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우리나라 클럽의 역사를 알아보자 [2]
1편은 여기에 - http://www.ilbe.com/884351894
글 묻혀서 다시 올린다 ㅋ
1편에서 70-80년대까지 대충 살펴봤다면 2편에선 80년대 중후반을 살펴보자.
내용이 길어 강남쪽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80년대 중반 강남역 클럽의 갑은 '스튜디오80' 이었다.
지금 좆고딩이나 대학생이라면 부모님께 "강남역 스튜디오80 아세요?" 라고 한 번 물어보거라.
하지만 스튜디오80은 당시 천조국 뉴욕시티 맨해튼의 '스투디오54' 의 아류작이라고 볼 수 있다.
스투디오 피프티포는 디스코 광풍이 몰아닥친 70년대에 필연적으로 생긴 산물이라고 봐야제.
당시 젊은 사업가 두 명이 CBS가 방송 스투디오로 사용하던 맨해튼 West 54번가 건물에 디스코 클럽을 만들어 대 히트를 쳤어.
그래서 이름도 Studio54가 되었지.
당시 맨해튼에서 마피아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곳은 스투디오54 밖에 없다고 사장이 호언했으니 상당히 잘나간거지.
주요 손님은 앤디 워홀, 캘빈 클라인, 톰 포드, 브룩 쉴즈, 마이클 잭슨, 엘튼 존, 마돈나 등등...
결국 나중에 불법영업 및 탈세 크리먹고 운지하게 되지만 70-80년대 클럽 문화의 한 획을 그은 곳이야.
물론 그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즉석 슉슉퓽퓽과 은밀한 마약 복용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지만,
디스코 사교 문화의 전세계 갑이었고 수많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준 아틀리에였다는 평가도 받지.
특히 이곳이 가지는 의미 중 하나는, 바로 근대 클럽 시스템의 효시라는데 있지.
클럽의 아이콘인 미러볼이나, DJ들의 리믹스 음악, 그리고 각 층별 (혹은 Zone)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
네임드 갑부만 멤버십 카드로 접근 가능한 은밀한 VIP 룸 등, 지금 클럽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은 모두 여기서 출발했다고 본다.
아! 하지만 부킹 문화는 우리가 만들었다!! ㅋㅋ
이 클럽의 흥망을 다룬 'Studio54' 라는 영화도 있으니 관심있는 게이들은 한 번 보고...
다시 정신 차리고 강남역 '스튜디오80' 으로 돌아와보자.
1980년대 중반에 가장 잘 나가던 스튜디오80은 바로 저기에 있었어. 강남역 뉴욕제과 바로 뒷편이지.
지금은 뉴욕제과도 없어진 것 같던데, 그 당시 뉴욕제과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는 뒷편 클럽 가자는 이야기였지.
바로 저 앞에 나중에 '시에스타' 도 생기고 했었는데...
클럽이란게 Lifecycle 이 있어서 영원한 갑이 없는 건 잘 알제?
놀다보면 지겹거든, 인테리어가 더러워지기도 하고, 영업정지 크리를 먹기도 하고...
그러다 봄 주변에 더 좋은데가 생기고, 언제나 치열한 손님 유치 경쟁이 유지되는 산업이지.
따라서 스튜디오80은 '월팝' 이라는 곳에 갑의 자리를 내주고 운지...
마찬가지로 강남역 뉴욕제과 뒷편인데, 정면의 그랜드 피부과 간판 뒤에 있는 나즈막한 모퉁이 건물 보이盧?
저기가 바로 '월팝' 자리야. 지금은 무슨 브로이하우스 맥주집으로 바뀌어 있더라고.
얼마전에 TV를 보니 김승우와 조수미도 '월팝'을 다녔다고 하던데,
전혀 흑역사 아님. 나름 건전한 클럽이었고, 대학생들 걍 재밌게 노는데였지.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그 시절, 월팝은 강남역 클럽의 갑이었어.
돌이켜 보면 올림픽은 우리나라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행사였지.
사실 월팝의 정식 명칭은 World Pops (월드팝스) 였는데 다들 월팝이라 불렀다.
식품위생법위반으로 신문에 나올때나 월드팝스로 나왔지 ㅋ
월팝은 결국 후일 바시아, 멤피스로 개명하다 운지하게 되는데,
암튼, 스튜디오80이나 월팝이나 모두 건전한 클럽이었어. 웨이터가 주도하는 부킹 문화도 없었고,
양주 문화도 발달하지 않아 테이블 기본이 맥주 네 병에 과일한주 하나. 여기에 더 시키면 과일화채, 탕수육 등등...
상대방이 맘에 들면 그냥 테이블로 돌진해서 썰을 풀어야 하는 시스템이었지.
아니면 지금은 클럽에 존재하지 않는 블루스타임을 이용해 접근해 썰을 풀고 한 번 땡기던지.
월팝 또한 인근의 타 클럽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
'시에스타' 가 바로 그곳이야. 낮잠 자고 저녁에 오라는 이야긴지 이름 하나는 정말 잘 지었어 ㅋㅋ
경규옹이 사장이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실제로 시에스타에 DJ로 많이 나왔어. (뿐만 아니라 경규옹은 이태원에도 자주 등장)
전문 DJ가 아니라 중간 중간에 웃긴 멘트를 계속 날려주시는 코믹한 DJ 내지는 사회자에 가까웠지.
다산의 신 김지선도 당시 백댄서를 몰고 나와 군무와 함께 코믹 멘트를 날려주셨던 흑역사가 있어.
그러면 당시 네임드 DJ를 잠깐 살펴보자.
왼쪽부터야.
1. 1세대 DJ로 불리우는 이진, TV 프로그램에 가끔 등장했던 분이지.
2. 88올림픽 공식 디제이였던 신철. 붐붐이란 팀을 조직해 나미 백댄서로도 활약. 철이와 미애로 잠시 활동, 후일 DJ DOC 발굴
3. 김창환. 당시 강남역에서 아주 네임드 DJ였제. 후일 김건모와 신승훈을 발굴하고 기획사 대표로 활약
4. 경규옹 ㅋㅋㅋ 당시에도 눈알 굴리는 묘기를 DJ박스에서 해주셨제. '이태원동두천청량리오팔팔..' 읇어대던 코믹 멘트로 유명
뿐만 아니라 아래 짤에 나오는 '함성욱' 이라는 DJ도 모델급의 외모로 당시 호텔 클럽에서 주가가 높은 분이었지.
옆에 리즈시절의 오현경이 있는 이유는 아마도 당시에 두 분이 영화를 한 편 찍어서 일거야.
하지만 그 영화는 시중에 정식 유통이 안된걸로 알고 있다.
다시 클럽으로 돌아와서...
강남역 주변에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유니콘' !
짤 정면에 금문도라는 짱께집 있는 파란 건물 보이지. 저 건물 지하가 '유니콘' 이었다.
옛날엔 목화예식장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유니콘 자리엔 지금 호프집이 있을거야.
여기도 강남역 주변이긴 하지만 스튜디오80이나 월팝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뉴욕제과 뒷편이 아니거든...
국기원쪽이라 집객 효과는 조금 떨어질 듯 했고, 유흥가 밀집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긴 정말 대박을 쳤다.
유니콘엔 1989년의 초기 오렌지족이 집중적으로 몰렸었지.
안에 곧휴가 달렸는지 안달렸는지 모를 커다란 유니콘 한마디가 있었고,
아! 여기에 클럽 역사상 최초로 개인 스테이지가 있었지.
늘씬하고 댄스 고렙인 애들 올라가서 혼자 춤추란 이야기지.
후일 줄리아나 같은 곳에서 아주 일반화 된 시스템이지만 그땐 신박했어.
추가적인 장점이라면 장점이라면 탕수육 안주가 드럽게 맛있었고 음악이 참신했다는 점.
그리고 당시 국내 나이트클럽 최초로 레이저 광선 조명이 등장했다는 것. 최첨단 시설이었다 시발.
그럼 잠시 그 당시 클럽 음악을 살펴보자.
바로 구와타 밴드야.
스시국의 국민가수인 구와타 게이스케 가 결성한 그룹인데.
이 횽아는 원래 'Southern All Stars' (사잔 오오르스타즈 ㅋㅋ) 그룹의 리더였지만.
키보드를 담당하던 자기 와이프가 임신했을땐가? 프로젝트 그룹인 '구와타 밴드' 로 잠시 외도를 했었지.
그 외도에서 'Skipped Beat' 라는 명곡이 나왔고 80년대 후반 온 강남을 뒤흔들지.
약간 끈적한 리듬의 펑키 비트가 일품인 곡이야. 소방차의 G카페라는 곡이 얘를 살짝 표절했지.
뿐만 아니라 신나는 리듬의 'Just A Man In Love' 도 온 대한민국 클러버들을 스테이지에서 헐떡이게 만들었지.
당시 일본 노래는 금지곡이었거든. 방송은 물론 음반유통도 금지.
하지만 80년대 엄청난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의 최고 밴드였던 구와타밴드와 Tube 같은 팀의 음악은 클럽을 통해 알아서 유통됐지.
이 외에도 캐나다의 신디사이저 그룹인 Kon Kan의 I Beg Your Pardon 같은 곡들이 당시 클럽에 울려퍼졌어.
하지만 우리나라도 고속성장기였던건 마찬가지야.
1988년 경제성장률은 10.6%를 기록했지. 미친 성장이었어.
야! 우리가 올림픽을 치뤄낸 국민이다!!!
이땐 다들 올림픽 성공에 대한 부심 가득했고, 덕분에 도시 인프라도 많이 발전한게 사실이지.
클럽 문화도 올림픽 이전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봐.
그 88올림픽은 또 하나의 사생아 클럽을 낳았으니 이름하여 '쿤스트디스코'!
독일이 1990년 통일되었잖아? 그래서 이 당시엔 분단국가 서독이다 ㅋ
서독 정부가 우리나라에 올림픽 개최 기념으로 Kunst Disco (문화 디스코) 라는 첨단 건축물을 지어서 선물하지.
여의도 KBS 별관 앞에 지어줬어. 앙카라공원인가 그거 있는데.
목적은 자국의 최첨단 전위 예술과 문화를 한국에 전달, 고취시키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울 나라 젊은이들이 기회는 이때다! 아싸~ 하면서 강력한 잉여력을 몰빵,
단순 클럽으로 종범시켜놨지 않겠盧? ㅋㅋㅋ
언론에선 저렇게 비판했지만, 그 당시 젊은이들은 더 신박한 클럽을 갈구했었고
입장료도 3천원인가로 저렴했고, 덩달아 선진 덕국 은마를 볼 수 있는 곳인지라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였지.
쿤스트디스코는 올림픽이 끝나고도 한동안 운영됐지만,
여의도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소음 민원으로 보라매 공원으로 철거 이전된 뒤 용도 방향을 못잡다가 운지한다.
다시 강남역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살펴본 스튜디오80, 월팝, 시에스타, 유니콘 외에도
보스터치, 브이존, 오딧세이, 머치모아 등이 있었으나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스킵하자.
하지만, 설명해야 넘어가야 할 클럽이 두세개쯤 더 있는데 당시 마이너급 관광호텔에 생겼던 소위 호텔 클럽들이야.
첫째, 뉴월드호텔의 '단코' (Dancoh) 야.
뉴월드호텔은 지금 라마다서울호텔로 바뀌었고 나중에 레드루팡(구 돈텔마마)를 유치하게 되는 곳이지.
1988년 이 호텔 지하에 생긴 단코는 오렌지족 긁어 모으는 분위의 클럽이었지. 강남역 주변의 대학생 문화와는 조금 틀린?
이 호텔에서 가장 잘 나가던 웨이터였던 '쟈니 오' (본명 오득수) 라는 분은
후일 청담동 줄리아나 사장님으로 등극하며 성공신화를 쓰시지.
참고로 단코는 심형래가 인수해서 '꾸띠' 로 바꾸지.
그러다 미성년자 출입시킨거 걸려서 유해사범으로 약운지 크리 ㅋㅋㅋ (이런건, 업주들에겐 일상사야 시발)
둘째는, '니콜' (Nicole) 이다.
니콜이 어디었냐? 바로 힐탑호텔에 있었지.
이제야 아항~! 하는 클럽 게이들 보이盧?
명클럽은 하루 아침에 나오는게 아니다 시발. 여기가 바로 지금 옥타곤 자리제.
힐탑호텔은 유흥지리학적으로 설명이 잘 안되는 곳이다.
호텔은 허접하기 이를데 없고 바로 뒤엔 주택가, 배후엔 유흥가도 없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고바위 꼭대기다. 그래서 이름도 힐탑 아니盧?
하지만 푹푹슝슝은 역삼동가서 하고, 배후 유흥가는 청담동이 잘 해주고 있고 주차는 발렛파킹이 잘돼서 - 라는 답이 나올 수도 있겠다.
여튼 여기에 클럽 문을 열면 최소한 상타취라는거.
오죽함 요 맞은편에 네이키드라고 붙어먹는 애프터클럽도 있지 않았노?
단코의 운지에 힘입어 힐탑호텔 '니콜'은 당시 초대박을 치게 된다.
니콜은 후일 바바렐라, 델타, 사가, 벨파레, 얼라이브 등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현재 옥타곤이 되어 있제.
위 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힐탑호텔은 전통적으로 오렌지족들의 전당이었제.
지금은 오렌지족이란 말을 안쓰지만 현재 옥타곤도 딱 그런 분위기를 계승하고 있다. 헤이맨 왔썹 분위기 ㅋ
그래서 이런 영업정지 크리도 종종 먹고 ㅋㅋㅋ 오죽함 신문에서 오렌지족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라고 할까 ㅋㅋ
당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 대기중인 좆고딩들 ㅋㅋㅋ
이 외에도 신라호텔 '포인트', 타워호텔 '휘바', 다이너스티호텔 '치치' 등이 있었고 다들 클래스 상타취였으나 스킵한다.
아, 오렌지족이 뭔지 잘 모르는 게이가 있을까봐 잠시 정리해본다.
딱히 누구를 지칭할 순 없지만, 드라마 '사랑을 그대품안에' 에서 강풍호로 나왔던 차인표.
당시 살짝 늙은 오렌지족의 아이콘이었지. 극중에서.
오렌지족이라면 이정도는 꾸며야제~~~ 마지막승부에 나왔던 장동건, 손지창 클래스 ㅋㅋ
오렌지족의 정반대 아이콘으로는 이런 아이들이 있었제... 디제이디오씨 ㅋㅋㅋ
오렌지족은 내가 정의한다.
집에 돈 좀 있고 어설픈 유학파 (대부분 졸업 실패) 에 적당히 LA 영어 좀 구사하면서
맥다날드 햄버거 좀 쳐먹어서 배 좀 튀었나왔고 집에서 무위도식하고 있음 오렌지인거다.
미국에 있던 곳이 엘에이 오렌지카운티 근처였다면 더 진성 오렌지로 취급받았다.
거기에 소나타급 이상 차를 몰고다니면 길에서 ㅂㅈ 헌팅을 트라이하면 야타족인거지.
"야 타!"
이건 야타족이라기 보단 야내려족 짤인걸? ㅋㅋㅋ
당시엔 보픈카가 아니어도 엘란트라 이상만 되면 적당히 통했다.
그땐 각그랜저 V6 2.4 이런게 보픈카 레벨이었제 !
사실 얘도 말기 오렌지족의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클래스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성공과 무관하게 그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말이지.

당시 시중에 범람하던 오렌지족은 사회문제를 많이 야기했었어.
롯데그룹 방계의 신모 쓰레기는 감히 프라이드가 자기차를 추월했다고 벽돌로 내쳐쳐 혼수상태로 만들질 않나.
지존파라는게 튀어나와 오렌지족을 척결하겠다고 증오심을 품질 않나...
짤에 나온 사람은 교수형으로 운지한 지존파의 조직원 김현양.
학교, 교도소 동기들이 모여 많이 가진자를 다 죽여버리자는 행동강령을 만든 뒤,
전국을 다니며 5명을 살인하고 일부 시신은 소각장을 만들어 태우고, 시신을 먹는 등 엽기행각을 벌였지.
그 때 오렌지족을 다 죽이지 못해 한이 맺힌다고 했었던 인터뷰가 기억에 남아.
지존파 사건 위키 링크: http://ko.wikipedia.org/wiki/%EC%A7%80%EC%A1%B4%ED%8C%8C_%EC%82%AC%EA%B1%B4
당시 정부도 앗뜨거 했었지.
사회 양극화로 인해 발생하는 이런 사건들이 민심불안의 요소가 될 수 있으니.
그래서 땡삼이 시절에 수많은 규제가 나왔었단다.
이건 3편에서 이태원 클럽과 함께 알아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