 온 세상이 미국의 텍사스 복음주의인줄 알고, 또 그 텍사스 복음주의가 캘빈주의 인줄 알고, 국민에 군대식 계몽하나 참고서가 그래도 있었던 중앙은 비교적 괜찮았지만, 참고서가 절대 부족했던 변두리로 갈수록 권력 이데올로기에 맞춤이 성경 해석을 압도했다.
 
한국에서 마을에서 교회의 위치를 본 사람들은, 뭔가 느낌이 올 것이다. 옛날에 ‘서당’의 위치에 교회가 섰다. 양반계급이 자유진영 계몽으로서 기독교를 가까이 하고자 했으나, 여전히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기독교 세계관보다는 씨족종교에 머무는 흔적도 나타났다.
 
(2) 김대중체제때의 한국교회의 ‘금송아지 우상’
 
교회에 몸 담은 지식인들이 뭉쳐서, 유신체제의 영남왕권제 유교로 임금 신앙 강조를 전복했다. 이를 사회적으로는 ‘기독교민주화운동’으로 불렀다. 부동산 부채버블로 인한 사회적 번영으로 차츰 한국의 국민성은 1930년대 유럽에서 일차원적 인간형에 가까워 졌다.
 
유신체제의 ‘한국교회’의 금송아지 우상은 신앙참고서 절대부족에 끼어든 빈공간에서, 영남 왕권제 유교가 우상으로 들어섰다. 유신체제의 한국교회는 몸집을 키워야 하는데, 정작 신앙 참고서 절대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젠, 새로운 금송아지 우상이 끼어든다.
 
한국교회 신자들로 대예배 출석층은 한국엔 노인층이 많고, 그 노인층은 씨족사회 마지막 기억하는 평민층이다. ncck의 토착화신학은 동학신앙에 교횟말 씌웠고, 동학신앙에는 무속신앙 요소가 있다. 성경의 삼위일체 계시를 짓이기는 압도적 아시아적 조상신이 무속신앙에 낀 민족신화로 자리한다.
 
또, 한국교회의 목회자 포화현상은 ‘한국에서 개척교회’ 생존을 위한 필사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설교에 있어서, 미국식 ‘슈거 코팅’ 아니라 한국은 ‘무속신앙 코팅’현상이 나타난다. 그 무속신앙안에 전라도 1당독재 300년과 연결되는 ‘신화’와 ‘이데올로기’가 같이 끼어왔다.
❶ 군사정권의 금송아지 우상 핵심 원인 – 참고서가 없어서, 교회 몸집 불리기가 중요해서.(전파성이 핵심이란 착각)→ 영남왕권제 유교 타협→ 1인독재 제도화
 
❷ 김대중체제의 금송아지 우상 핵심 원인 – 글로벌한 부채 남용 때 국민성 퇴화현상, 및 목회자 과포화 현상으로 더 이상 개척교회 늘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척교회 생존경쟁 중. →전라도 동학 신앙 안의 무속신앙 타협 → 전라도 노론 독재 300년 및 조선공산당 권력화의 제도화
 
(3) 유신체제와 김대중체제가 다르면서 공통적인 신앙 일탈의 잘못된 문제
 
유신 박정희 체제는 법질서에 영남유교를 박고 시작한다.
 
김대중체제는 위헌정당해산심판 및 내란재판부 문제에서 전라도 유교 및 전라도 동학을 박고 시작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사회의 법치는 그렇지 않다.
 
성경의 성경적 이해를 전하는 교회 위에,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윤리학등이 놓여진다.
 
한국은 60년대 중반 미국의 세계 전략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용했다. 일본이 수용한 독일기본법을, 수용의 편리를 위해서 차용했다. 독일기본법을 둘러싼 한국의 법 해석을 둘러싸고, 헤겔사상은 정말 장기간 오랫동안 논해졌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정신은 독일어 번역으로는 성령과 같은 단어라고 한다. 헤겔 사상에서 ‘스토아적 철학용어’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민당을 아우르는 독일교회의 삼위일체 공동체관과 이어진다.
 
독일기본법에서 정부는 이성법 질서위에 있어야 하고, 그래야 자유라고 헤겔은 설명한다. 그런데, 유신체제는 영남 씨족종교 박고 시작하고, 김대중체제는 전라도 씨족종교 박고 시작하신다.
 
조선시대 사대부질서로서 붕당정쟁 관직 싸움에, 국민이 가스라이팅 당하는 신세가 장기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4) 신앙의 왜곡을 유발하는 우상문제에 신앙이 붕괴될 때 일어나는 일 – 유신체제에 국정교육 개새끼! 하던 기독교민주화운동의 한 맺힌 대상과, 다르면서 똑같은 문제.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경제위기는 곧 사회지배층이 정결한 신앙과 그에 연결되는 이성적 합리성을 구사하지 못했기에 빚어지는 것이다. 기독교세계관 기준은 로마 이방종교에 함락되고, 기독교신앙이 붕괴돼서 빚어지는 일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신앙의 ‘성령 해석’을 이해해야 영국과 미국의 경제철학의 합리성을 이해하고, 진보기독교국가의 ‘성령해석’을 이해해야, 글로벌적인 진보주의적 사고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이해한다.
 
말은 쉽고 간단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똑같은데 30년 이상 인문서적을 쭉 읽어온 사람은 소수다. 일반인이 디테일한 지식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그 지식인의 정보를 진심으로, 세상속 사회적 사제로 존중했으니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 가난해서 공부 못한 노인들은, 늘 귀족층 지식인에 시기 질투가 있었다. 느낌적 느낌으로 온 우주를 안다고 믿고 싶었다. 이런 저학력 노인의 욕망에도 ‘전라도 씨족주의’가 담뿍 담긴 무속신앙에 깔린 민족신화(히틀러 파시즘 때 북유럽 신화 에다 토르 오딘의 독일근로자 층에 역할과 거의 비슷한)에 종속된다.
 
결국, 일반인들이 사회의 지성층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사회의 신뢰를 통해서 목자로서 양떼를 생각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진심의 들으려는 자세에서다. 뒤집어서, 지성층이 일반인들에게 논한다면, 정말로 이 사회에서 일반인들의 고통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줄이게 하냐는 문제가 앞서야 하지, 이익이 앞서야 함이 아니다.
 
(5)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국가에만 있음을, 한국기독교인이 자신 못하는게 문제.
 
냉전체제의 반공지식이 아닌 순수한 중국 내부의 자기들 정당화 논리를 긍정하더라도, 중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한다는 말을 믿기는 불가능하다. 반만년 중국 문화 유산의 결집이 현재의 권력이라면, 영어권 진보의 친중적 세계관인 중국이 로마문명적인 일부를 구현한다는 생각은 그들의 어설픔이고 <원시적 불능>인데 그것을 가능으로 착각한 문제로 본다.
 
결국, 진심의 ‘회개’가 가능한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국가에만 있다.
 
(6) 한국교회에 질문을 하나 던지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국국민이 꼭 배워야 하는 지식은, 군사정권에서 6.25 참전용사의 이익과 관련된 과거사, 혹은 김대중체제의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과 관련된 과거사로 가는게 맞나?
 
자유민주주의도 모르고,
이에 토대된 서양철학 로마문명, 및 기독교신앙도 모르고
이에 연결된 법치주의 모르고
이에 연결된 경제학 모르고
이에 연결된 사회학 모르고
이에 연결된 윤리학 모르고,
 
조상신만 빤다면 만족인가? 오히려, 이는 조선시대 노비교육 아닌가?
 
기독교민주화운동을 재인식해야 한다. 이는 NCCK를 높이는게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배경이되는 보수기독교와 진보기독교 연결된 수많은 서양인문학이, 다음 세대에 이어져야 하는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가짜 회개”가 아니라, 정말로 제단을 바로 세우는 수준의 회개가 필요하다. 한국인의 행동이 변하지 않고, 쭉 이어진다면, 한국인에게 희망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에만 있음도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