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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노땅의 마도로스 경험썰 2 탄(독도는 우리땅) MADORD STORY


아래쟐 블로그에 15년간 마도로스 생활하면서 겪엇던 일들
풀어논거중 한개다...
시간 나는데로 이글을 일베 언어로 나름 찰지게 바꿔서 올릴란다.
배타고싶은 게이들은 많은 도움이 될꺼다...
이글은 내가 20여년전 울릉도 현포항 방파제 공사현장에서 예인선 근무중

겪었던 이야기를 5 편의 수기로 적어둔 글이다.

 

블로그는 들어오지 마라 감성팔이 오글만땅 글밖에 없다.
일베 올리는 글로 만족해라.


저격 필요한 게이들은 헛고생 하지말고 아래 링크로 대신해라.


http://www.ilbe.com/641189677 연평포격 전사자 유가족에게 기증한 그림
http://www.ilbe.com/590239464 야구선수 그린거 ...씨발 WBC 좃망
http://www.ilbe.com/920217045
http://www.ilbe.com/886402403 좌고라 산업화 전투 흔적 ... 이후 좌음 영구 벤 눈팅만 된다.
http://www.ilbe.com/913275996 65년생 노땅 인증


 


 


 

 

1988년 4월 해병대를 만기 제대한 나는 고향인 제주에내려 갔다가

친구만 만나고 별로 할 일도 없이 10여일 빈둥거리다 다시 부산으로 올라왔다.

그당시 모친이 부산 초량동 텍사스 골목에서 작은 여관을 임대내어 운영할 때라

고향은 제주도 였지만 고교 졸업후 2년여 연근해 어선을 타면서 늘 부산에서

지냈었다.


나는 제주에서 부산으로 올라온후 메인 남포동 한마음 음악 다방에서 메인

디제이를 하고있는 친하게 지냈던 형의 권유로 얼결에 심야 시간대 보조

디제이를 하게됐다.

형님은 핑크플로이드, 노발리스, 비지터스, 킹크림슨, 마이크 올드필드, 탠져린 드림,

시티, 제네시스, 카멜, 바클레이 제임스 하베스트, 방코, 클라투, 카메라 애스트레일스,

스윗 스모크, 야드버즈, 같은 실험적인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프로그레시브락이나 아트락 그리고 사이키델릭을 끔직히도 좋아했던 나에게

심야시간대 그런 음악들이 레파토리로 적합하다며 보조 디제이를 하라고 했다.

나도 그당시 무척 좋아했던 음악쟝르였고 음악다방 뮤직박스 오디오역시

진공관 앰프(300B) 여서 따스한 음질을 내 마음데로 들을수 있기에  

그렇게 십여일쯤 디제이를 하고 있을때 레코드 가게 알바 하는 고딩 2학년인 사촌

동생이 자신의 친구 아버지가 예인선 기관장을

구하고 있다며 그예인선에서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

아버지를 소개해 줬다.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 위성 사진

 

 

도동항, 육지를 오가는 고속여객선이 접안되 있다.

 

 

선장은 마침 기관장 자리가 비어 있고 그 예인선이 울릉도 소재 현포리

포구에 방파제및 물양장 공사를 하는 바지선과 해상크레인을 공사

기간동안 예인하기 위해 임대되어 있고 현재는 예인선 수리차 부산

에 내려와 있다고 했다.

그당시 나는 선박 기관사 면허 5급을 갖고 있던 때라 기관장 자격도 되고해서

예인선 선장에게 꽤 괜찮은 보수를 약속 받고 다음날 선장님과 함께

예인선이 상가되어있는 영도 남항동 조양 조선소로 갔다.


89 톤의 예인선은 선장 기관장 갑판장 조기장 이렇게 4명이 승선 하며

울릉도 현포항 방파제와 물양장 공사에 투입된 바지선과 테트라포트

설치용 해상크레인을 예인하는 업무를 주로 맡아서 삼부토건이란 건설사에

임대되어 있었는데 선박 정기 검사겸 수리차 조선소에 있었다.

 

예인선은 2틀간의 선박 수리를 마치고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동해바다를

20여시간동안 높은파도를 뒤집어쓰며 황천항해를 하며 가까스로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군생활로 3년여를 배를 타자 않다가 다시 배에 승선했는데 비오는날이

장날이라고 선원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첫 출항부터 풍랑주의보를 만나 3,4 미터의

높은 파도에 엎치락 거리며 심하게 요동치는 배를 탈려니 하지도 않던

멀미가 심하게 괴롭힌다.


 

저동항(파도가 높으면 여지없이 이렇게 방파제위로 파도가 넘어온다.

 

 

어찌 어찌 멀미를 견디며 간신히 도착한 저동항엔 풍랑주의보로 조업을 중단하고

피항온 수십척의 오징어 잡이 어선들이 좁은 부두에 빽빽히 들어차있다.

도착한 시간이 밤중이라 저동항엔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켜논 전조등이

항내 온 구석구석까지 불야성을 이루며 환하게 비춰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울릉도 사시는분들은 휘황 찬란한 이 광경을 자주 봤을 겄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어선들이 좁은부두에 꽉 들어차 있어서 접안할 공간을 찾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던 예인선은 할수 없이 부두에 나란히 정박된 오징어잡이 어선 옆에다

꼽사리 끼기로 하고 접안을 시도했다.


 

 



울릉도 현포항 (나는 왼쪽 방파제 공사때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그런데 워낙 높은 파도가 저동항 방파제를 넘나들고 있어서 항내에도

바도가 높게 일고 있던터라 목선인 오징어잡이 어선 선장은 자신의 배보다 큰

예인선이 옆에 정박하는걸 원치 않았다.

 

만에하나 자신의 배가 파도에의해 목선으로된 어선이 파손될 우려가 있어서인지

한사코 옆에다 붙이지 말란다.

항내였지만 윗 사진 처럼 넘나드는 높은 파도로 줄지어 결박해놓은 어선들이

위태 위태 하기만 하다.

예인선은 선수부부터 선미까지 외판엔 모두 폐타이어로 펜더(충격 흡수용)를

빈틈없이 달아놔서 요동치는 수면 일지라도 타선박엔 그닥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저동항 위성 사진

 


예인선 선장의 부탁으로 간신히 오징어잡이 어선 옆에 계류하게 됐지만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어선의 선원들의 눈초리가 달갑지 않은듯

우리배 선원들에게 화살처럼 날라오는 따가운 눈초리가 신경쓰였다.


나는 우선 오징어잡이 어선 기관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인사치레는 해얄겄같아

예인선 선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20리터 들이 엔진 오일 3통(60리터)을 어선 기관장에게

고맙다며 건네줬다.

예인선 선장은 선원 모두에게 풍랑주의보가 해제될 때까지 교대로 정박당직을

서면서 대기하라고 했다.


 

 

 

아침이 되니 나이 지긋한 어선 선원한분이 비닐봉투를 예인선 갑판장에게

오징어라고 하면서 건네주고 갔다.

저동항 촛대바위에 걸친 일출을 바라보며 아직도 방파제위를 넘나들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간간히 보였지만 잦아든 바람에도 아직 풍랑주의보는

해제되지않았다.

 

 

 

 



해상 크레인 (여기선 이 크레인 보다 작은 150톤 급 크레인을 끌고 다녔다.)

 

아침이 되니 삼부토건 공사 관계자와 해상 크레인 선장이 배로 찾아왔다.

찾아온 그들은 지금 공사현장인 현포항내에 앙카링정박 해둔 테트라포트 적재용

바지선의 앙카가 심한 바람에 의해 끌려 공사중인 방파제근방 암초에 좌초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현재 보조 예인선이 그 바지선을 로프로 붙잡아 버티고있긴 한데 파도가 높아

그예인선마저 파도에 전복될 위험이 높다는 거다.

 

 

 

 

 

콘크리트 테트라포트를 제조하는 철제형틀

 


공사중인 현장은 파도가 높게일면 공사를 중단하고 모든 공사 장비를 안전하게

저동항으로 운반해야 하는데 주 예인선이 기관 고장으로 부산에서 수리 하는 바람에

45톤의 보조 예인선으로 거대한 해상크레인을 끌고 가는건 무리였고 겨우 3,000 톤의

바지선만 끌고갈 수 있었는데 그 바지선 마저도 테트라포트가 만재된 관계로 이동이

불가능해서 현포항내에 앙카링하고 풍랑주의보를 견디기로 했지만 해상크레인은 좌우현

가이드 외이어와 토우윙 외이어로 해안에 임시야적해둔 테트라포트에 결박해둬서 그나마

버티고 있었는데 문제는 바지선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곧바로 예인선 운항이 가능한지 선장에게 물어봤다.

선장은 즉시 나에게 엔진을 걸라고 지시하고 선원들에게 현포로 간다고했다.

해상 크레인 선장과 회사 관계자를 태우고 저동항을 빠져나온 예인선은 방파제를

벗어날 무렵부터 여지없이 거쎄게 몰아붙이는 높은 파도에 선체는 심하게 요동쳤다.


울릉도 근해의 파도를 겪어본 사람은 이곳 파도가 얼마나 높은 지 다들 알겄이다.

89톤의 예인선이지만 4 ~ 6 미터의 파도에 궁글어 댕기는 배에서 버티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더구나 3년여 해병대 복무기간 배라곤 팀스피리트 상륙작전때 전차를 몰고 올라탄 LST

군함 뿐이어서 공백기간이 걸었던 터라 갑작스레 심한 파도를 만나니 멀미가 생기는건

당연지사였다.

 
평생 살면서 이런 멀미는 처음이었다.

눈에 보이는 하늘은 노랗고 뱃속의 오장육부는 지멋데로 베베 꼬이고 있으니 안겪어본

사람은 말을 하지말라.


이날 나는 정말 죽는줄 알알았다.

오징어잡이 어선에서 준 그 맛좋은 신선한 울릉도 오징어도 못 먹고 신물까지 모두 밖으로

끄집어냈으니 내가 괜히 배를 탔나 원망도 들었다.

 

 

파도는 죽도섬 옆을 지날때 더욱 심했다.

이에 죽도섬과 코끼리바위를 지나 삼선암에 다다를 무렵 왼쪽 해안에 천부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장은 도저히 이대로는 항해가 불가능했던지 뱃머리를 천부항으로 돌린다.

배에 오른 회사 관계자 두분과 해상 크레인 선장도 멀미가 심한지 모두 100년동안 숙성 시킨

까나리 젓을 씹은듯 4~6 미터의 산더미 같은 파도가 연신 예인선을 덮쳐대는 광경을 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줌 지리듯 아무 말이 없었다.




 
대형 파도를 견디며 항해하는 대형예인선의 역동적인 동영상 ...배타면 한달에 두어번 겪는다.

 

 

 

공사 현장인 현포항으로 가는도중 4 ~ 6 미터의 높은 파도로 인해 더이상

항해가 불가능한 예인선을 부근의 천부항으로 급하게 돌린 선장님은 지독한

멀미로 초죽음이 되어 파김치가 따로 없는 현장 관계자에게 천부항에서

내려 차량으로 현포까지 먼저갈겄을 권유했다.

 

 


뱃놈인 나도 심한 멀미로 비몽사몽인데 멀미에 허덕이는 회사 관계자들은 오죽 했으랴

하얗게 질려버린 그분들 보니 되려 웃음이 나온다.

사실 천부항으로 예인선을 돌린 이유도 현장 관계자와 해상크레인 선장의

심한 멀미로 더이상배에 승선 시키는게 무리라고 판단해서 일단 이 사람들을

안전하게 천부항에다 하선시키고 난뒤 예인선을 다시 현포항으로 돌린거였다.

나또한 군복무로 인한 선박 생활의 공백기로 멀미가 심했지만 앞으로의

선박 근무를 위해 나 자신을 이겨내야 했다.

 

 

 

 


 

당시 삼부토건에 임대 되어 현포항 방파제 공사 테트라 포트를 방파제 외곽에

투하했던 해중 개발 소속의 150 톤 해상크레인 예인선은 이 해상크레인을 주로 끌고다녔다.

 


독도는 우리땅이다.

 

높은 파도로 인해 휘청거린 예인선내 각구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선반에 놓여진 물건들은 물론이고 티브이며 냉장고며 어느것 하나 제데로

붙어있는게 없었다.

이런 파도를 안 겪어본건 아니었지만 군 복무기간의 공백기로 나의 몸은

멀미에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지 높은 파도로 좌우로 심하게 기울어지는

예인선에서 버틸려고 아무거나 붙잡고 버텨 보지만 파도의 깊은 골 사이로

예인선 선수가 곤두박질 칠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안는다.

 

 

 

 

배에 접근한 갈매기 순간 포착

 


예인선 첫 근무 신고식 치고 참 지랄 같은 신고식이다...에휴........

그래도 이런 파도는 여러번 겪어본 터라 아무리 심한 멀미도 약 삼일만 버티면

된다는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당분간은 힘들지만 참고 버텨야 한다.

군 입대전 18세 때부터 탔었던 배들이 거즘다 이런 험한 일을 겪어야 하는 작은

연근해 어선 들에서 투양망 조업중 덮치는 파도에 쓸려 바다에 빠지는 일도

여러번 겪기도 했고 타선박이 조업 현장 부근에서 타 선박이 높은 파도로 전복

되는겄까지 직접 봐왔던 나였다.

어릴때부터 뱃일을 하며 그야말로 산전 수전 육박전 까지 치뤄낸내가 아닌가...

이까짓 파도 쯤이야.... 나또한 한마디로 프로가 되야 한다는거다.

 

 

 

 

 

천부항

 

공사현장에 쓰이는 수십억 짜리 해상 장비를 폭풍우속에서 지켜내야 한다는 비장함이

얼굴빛에 감도는 선장님의 표정에도 프로의 기질이 흠뻑 묻어나며 이까짓 파도쯤이야

올테면 와라 함 붙어보자는 표정을 보이는 선장님은 다시 현포항을 향해 폭풍우 치는

바다속으로 예인선의 뱃머리를 돌렸다.

 

 

 

 


천부항 위성 사진

 

 

예인선은 천부항 방파제를 벗어나자 마자 그새 엎치락 뒷치락 거리는 파도를

타고 넘으며 아슬아슬한 항해를 강행했다.

그렇게 뱃머리를 돌린후 두시간만에 간신히 현포항 공사 현장에 다다른

예인선은 항내에서 파도를 뒤집어쓰며 위태롭게 악전고투 하며 버티는

보조 예인선 옆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보조예인선 선원 세명 모두는 만약을 위해 라이프 쟈켓을 입고 바지선을

지키기위해 파도와 싸우고 있었다.

보조 예인선은 바지선이 공사중인 방파제에 좌초되는걸 막기위해 바지선

선미에 예인삭을걸고 근근히 버티고 있었다.

 


방파제 위엔 천부항서 차량으로 도착한공사 관계자 들과 직원들이 모두

나와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여 포크레인과 육상크레인을 대기 시키고있었다.

하지만 육상이나 해상이나 모두 위험한건 마찬가지였다.

 

일단 우리배는 아슬아슬하게 방파제 끝에 걸려있는 바지선 선수쪽으로

접근하여 예인삭을 걸고 바지선을  방파제 밖 외항으로  끌어냈다.

해상크레인은 항내에 앙카를 내리고 선수부 가이드 라인을 해안에

야적된 테트라포트에 의지하여 버티고 있지만 불어닥치는 칼바람 때문에

언제 와이어가 터질지 모를 상황이었다.


이에 선장님은 보조 예인선을 항내로 투입시켜 해상크레인 옆에 계류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지시하고 우리배는 가까운 천부항으로 바지선을

끌고 갔다.

 

 

다행히 천부항 까지는 역으로 내려오는 길이라 맛도모(뒷바람)을 받아 예인선의

흔들림은 덜했다.

선장은 천부항에 바지선을 정박시키고 다시 현포항으로 가서 해상크레인

을 끌고 저동항으로 피항을 가야한단다.

이렇게 되면 저동항까지 가는 시간동안 꼬박 20시간을 또다시 잠도 못자고 험한

파도와 싸워야 하는거다.

가뜩이나 멀미로 탈수직전의 나의 육신은 그야말로 파김치였는데 또다시 20여

시간을 지옥같은 바다위에서 버텨야 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군대를 갖제대한 그것도 남들 가기 싫어하는 해병대를 제대한 놈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건 멀미보다 참지 못하는 자존심이어서 은근히 오기가

발동했다.

 

 


이런 시련이 나에게만 있는게 아니고 모든 선원들이 심심찬케 겪는 일이라

설마 죽기보다 더하겠냐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해상 크레인을 끌고 현포항을 출발할 무렵부터 세차게 몰아부쳤던

바람은 서서히 잦아 들었다.

 

바지선을 천부항내로 피항 시키고 다시 현포항으로 돌아와 해상크레인을

끌고나오던 예인선은 그 시간동안 다행히기 상상태가 좋아지면서 끌고가던

해상크레인을 다시 현포항으로 끌고 간뒤 천부항으로 가서 정박해뒀던 바지선도

안전하게 현포항내로 예인했다.

 

약 150 미터가 완공된 현포항 왼쪽 방파제에 임시로 물양장시설이 있어서

20여 시간동안 악전 고투 하며 예인선과 바지선을 정박시키고 나서야

온몸의 긴장감이 풀리는지 이내 피로가 온몸의 뼈마디마디 마다 밀려왔다.

대충 씻는둥 마는둥 하고 비틀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실로 와보니.

하이구 .........

이런..........


내가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마란츠 프리 앰프와 맥킨토시 파워 앰프 그리고

그당시만도 거금 팔십만원을 주고 구입한 영국제 스펜더SP100 스피커 두개가 선실

바닥에 각종 기물들과 엉켜 씨름을 벌이는듯 뒹굴고 있는게 아닌가....

그동안 배타면서 아껴쓰며 모아논 돈으로 한개 한개 구입해서 음질 튜닝까지

손수 셋팅해논 오디오 장비였는데 하루아침에 쓰지도 못하는 고물이 되어 버렸으니

이노릇을 어찌할꼬 그래도 뮤지컬 피델리티 사의 턴테이블은 아슬아슬하게 책상위에

걸쳐져 있었다.

 

선실바닥엔 각종 오디오 엘피랑 시디들이 널부러져 있고 티브이는 브라운관이 깨진체

나살려라 하면서 책상 밑구석에 쳐박혀 있고 냉장고는 옆으로 쓰러져 내용물을 모두

토해내 버렸다....

다른 거사 둘째치고 나의 재산 1호들인 오디오 기기들이 망가져 쓰지 못하게

된게 너무나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쓰벌 쓰벌........

 

예인선 승선 신고식 치곤 좀 심하게 한거 같은 느김이 들어 쓴웃음이 나온다.

피로에 지쳐 씻는둥 마는둥하고 침실에서 막잠이 들려는데 갑판장이 나를 부른다.

왜 부르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갑판장은 공사 현장 소장이 예인선 선원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 한단다.

 

아무사고 없이 바지선과 해상크레인을 지켜준데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하긴 내가 한일도 별로 없는데............

한거라곤 신고식 치룬다고 멀미한거 밖에 없는데 말이다............

선장을비롯한 공사현장의 모든 해상 장비 직원들은 현포항 마을의 어느 작은

가정집으로 향했다.

비탈진 해안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야트막한 슬레트 지붕의 집들은 작은

골목길(제고향 제주도에선 이런 길을 올레 라고 한다.)

들을 한개씩 갖고 있었다.


현장 직원의 안내로 우리들은 그마을 집들중에 그래도 현대식 주택처럼 깔끔하게

지어진 집으로 들어섰다.

약 50여 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어촌인 현포리엔 식당이 한군데도 없었다.

소장은 자신의 숙소인 그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소장은 20여명의 해상직원들의 회식을 위해 미리 준비해뒀던 울릉도산

한우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울릉도산 한우의 녹아드는 육질의 맛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질 않는다.

아마 이맛은 울릉도가 아니면 그어느곳에서도 느낄수 없을 것이다.

그당시 먹었던 한우는 저동항 앞에있는 울릉도의 부속섬인 죽도란 섬에서

방목하여 키운것이란다.


송아지때 울릉도에서 분양받아서 죽섬으로 옮긴후 자연에 맞겨진채로 방목하여

육우의 크기가 되면 방목지에서 바로 도축하여 다음날 각 소비처로 팔려나간다고

했다.

 

다 커버린 소는 죽도에서 울릉도로 운반 할 수가 없어서 방목지에서 도축하여

부위별로 소비처로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염이 안된 죽도 섬 방목지에서 자란 한우의 맞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처럼 잊지못할 맛깔스런 추억이 되었다.

삼부토건 현장 소장은 풍랑주의보로 꼼짝없이 잃을뻔 했던 해상장비를 지켜준

예인선 선원과 해상직원의 노고를 치하했다.

사실 제일 고생을 많이 했던건 35톤 밖에 안되는 보조 예인선 선원들 이었다. 

그후에도 울릉도에서 일하는동안 현장에서 한달에 두번 있었던 회식에 단골 메뉴로

메이드인 울릉도산 한우를 싫컷 먹게 되었다.

 

다음글은 울릉도 다방 김치녀와 동거하게된썰...

작업중 게다 크레인이 적재된 바지선이 침몰되어 선원들 구조한썰 등등

 

 

 

 

사무실서 키우는 개찡이다... 요즘 동네 개들 산업화 시키러 다닌다고 바쁘단다.

 

3줄 요약... 이런거 꼭 써야되냐?

1. 군대 제대하고 빈둥빈둥 노는데 일자리가 생겼다.
2. 예인선 기관장 채용되고 울릉도현포항 방파제 공사장으로 갔다.
3. 퐁풍우 속에서 승선 신고식 제데로 치뤘다.... 한우는 꿀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