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보수/진보 경제학’이 아니라, ‘조상숭배-차별 경제’와 ‘서양경제학’의 구분이 맞다고 본다. - 필자의 모든 글은 ‘다시 쓰는 사회구성체론’으로 이어진다
 
 
30여년 전 한국경제의 왜곡현상과 2025년 한국경제의 왜곡현상을 비교하면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어떤 붕당 분파의 조상을 따라가자는게 아니라, 하나의 시대 속에서 나타난 대문자 ‘진리’(세상속 삼위일체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우파-평등 좌파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한국의 보수우파가 소홀히 봤던 부분으로, 미국 및 영국 진보세력도 줄기차게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자유주의”와 ‘대 자본’의 연결 부분과, 영어권 국가의 차별 현상의 연결이다. 사실, 한국인이 주목을 안해서 그렇지, 한국에 수입된 서양정치이론서 대부분에도 그렇게 기재돼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그렇게 느꼈던 ‘차별’현상과 한국의 보수기독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복음주의 신앙을 밝히며 복음주의 신앙이 대자본 형성에 도움이 된 재벌 기업 1개라도 논해달라고 대중들에 물어보자. 없음을 알 것이다.
 
김대중 민주당 주위에 섰던 원불교 백낙청 사단의 학자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6.25 참전용사가 이익 수혜자인 군사독재 유교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서양의 ‘보수’/‘진보’경제학을 모두 긍정했다.
 
모든 자의적 차별 현상은 중국문명 씨족종교를 타고 온다고 보았다.
 
그때도 그랬다. 한국에 부르주아 계급이 어디있노? 노론 아이가, 노론!! 이런 분위기가 지배했다.
 
유교자본주의를 통해서 1인 지배자에 줄선 귀족의 자의적 우대. 그리고 그 밖에 속하는 이들에 자의적 차별현상을 김대중지지 민주당 성향 기성세대는 비판했다. 그리고서, 서양민주주의 한다고 하고서는, 이제는 정반대의 또다른 아시아식 씨족종교에 얽힌 시스템의 구현이다.
 
김대중 체제는 보다 원색적으로 <노론 세도정치>를 구현했다.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조상신이 있거나, 그 계승자에 대한 원색적 배타적 우위로 간다. 여가부 문제는 결코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소련 공산주의와 연결된 여성주의를, 호남동학으로 수용해서 남녀 사이에 ‘종족당파성’ 배타적 우위와 자의적 차별로 남성을 누르는 현상이 끼어 있는 것이다.
 
유신체제에서 대표 역사가는 이현희 교수다. 권력 수혜자들을 띄우는 의도가 역사학의 본령처럼 여겨진다. 현재의 대표 역사가는 최태성이다. 민주정의당 이현희 교수를 연상시킨다.
 
군사독재 저항하는 김대중이 비난했던 유신체제의 기득권자 숫자보다 월등히 더 커진 숫자의 기득권을 품었다. 다만, 기득권자의 조선시대 양반정치의 색깔이 달라졌을 뿐이다. 국민들에겐 색깔만 다르고 비슷한 논리의 지속이지만, 권력은 새로운 것이라고 믿으라고 강요한다.
 
김대중 민주당지지 노인들은 사회문제를 해결안했다. 모든 것을 영남이거나 비호남 보수의 귀책사유로 몰아버렸다. 권위주의를 안하고, 실력자를 매수하고, 대중들은 개인의 독백수준으로 가두는 전략을 취했다.
 
동학의 씨족주의로 궐기 시키고,
 
1인 지도자로 이어지며 스몰한 기득권자를 품고 반론을 권위주의로 차단하면 유신국가주의.
 
1당독재 연합으로 이어지며 매머드급 기득권자를 품고 대중들이 감히 1당독재에 덤비지 못하게 하면 김대중체제다.
 
이익은 자기 편이 먹고 모든 문제는 그 밖으로 전가하는 방식이다.
 
유신국가주의는 유교에 의한 대중적 차원의 권위주의 질식이 문제다.
 
김대중체제의 사회문제는 ‘이혼숙려캠프’에 나타난 망가진 30-40대 가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출연진이 그런 부부만 신청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실제로도 많은 부채를 지고 가정의 자기책임이 힘들어진 이들이 많아졌다. 물론, 1년에 최소한 1억은 벌어주지, 한국의 월급이 월급이냐고 비아냥댈만한 미국인들도 정작 150만원 급전이 필요할 때, 그게 없어서 대출로 쓴다. 미국과 영국도 ‘서민’들은 빚이 많아도 너무 많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한국과 영어권은 다르다.
 
지금 지배 경제학인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은 박현채, 변형윤등이 중심이며 ‘농업’을 토대로 한다. 필자는 광진구 거주한다. 고민정이 이름의 플랭카드를 많이 본다. 정말 농민 노예계급을 상대로 구라치는 어법이 플랭카드에 걸린다. 농민노예들은 귀족만 바라보고 부채를 진다. 필자가 중랑구까지 산책으로 걸을 때, 문재인 정부 때 그대들을 위해서 문재인 정부가 착해서 대출을 풀어준다고 기쁘게 받아먹으라는 서영교 의원의 플랭카드를 본다.
 
영어권 진보는 칼 마르크스 사상에서 이어진 좌표를 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구한말 영어권 기독교선교사들이 적었던 한국사회의 사회문제의 반복을 보는게 맞다.
 
조상숭배 문화로 인한 중국식 종법제가 계급을 형성한다.
 
유신체제에서 민중계급은 권위주의 질식이고, 김대중체제의 민중계급은 잘못된 정보와 사회합리성 결여로 인하여 경제적 붕괴가 다가온다.
 
독재권력에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할수록, 성경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기독교인이다.
 
사회는 정말 구조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망가졌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대출규제만 풀면 모든게 알아서 된다’는 천도교의 무위이화 교리에 덧 씌운 가짜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사회에 가득찼다.
 
공급부족론은 실제로 거짓말이 됐다. 늘 부동산은 체감상으로 점점 비싸졌고, 점점 더 많은 부채를 낀 매수가 요구됐다. 이는 과잉공급의 산물이다. 공급이 늘어도 대규모 개발의 전제인 10배-20배 레버리지 부채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부동산은 1원도 가격이 내리지 않았다.
 
군사정권은 국가주의 국정교육이 ‘자의적 우대-자의적 차별’의 기준선이다.
 
김대중체제는 수많은 공산마을 좌파 조상교육과, 사쿠라 취향의 보수성향의 귀족이 이끄는 ‘이승만 이용사업’ ‘박정희 이용사업’등이 자의적 차별의 문제로 이끌어진다. 조선유학사에서 씨족마다 붕당으로서 우주중심론(중화사상)을 논하는 양반의 본래 본색으로 갔지만, 서양법의 합리성의 붕괴를 초래했다. 이는 버블이 터지기 전에는 모른다. 터진 이후에는 버블 붕괴를 어느 선에서 막으려면, 국민의 신뢰를 동원해야 한다. 그게 지금 절망적으로 없다.
 
2025년 지금 사회는 어떤 구조악에 휩싸였나? 어떻게 이를 고칠 수 있을까? 그저, 어느 부족이 잡을 께 너네에 부담전가한다. 이런 수준을 넘어서는 전망이 필요하다.
 
김대중 체제의 사회구조악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연대가 중요할 때가 됐다. 문제는 그렇다. 지금 권력을 가진 아시아적 귀족은 이런 이들을 가만히 안 놔둘 것이다. 실직을 두려워한다. 유신시대는 원래 없었던 기득권을 가진 분들이니까 저항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가진 것을 내려놔야 한다. 사회에 지천으로 깔린 사회모순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정밀한 비판이 드물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요점>
 
보수기독교-보수주의, 진보기독교-진보주의의 싸움이 아니라,
 
중국문명 기준으로 특정조상숭배 문제의 자의적 우대/자의적 차별의 권력과, 대안으로서 서양경제학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