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원회장인 백낙청 분단체제론에 깔린 ‘원불교’가 일당독재 파시즘 이데올로기인 이유 – 이재명 정부의 親이란, 反이스라엘 정책의 뿌리도 백낙청의 원불교
 
유신시대는 1인 독재를 제도권 매스미디어에서 안 다루려 했다. 지난 30년을 필자는 김대중체제로 부른다.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제도권 매스미디어는 안 다루는게 있다. 다루어야 하는 데 안 다룬다. “의회독재” 및 “일당독재” 현상이 있으면 그 <권력현상>을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 이것이다.
 
백낙청은 김대중 정부의 6.15, 노무현 정부의 10.4 문재인정부의 판문점 및 평양선언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를 세운 이데올로기 기획자였다. 백낙청은 대놓고 ‘원불교’신앙의 정교일치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광주일고 조선일보 및 거의 모든 제도권 언론이 ‘백낙청 분단체제론’ 언급회피라는 ‘말기 암환자’같은 병 상태에 빠졌다. 탄핵으로 기존 정부를 끌어내리고 새로 일으킨 정부의 이데올로기 기획자를 논하길 꺼린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 자체가 <일당독재> 현상이다. (미국 민주당 해리스캠프는 트럼프 진영의 ‘스티브 배넌’을 얼마나 씹었나?)
 
50대 이상의 한국기독교인이면 원불교 백낙청과 연결된 사회현상의 뿌리를 잘 이해한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는 법, 규칙, 규범을 준수하는 차원으로 서방자유진영에서 교회법-민법(로마법)-보통법이 섞인 공간의 국가시스템이다.
 
법앞의 평등은 곧 ‘신적 존재’로서 이성적 국가에 모든 국민이 공동체를 이루도록 계약을 맺엇다는 선험적 조건을 요구한다.
 
지금의 보수기독교와 군사정권 때 보수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물론, 민주정의당 때도 있던 말이다. 제1-제2공화국 때 부정부패가 많았던 기독교와 사람은 같은데 신앙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분들이 제1-2공화국 때로 다 돌아갔다고 본다.
 
성경의 예수는 율법을 일점일획도 고치지 않았다. 재해석 했을 뿐이다. 그러나, 백낙청 교수의 기원에 속하는 문익환 목사는 줄기차게 ‘율법 폐기론’을 반복했다.(자유통일당의 국민저항권 드립은 문익환 목사, 그리고, 그 위로 김대중 대통령이 지적 재산권이다.
 
영남 사람들 중에서 ‘경상도 유교’를 기독교로 오인하는 사람이 있었다. 호남 사람들 및 영남 아닌 영역에서는 ‘호남 유교’ 및 ‘원불교’가 기독교로 오인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오인”과는 차원을 넘어선다.
 
동학 세계관은 ‘조상숭배 종교’가 원본이고, 교횟말이 원본을 비추어 보는 비유에 속한다. 정상적인 서양문명 번역물은 영어권 개념이 원본이고, 이에 대한 한글 번역어를 취한다.
 
원불교 백낙청 저작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NCCK등 한국의 좌파 기독교조직과 연대한 흐름이 보인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원불교와 진보의 예수 신앙은 아~~~~~~~~~~~무런 공통영역이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렇다. 원불교 등 동학귀족이 기독교조직에 ‘개종 호소인’으로 위장침투할 경우는 이런 연대가 가능하다.
 
필자는 김대중 김영삼이 1983년 8.15선언에서 ‘민주화=민족해방(공산마을 갑질)선언을 하고, 둘은 이를 마치 철회하는 듯한 행보를 지속했다.
 
동학인들은 <원본>(조상신)에 대하여 보조관념으로 유교, 불교, 도교 유사개념으로 비유로 우회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결국 1983년 계약을 유지한 채(국민에겐 모르는 상태)로, 제도권에서 양쪽 다 서양 자유진영의 민주주의를 이행한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서 국민은 지역주택조합 사기와 같은 유형이고, 국민취소권 발동으로 <민주화=민족해방(공산마을 일당독재)>영역은 무효화함이 맞다고 본다. 이한우 조선일보 기자는 노무현 정권 때 코드(암호)정치로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 동학항일운동의 비밀결사 종교는 서양법 국가에서는 민형사상 사기죄가 아니기 어렵다고 본다.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서양 자유진영의 자유민주주의 – 교회법-민법- 보통법의 존재속. 즉, 법규범, 규칙의 준수와 이행을 전제한다.
 
소련, 북한, 중국 및 남로당의 민중민주주의 – 권력을 독점한 씨족이 하는 일은 뭐든지 엿장수 맘대로 민주주의.
 
이재명 정부의 反이스라엘, 親이란 행보는 이재명 정부가 정말로 그 문제에 밝아서 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원래는 17-19세기 300년 노론독재이고, 그 최종본으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의도으로 수렴될 것이다. 親이란도 보조관념. 反이스라엘은 사실은 “親원불교”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전라도 유교의 연장선으로 나타난 원불교 동학으로 소련공산주의를 했던 그 씨족운동 가닥의 복원이다.
 
서방기독교 패권주의는 동방기독교 영역에 큰 상처를 주었다. 동방기독교 영역 쪽에서는 꾸준히 반 이스라엘 친 아랍행보 연관한 정보를 생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순진리교나 원불교 백낙청의 원불교신앙은 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국, 개량한복 입는(동학신앙이 실제) 문재앙이 가톨릭 코스프레로 하면서, 남한을 북한에 나라파는 데 교황이 동의하라는 것과, 이재명 정부의 친 이란 반 이스라엘 정책은, 원불교 귀족 이익을 위해 압뒤 안가리고 모든 국제룰을 다 깨먹어버리는(그 시절 율법 폐기론 문익환 목사 소환) 것을 연상시킨다.
 
유신체제 1인독재의 이데올로기 상징이 국가주의라면,
 
김대중체제 1당독재 이데올로기의 상징이 <대동세상>이다. 이는 매우 투명한데, 시진핑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 당국가 이데올로기도 대동세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슬로건도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미국 공화당의 국제 전략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젠 오리엔탈리즘 중독의 미국 민주당의 국제전략의 허구성도 보인다. 미국 민주당은 객관적 시선으로 비춰지는 국제 사회보다, 미국 백인보수를 더 미워했다. 이를 한국의 원불교인들은 전략전술적으로 이용한다. 한국에서 진보의 예수를 추구하는 행사의 거의 대부분은 주최자가, 진보의 예수와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이 다른 원불교나 증산교 신앙인 경우가 허다하다.
 
유신체제가 법 초월의 1인 지도자의 신성화라면,
 
김대중체제는 무조건 초월적인 진리독점의 지배귀족연합의 신성화가 깔려 있다. 미국민주당이 아무리 원불교나 대순진리교가 진보의 예수라고 자국 국민대상으로 왜곡하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이 진보의 예수신앙을 이해할 날은 안 오기가 쉬워 보인다.
 
원불교 백낙청이 80년대 학생운동의 기본값 메인언어인 <동학혁명>과 러시아혁명을 섞어쓰는 어법으로 논해서, 원불교 일원상진리를 남북연합체로 이를 러시아 볼쎼비키혁명의 소비에트로 표현했다.
 
미국 공화당은 보수 복음주의 신앙에서 본 국제법 국제관계. 미국 민주당은 진보주의 신앙에서 본 국제법 국제관계를 논하지만, 한국의 원불교인들은 아예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론으로, 중국의 중화사상을 작게 그린 ’소중화사상‘을 논한다. 그렇게 <원불교 백낙청 보유국>은 국제관계를 다 파괴하고, 다른 국가만이 법 규칙 규범을 준수하는데 <원불교 백낙청 보유국>이 정상적인 국가와 같은 대접이 된다면, 외국에서는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생활세계 영역은, 왕중심 사회 어법이나 당독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민간사회를 조율하는 그런 법규범 사회에 놓여 있다.
 
민간사회 조율은 결국 부르주아 질서는 교환관계가 상징이다.(공산당 서적이 정리하는 자유진영 논리) 그러나, 원불교인들은 지배귀족연합을 뺀 나머지를 투명인간으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중국법질서로 공소권과 기소권 분리를 주장한다. 민간에 억울한 피해자보다도, 권력을 쥔 자기편 빼주는 게 우선이다.
 
대한민국 보수주의 정치의 위기는
 
고령화 문제,
원불교 백낙청에 엽기적 침묵문제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이 자유민주 기초지식도 싹다 잊어먹고, 그저 군사정권이나 자유당 때 기득권논리를 적당히 빨아서 쓰면되는 거 아니냐는 착각에 쌓인 문제다.
 
원불교 백낙청의 국제사회 판단은, 고대중국의 중원패권과 미국의 세계패권을 나란히 놓고, 미국의 패권이 고대중국 왕조교체처럼 이루어진다는 <미치광이 어법>을 따진다. 사실, 경제학의 그 뿌리에는 자유진영 기독교신앙이 자리한다.
 
친이란 반이스라엘 행보는 국제 좌파에 충성맹세하면서, 반대편 이익? 등등 눈치 잘 보면서 양쪽 이익 보자는 발상인데, .... 그 이전에 사실은 버블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양쪽 눈치보자는 자세는 엽기적 법치붕괴와 법의 문란을 유도한 것이다.
 
진짜 자유민주주의는 원불교 백낙청도 로마법주의로 모든 국민이 다 알게 원불교 후천개벽 세계관이 어째서 6.25 전쟁 때 남로당 영역의 동족상잔 종교폭력의 이념인가를 쉽게 설명하는 일이 장려되는 사회에서만 유지가 된다. 물론, 반대측 영남동학의 폭력도 가능하겠으나, 지난 20여년 질리게 정죄됐다.
 
중졸이하 동학노인은 대동세상 이라고 하면 그냥 신앙의 세계다. 50대 이하의 대졸 인문학 어법에선 권력과 얽히면 정치이데올로기의 세계다.
 
전라도~평안도 유교로 무난히 중국 공산당 어법을 번안이 가능했다. 중국이 이러한 가닥으로 소련공산주의도 번역했겠다 싶다.
 
소련공산당에서 당독재 권력기득권 심어준자는 농민이다.
히틀러 파시즘에서 게르만족을 권력 꽂아준 쪽은 근로계급이다.
한국은 동학노인들이면서 최고 기득권자들인데, 이분들이 자기들의 시스템을 담보로 잇권 땡기기다.
 
모든게 다 싫어진다.
 
미국의 백인보수가 기독교제사장 그룹으로 차별을 했다는 모든 말이 민망할정도로, 권력을 독점한 노론양반계급은 시스템조차도 수호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오는게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이다.
 
한국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엿 바꿔 먹고, 교회내부에 원불교의 일원상진리 같은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복음통일이라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자유통일당이 80년대 후반의 문익환 노선을 섰고, 계속 옹고집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지금 보수기독교에서 과거 군사정권의 정결한 기독교신앙에서 벗어나서 신앙 부패가 심각한 지경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