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강원도 횡성 출생인 지만원박사는 1966년 육사(22기)를 졸업하고 67~71년에 월남전에 참전해 포대장 등을 역임했다. 72~74년에 정보본부 해외정보 수집장교를 지냈으며, 74~75년에 미해군대학원 경영학 석사, 77~80년에 같은 대학원에서 시스템공학 박사를 딴 다음 81~87년에 국방연구원 경영제도개선 책임연구위원을 지냈다. 그는 87년 국방연구원 근무시절 공군이 국방예산의 8%를 투입한 방공 자동화 사업을 '25달러 가치도 없는 사업' 이라고 진단한 파문으로 육군대령으로 예편했다. 87~89년에 미해군대학원 부교수를 역임하다가 귀국해 프리랜서 군사평론가로 활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만원박사의 경력을 다시 요약해보면 이렇다. 육사 4년, 전방 2년, 베트남 전쟁터 3년, 사이공 최고사령부 6개월, 미국유학 5년, 국방부 3년, 안기부 1년, 연구소 8년, 미해군 대학원 교수 2년, 미국방성 취업 1년, 그리고 서울대를 포함한 7개 대학 강사, 기업체 및 정부기관 강사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는 그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멋]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 [싱크로 경영]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 [시스템요법-추락에서 도약으로] [국가개조 35제] [시스템을 통한 미래경영: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의 개정판]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솔로몬 앞에선 5.18] [5.18 분석 최종 보고서   등과 같은 탁월한 저서를 내기도 했다.

 

아래의 글은 지만원 박사님의 글이다.  지박사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될것이다. 참고로 당시 윤성민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가장 돈독한 신뢰를 받던 분이 지만원박사님이였다 한다. 윤성민 장관님과 함께 5년 동안 예산개혁을 주도했으며. 이는 군에 전무후무한 신화로 남아있게 되었고. F/A-18기를 F-16으로 바꾸는 데에도 지박사님께서 준비한 증거자료 및 분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한다.

 

 

1980년10월 나는 학위증을 받아가지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했다. 기체를 떠나 연결 복도를 통해 나오는데 검은 양복을 입은 두 청년이 내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왜 나를 찾느냐 했더니 중앙정보부에서 아무개 차장님이 모셔오라고 하셔서 나왔습니다. 홍릉의 국방과학연구소에 나를 데려가셨던 그 선배님이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나가신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짐을 찾아야 할텐데요” “짐은 저희가 다 챙기겠습니다” 두 사람은 김포에서 이문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일체 말이 없었다. 이튿날부터 출근하면서 나는 매일 부장이나 차장급에 보고되는 정보보고서를 읽을 수 있었고, 이른바 S-리포트라 불리는 도청자료도 읽었다. 그런 자료들 중에는 맥주 회사 A가 대만에 수출 길을 터놓으면 B사가 뛰어들어 과당경쟁을 유발시켜 수출가를 떨어트려 서로 피를 본다는 내용도 있었고, A정유사가 중동으로부터 싼 가격에 원유수입 계약을 체결해놓으면 B정유사가 또 그 업체에 뛰어들어 수입가격을 올리는 등 그야말로 추한 내용들도 있었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 정부기관 대표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지만 답답하게도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 내 생각 같아서는 무역협회에 권한을 주어 어느 한 업체가 뚫은 길에 다른 업체가 뛰어들 수 없게 했으면 좋겠는데 처음 간 사람이 서슬 퍼런 사람들 앞에 끼어들 처지도 아니었다.


나는 일단 중앙정보부 요원이 되기 위한 4개월짜리 단기 속성의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들여 북한자료, 공작관계, 심리전 등 될수록 많은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어 견문을 넓혔다. 중정은 참견하는 범위가 넓고, 권한이 큰 데 비해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조정능력들에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두환 대통령의 동기생인 그 차장님은 내게 세 가지 안을 내놓고 2개월 안에 선택을 하라고 하셨다. 하나는 청와대 비서로 가는 길, 또 하나는 중앙정보부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길,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국방연구원이라는 연구소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2개월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을 했다. “저를 연구소로 보내주십시오”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이 국방비의 72%를 차지하고 있던 운영유지비 관리 실태였다. 각 부대별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각 부대별 자원배분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배분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는 곧바로 국방부 과장급 이상 군 수뇌부 모두가 모여 있는 국방부 전체회의에서 40분간 발표됐다. 연구소에 간지 1년 후의 일이었다. 연구원들은 대회의실 뒤에 있는 영상실에서 슬라이드를 넘기고, 나는 국방장관과 연합사 부사령관, 각군 총장 등 수많은 장군들과 대령들 앞에서 시나리오를 읽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라 해도 여러 번 읽어 발음을 숙달하지 않으면 소리에 윤기가 없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해 두었었다. 이는 일생에서 처음으로 해 보는 처녀 발표였다.


“이 자리에 계신 장관님, 각군 총장님, 그리고 참모님들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전방의 사단이나 비행단이 각기 1년에 얼마의 국방비를 소비하고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 . 아마 없으실 겁니다. 각 부대에는 얼마의 물자를 사용했는지,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를 기록하는 가계부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개 부대에 나가서 흩어진 자료를 대략 쓸어 모아 보았습니다. 전방 1개 사단은 대략 연간 300억원 정도의 돈과 물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성이나 대우의 연간 운영예산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관리책임자가 없습니다. 사단장님께 물어봐도 자기는 이 300억원에 대한 관리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자가 부족하면 청구한다, 주면 쓰고 안 주면 그럭저럭 보낸다, 이런 판에 내가 무슨 책임을 지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1사단이 사용하는 비용에 대해서 제1사단장이 책임 없다 하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습니까? 장관님이 책임을 지십니까, 아니면 총장님이 책임을 지십니까? 아니면 모두에게 공동 책임이 있는 것입니까? 두 사람 이상에게 공동으로 책임이 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국방비의 72%인 운영유지비가 바로 이렇게 무책임 하게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부과돼야 합니다. 공동의 책임이란 없습니다. 사단의 예산은 사단장이 단일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단장이 책임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사단별 관리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단별로 관리참모를 가져야 하며, 관리회계 시스템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부대는 경제주체입니다. 부대와 부대 간에는 거래관계가 형성돼야 합니다. 군수부대는 물자를 퍼주는 부자의 부대, 전투부대는 아쉬운 소리 해가며 받아쓰는 동냥의 부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까지 군수부대는 물자를 사서 산타클로스 입장에서 미운 자 고운 자를 가리고,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를 가려가며 물자를 배급해 왔습니다. 군수물자는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였습니다.”


“경제기획원은 돈에다 색깔을 칠해서 나누어 줍니다. 국방예산 담당관도 이런 식으로 경제기획원에 예산을 신청합니다. 이는 마치 100만원 봉급자에게 한 가지 돈으로 100만원을 주지 않고 노랑색 3만원, 파랑색 5만원, 빨간색 12만원 식으로 색을 칠해서 100만원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색깔이 없는 100만원의 돈을 주면 가정주부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현실에 맞게 창의적으로 예산을 사용합니다. 만일 100만원 중에서 3만원은 노랑색을 칠해서 쌀 사는 데만 쓰게 하고, 4만원은 파란색을 칠해서 문화비로만 쓰라고 해 보십시오. 이렇게 100만원을 30여 가지의 칼라로 나누어주고, 각 칼라별로 목적을 지정해주면 얼마나 불편하고 비경제적이겠습니까? 쓰다 보니 파란 돈은 남고 노란 돈이 모자랍니다. 바꾸어 달라고 하면 행정이 매우 불편하고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라 정리’가 유행합니다. 저는 이를 Colored Money System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이제 군수사령부는 물자를 임의대로 사서 하급부대에 일방적으로 배급해 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사단으로 하여금 돈을 가지고 와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게 하는 백화점이 돼야 합니다. 지금은 군수예산을 군수부대에 주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단에 주어야 합니다. 가정주부에게 돈을 주는 것입니다. 군수물자 창고에는 많이 팔려서 모자라는 물자, 적게 팔려서 남아도는 물자가 생기게 됩니다. 남은 물자는 그만큼 다음해에 적게 구입하고, 모자라는 물자는 즉시 더 사다가 놓아야 합니다. 이제 소비자인 사단은 가정주부처럼 쿠폰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물자를 구매해야 합니다. 사단은 소비자, 군수부대는 백화점, 경리는 은행이 되어야 합니다.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는 소비부대의 창의력과 능동적인 자원관리 노력에 의해 좌우돼야 합니다. 군수사령부는 물자를 사서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정돈해 놓고 사단에서 구매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 .”


회의를 주관하는 실무자 대령, 사관학교 6년 선배인 국방부 과장님은 내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홈런”을 쳤다는 식으로 힘 있게 엄지를 올려 보이며 윙크를 해주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읽어가는 동안 그 넓은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날 오후 연구소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국방부에 난리가 났소, 지박사 홈런이오. 축하하오. 윗분들이 얼마나 지박사와 나를 칭찬하시는지 기분이 너무 좋소. 장관님이 예산개혁을 시작한다 하오, 지박사를 자주 부르실 꺼요” 며칠 후 윤성민 국방장관은 예산개혁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지휘서신 1호를 하달했다. 그 지휘서신은 내가 초안을 작성한 것이었지만, 국방장관은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하달했다. 당시까지 국방물자는 공기나 물처럼 반자유재로 취급됐다. 주면 쓰고, 남으면 내다 팔거나 폐기처분해 버렸다. 정교한 광학장비도 함부로 던지는 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고장이 잦았다. “고장 나면 수리 보내면 되지 뭐” 이게 물자와 장비를 대하는 군의 정서였다. 미군이 거저 주는 물자이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없었다. 자식의 정신을 병들게 하려면 돈을 많이 주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예산개혁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모든 장비에는 관리 책임자가 지정됐다. 장비에 비용이 발생하면 관리책임자의 비용카드에 비용이 기록되어 상도 받고 벌도 받게 했다. 모든 장병에게 비용의식이 강요된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의식혁명이었다. 모든 사단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들어갔고, 자원관리참모가 신설됐으며, 부대마다 비용절약 운동이 확산됐다.


그러나, 일을 벌이면 중간에 한건 잡아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사단단위 자원관리 시스템 역시 내가 주도해야 할 일이었는데, 실무부서 장군과 대령들이 중간에 나서는 바람에 개혁이 내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한 계급씩 올라갔다. 이로 인해 군의 일각에서는 “지만원 때문에 장군 여럿 됐다”는 말이 돌았다. 시스템 설계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런데 실무 대령과 장군들은 내가 거저 해 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업체에게 개발비를 주었다. 업체가 개발한 프로그램들은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수많은 자료를 생산해 냄에도 불구하고 막상 경영개선에 필요한 자료는 생산하지 못했다. 업체와 어울려 돈 잔치만 한 것이다.

 

국방부의 예산개혁 분위기로 인해 1982년부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국방비는 물론 정부 전체의 예산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개혁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전 정부 부서에 영기점 예산제도(Zero Based Management System)를 강요했다.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 카터가 주도하던 것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당시 윤성민 국방장관은 5년에 걸쳐 예산 개혁을 주도했다. 예산개혁이 그를 장수 장관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예산관리 근대사에 가장 칭찬받아야 할 의식개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지금까지의 모든 국방장관들은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몇 해 전 설치된 ‘국방획득청’ 역시 내가 연구하여 윤성민 장관의 호응을 얻었지만, 중간에 차관 이하 수많은 국방부 국장들과 군수 장군들의 반대로 변질됐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처럼 ‘전차사업단’, ‘155밀리포 사업단’ 하는 식으로 한 단계만 발전하는 선에서 마무리돼 버렸다. 육사 지역에 ‘시스템 대학원’을 만드는 방안을 만들어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은 너무 좋아했지만 이 역시 당시 김복동 육사교장과 알력관계를 가지고 있던 기획관리실장의 반대로 국방대학원에 체계분석대학원을 세우는 것으로 변질됐다. 이 대학원은 지금까지도 운영돼 오고 있다. 육사에 있는 교수들은 대부분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에 육사생 만을 위해 존재하기에는 매우 아까운 존재들이었다. 당시 60명 정도의 박사들을 대학원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나는 육사 지역을 선택했지만, 이 역시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것으로 종결됐다. 지금도 육사 교수부에 있는 이 아까운 존재들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원수 슐리펜이 전선의 우측을 강화하여 해머(망치)로 사용해야 한다는 소위 슐리펜 계획을 작성했지만, 그 뒤를 이은 몰트케 장군이 그 작전계획을 변경해 가지고 작전을 했다가 실패했다. 여기에서 전쟁사 연구자들은 “슐리펜 계획은 슐리펜이 수행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군에서 많은 개혁적 대안을 내놓았지만 기성 수구세력에 밀려 헛수고만 했다. 보좌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지휘관 자신이 유능해야 하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머리는 남으로부터 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머리가 비어 있으면 그 머리는 먼저 점령한 사람이 임자가 됩니다. 머리가 나쁘면 선동적인 말은 잘 들어도, 과학적인 내용은 골치 아프다며 멀리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머리는 좌익이 먼저 점령해 버렸고, 당신 시대로부터 대한민국이 좌익화와 쇠퇴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조달관리제도도 연구했다. 계약제도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정가 계약’(FFP;Firm Fixed Price Contract)이고, 다른 하나는 ‘원가정산제 계약’(Cost Reimbursement Contract)이다. 전자는 마치 남대문 시장에서 기성품을 사는 것처럼, 계약 시에 한번 정한 가격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구매하는 계약제도이고, 후자는 계약 시에는 가격을 정하지 않고 있다가 업체가 제조과정에서 합법적으로만 지출한 비용이면 모두를 사후에 정산해 주는 계약제도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익도 업체 몫이요, 손해도 업체의 몫이다.

 

일단 가격이 확정되면 그 가격에서 얼마를 남기든 그것은 업체의 것이 되기 때문에 업체는 경영개혁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확정가 계약을 해놓고서도 군은 정산을 통해 업체가 남긴 것을 도로 빼앗아 갔다. 이러다 보니 업체는 구태여 경영개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 다. 이는 장기적으로 군과 업체 모두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 결국 업체의 방만한 경영이 유발시킨 낭비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전가됐고, 방만하게 경영을 해야 더 많은 이익을 보는 업체는 국제경쟁력을 잃게 됐다. 사후원가정산제는 매우 비효율적인 제도이다. 업체가 유발시킨 방만한 경영결과를 모두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후 원가정산제는 연구개발 사업과 같이 기술적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사전에 원가를 확정할 수 없을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적용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한국군은 사실상 100% 모두를 사후정산제로 하고 있으니 그 낭비가 얼마이겠는가? 선진국에서라면 지금 한국군이 추진하고 있는 거의 모든 방위산업 물자를 확정가계약으로 계약할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조달본부 계약 건수 중의 85% 정도는 확정가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후관리라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어, 사실상 100% 모두가 다 원가정산제로 계약되고 있었다.


‘확정가계약’을 체결하면 단 한명의 구매관이 수백 개의 계약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원가정산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200여 명의 원가요원들이 윤곽이 뻔한 내용을 가지고 1년 내내 원가정산을 하고 있다. 원가정산 노력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지만 원가 내용은 오직 업체가 발생시킨 ‘직접비’로 제한돼 있다. 직접비만 계산하면 간접비와 이윤은 이미 국방부 원가과 요원들이 원시적으로 만들어낸 ‘제비율’이라는 율을 곱해 산출한다. 통상 200% 내외로 책정돼 있다. 직접원가만 나오면 거기에 2배를 곱해 얹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업체는 조달본부에 가서는 직접비를 높이려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국방부 원가과 요원에 접근해서는 비율을 가급적 높게 받으려고 노력한다. 시스템이 이렇듯 원시적이기 때문에 조립업체 입장에서 보면 같은 부품이라도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국산부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엄청난 이익이다. 같은 제품을 외국으로부터 1억원에 구매하면 2억원의 간접비와 이윤을 할당받고, 2억원에 구매하면 4억원을 할당받는다. 비용을 부풀릴수록 이익인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공무원들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 할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고낭비는 장부기록에도 나타나 있지 않고, 감사원 감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감사관들의 눈도 공무원의 눈만큼 깜깜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고급 시스템 분석가들이 필요한 것이었다. 한명의 유능한 시스템 분석가는 수십조 원의 낭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이 다 분석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능력이 없는 공무원들은 간단한 일만 처리하게 하고, 시스템 자체가 국고를 절약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예산집행은 구매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그 모든 구매행위가 이렇듯 무모한 행정에 의해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실체를 장관에게 보고했고, 장관은 이를 실천하려 했지만 역시 중간 간부들의 억척스런 저항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계약제도가 맑아지면 뒷거래가 없기 때문에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먹이사슬인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조달본부 구매관들이 항공기 부품, 잠수함 부품, 전차 부품, 특수 물자 등 광범위한 품목에 걸쳐 500-600배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1,500배로 구매한 사례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대에는 국방관리에 대한 개혁작업이 일체 보도된 바 없다. 아마도 지금은 더 악화돼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FMS차관을 사용했다. 연간 2-3억 달러의 차관을 얻어 그 돈을 가져오지 않고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연방은행(Federal reserve Bank)에 자동으로 예치해놓고, 한국군이 구매한 액수만큼 정산을 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결산은 순전히 미국 정부에 의존했고, 한국 조달본부는 관심조차 없었다. 미국이 1달러짜리 부품을 1,500달러로 계산하여 정산을 해도 시정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품목도 정비비도 이렇게 바가지를 썼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레이더 기지, 방공포 기지를 돌아다니면서 전력의 공백상태도 파악했다. 묻혀있는 지뢰의 성능도 평가했고, DMZ의 취약성도 평가했고, 문산 통로를 지키는 부대들의 작전계획과 군수계획이 일치하지 않는 점들도 폭로했다. 특검단장 정호근 중장은 나를 한동안 방위산업업체 감사를 위한 자문관으로 활용했다. 특검단 감사관들에게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잘한 일을 잘못한 일로 오해하여 억울하게 처벌을 주거나, 개악을 하는 경유가 허다했다. 그래서 정호근 특검단장은 자기와 함께 동행하면서 감사관들이 관찰한 내용들과 그에 대한 감사관들의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진해 해군장교 클럽에서 파티를 했을 때였다.

 

해군 1성 장군이 “지박사는 너무 예리하기만 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없어.”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특검단장이 그 해군장군을 불렀다. “자네 지금 무슨 말했어. 어느 놈이든 지박사를 험담하면 내가 가만 두지 않는다. 지박사는 국보다. 그리고 내 동생이다. 자네 벌주로 이 소주 한 병 다 마시게.” 그 장군은 글라스로 소주 한 병을 즉석에서 마시는 벌을 받았다.


토의의 질은 연구과제의 질을 좌우했다. 대부분의 과제책임자는 과제 제목을 부여받자마자 스스로 장절 편성을 한 후 3명의 연구원(주로 석사)들을 불러 1인당 1-3개 정도의 장을 할당했다.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연구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다가 해당 장절에 대해서만 1대1로 토의를 했다. 연구원과 연구원 사이에 만리장성이 설치됐다. 같은 팀에 있으면서도 각자는 이웃 동료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각 연구원들이 맡은 장절을 개별적으로 토의할 때에는 그럴 듯 했지만 과제가 마무리 될 때 모든 연구원들이 작성해온 장.절을 합철해 보니 맥이 흐르지 않고 철학이 없었다. 3인이 만들어 온 장.절을 합철만 한 것이다. 문체도 3인의 문체다. 이런 연구 보고서에 생명이 있을 리 없었다.


반면, 나는 이와는 다르게 과제를 수행했다. 연구원에게 장.절을 편성해 주지 않고, 2주 동안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토의를 했다. 자동차를 만들 것인지 라디오를 만들 것인지, 만들면 어떤 모양의 것을 만들 것인지를 찾아내기 위한 브레인스톰을 했다.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군에는 어떤 임팩트를 줄 것인지? 처음에는 농담들처럼 시작되었다. 무슨 상상이든 거침없이 말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 농담들 속에는 지혜와 아이디어들이 들어 있었고, 이웃 동료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또 다른 지혜를 내놓았다. 이런 식의 토의를 통해 보고서의 목표와 개념과 스펙들이 명확하게 규정됐다. 다른 연구팀의 경우에는 연구원들이 전체 과제에 대한 개념을 전혀 알 수 없이, 오직 자기가 맡은 장절에 대해서만 연구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모든 연구원들이 과제의 목표와 설계와 스펙을 잘 알고 있기에 나누어서 일을 할 수 있었고 올코트프레싱도 할 수 있었다. 각 연구원들이 가져오는 자료는 공동으로 토의했고 모든 자료와 개념들은 또렷한 목표와 설계도면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조립되었다. 보고서에 개념이 일사분란하게 통합되었고 생명력이 있었다.

 

전자의 연구방식에 의해 생산된 보고서는 3인의 연구원이 쓴 것을 합철했지만, 나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문체로 쓰인 한 사람의 보고서였다. 모두에게 일하는 재미가 있었고 연구원과 팀장의 능력이 날로 향상됐다. 일을 늦게 시작했지만 과제는 가장 먼저 끝내면서 결과에 대해 늘 자신감을 갖게 됐고 칭찬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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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2) 아침 조선일보에 김형기 논설위원이 “학자 될 것 아닌데 왜 논문 강요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제목이 이상하여 읽어보았더니 이렇게 시작됐다.  “스타 강사 김미경씨가 석사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기사가 나간 날 한 독자가 신문사를 찾아왔다. 그는 비닐봉지에 달걀 120개를 싸들고 왔다. 항의 표시로 신문사 간판에 던질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달걀 투척은 포기했지만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김미경씨는 세상을 밝게 해주는 사람이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박사 학위도 아니고 석사 논문 아닌가. 조선일보에도 석사·박사 많을 텐데 모두 완벽한지 궁금하다." 

 

김미화와 김혜수와 같은 연예인은 물론 대학총장, 교장, 장관들까지 다 표절에 걸려 체면들을 구겼다. 필자는 카이스트, 포항공대, 서울공대 등에서 코피를 늘 흘릴 정도로 스파르타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에 쓰는 논문은 오리지낼러티(자기 창작)가 있겠지만 그 외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야간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논문을 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필자는 홍릉 연구소에 있을 때 서울대, 고대, 경희대, 동국대, 성대, 단국대, 인하대, 한양대 등에 나가 응용수학, MIS 등을 강의했고, 석사와 박사 논문도 심사했다. 이런 경험과 경력에 근거하여 필자는 대부분의 초일류급이 아닌 대학에서 부업하듯이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직장인들에 진정한 의미의 논문을 쓰라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가 석사과정에서 배운 실력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문제를 찾아내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푸는 것을 말한다. 배운 게 있어야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배운 게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야간에 그것도 결석하는 날이 더 많은 식으로 교실에 나타나는 식으로 쌓은 학문의 깊이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풀 수 있는 내공 자체가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어디서 그럴듯하게 베껴오라는 팬토마임(무언극)일 것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악명 나 있는 미해군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잔 것 같다. 2-3시에 잠을 청해 7시에 깨어나려면 자신도 모르게 ‘어구 어구’ 소리가 절로 났다. 이웃 친구들과 대화 한번 나눌 수 없을 만큼 각박하게 시간에 쫓겼다, 논문을 써야 하는데 도대체 문제를 찾아낸다는 것이 너무 막연했다.  

 

어느 날 교수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필자는 문제를 찾아냈다. 결국 제조기업이 운용하는 내부통제시스템(internal controtol system)을 전제로 할 때 기업의 연말 제공품(WORK IN PROCESS)의 가치를 3개월 동안의 샘플 조사를 통해 평가하는 ‘수학적 감사기법’(mathematical models for evaluating internal control system)을 개발하기로 했다. 필자의 교수님(Burns)은 이를 시뮬레이션으로 개발하여 DBA를 땄지만 필자는 석사과정에서 시뮬레이션 대신 딱 떨어지는 수학공식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에 감동한 교수(Burns)는 필자를 문과석사에서 이과박사로 강력히 추천했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미적거리는 학교 당국에 “이 학생을 이과에서 안 받아주면 내가 학교를 떠나겠다‘고 협박하여 1907년 학교 창설 이래 최초로 문과에서 이과로 분야를 옮겼다. 모든 시험에 합격하고도 박사논문에서 무슨 문제를 잡을까 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마침 3인의 교수들이 공동하여 문제는 만들어 놓고도 풀지 못하는 큰 프로젝트가 있었다. 필자는 그 문제를 푸는데 성공했다. 요는 논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의 박사논문에는 2개의 공식과 6개의 정리 그리고 1개의 스페어 파트 계산를 위한 알고리즘이 들어있다. 여러 개의 비교 매트릭스에서 아이겐밸류를 찾아내 매트릭스의 크기를 비교하고,  Laplas Transformation, Renewal Theorem 등을 총 망라하여 새로운 공식을 만들고, 정리를 만들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최적화 모델을 개발하여 수십만개에 달하는 미국 군함의 항해기간 90일 치에 해당하는 수리부품 적재수량을 계산하게 해주었다. 담임 교수가 졸업식에서 이 업적을 소개하자 장내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지금도 그 고장에 가면 필자는 전설의 인물(legendary person)로 회자되고 있다 한다.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영감을 얻어 문제를 푸는 것이 공부요 논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의 스파르타식 드라이브에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필자가 겪은 과정이 이러하고, 필자가 한국 대학들에 강의를 나가면서 겪은 경험들이 있기에 필자는 한국의 야간대학원을 다녀가지고서는 정당한 논문을 쓸 수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만일 전수조사를 한다면 한국사회에서 오리지낼러티가 있는 논문이 과연 있기나 할까?’ 이것이 솔직한 필자의 생각이다.  

아래는 필자의 논문의 성격을 나타내는 수학기호들의 언어다.  

 

 

 

2013.4.2.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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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의 이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교육의 질과 국력을 비례관계로 본다면, 미국은 세계 최강의 대학군을 거느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국가는 아낌없는 지원으로 준재들을 길러내고, 그 준재들이 다시 국가를 살찌운다. 이러한 선순환의 메커니즘이 계속 작동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건실한 교육환경과 합리적인 신입생 선발 시스템에 있다 할 것이다.

대체로 미국 명문대학의 입학 난이도별 등급(college admission selector)은 1. most competitive, 2. highly competitive, 3. very competitive, 4. competitive, 5. less competitive, 6. non competitive 이상 6 등급으로 나눔이 보통인데, 최상위 most competitive 급에는 대략 30 여 개의 대학이 포함된다.

최상위 30 개 대학의 수준은 우리나라의 서울대가 400 위 정도로 평가받은 전력이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그 교육의 질과 학생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최상위의 30 개 대학은 어떤 대학들이 포진해 있을까? 저 유명한 예일과 하버드, 프린스턴과 스텐포드 그리고 그 이름도 생소한 라이스(Rice)나 스미스(Smith) 등등, 총 등록 학생 수가 불과 2~3천명 안팎의 소규모 귀족명문 대학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다소 놀라운 것은, 최상위의 30 개 대학 중에 무려 6개의 군사관련 대학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군사관련 대학은 신입생 선발 조건에 있어서 일반 명문대학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격하다.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학교성적과 봉사활동 경력뿐 아니라, 리더십, 체력, 기타 국가의 동량이 될 자질과 자세를 고루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거주지역 상원의원의 추천도 필수다. 가장 고난도의 입학 요건을 요구하는 학교들이 바로 군사관련 대학인 것이다. 이들 군사관련 6개교를 나열해 보면

 

1. United States Air Force Academy........................... [ 공군 사관학교 ]
2.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 육군 사관학교 ]
3. United States Naval Academy................................... [ 해군 사관학교 ]
4. United States Coast Guard Academy........................ [ 연안경비 사관학교 ]
5. United States Merchant Marine Academy................. [ 상선 사관학교 ]
6. Webb Institute of Naval Architecture........................ [ 웹 해군 조선공과 대학 ]

인데, 여기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6개 군사학교 중에서 4개가 해군관련 학교라는 사실이다. 총 6개의 군사학교 중에서 해군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67%에 이른다. 이는 전체 미국 대학의 상위 1% 중에서 군사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고, 또 그 군사학교 중에서는 해군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니, 대학만 두고 보더라도, 과연 "미국은 해군의 나라"라 불릴만하다.

물론, 미 국방예산의 소모 퍼센티지를 보더라도 해군예산이 압도적이니 당연한 현상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미국 정부와 전체 미국민의 정신에 자리한 해군의 위상은 참으로 대단하다. 미국의 가시적인 힘은 항공모함 전단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지만, 보이지 않는 실질적인 힘은 미해군 천문대에 의해 행사된다. 매해 신년, 세계 각국은 미해군 천문대에세 제공되는 자료로 새해 책력을 작성하게 되는데, 바로 이 점이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할 것이다. 우주와 항공기술도 공군을 능가하며, 의료설비와 기술 수준도 최강이다. 미 대통령의 건강검진과 의료처치는 주로 베네쓰다 해군 병원에서 이루어진다.

 

사관학교 졸업생의 경우, 대다수는 일선의 초급장교로 근무하게 되지만,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소수의 장교들은 MIT등 미국 유수의 전문연구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요원이 되거나 교수요원의 길을 걷는다. 이런 MIT 같은 전문연구대학원 중의 하나가 바로 미해군대학원NPS(Naval Postgraduate School)이다. 전문연구대학원의 교과과정은 실무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그 난이도와 철저함은 수재들에게 조차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예전 MIT 유학기를 읽다 가슴 아팠던 대목이 있다. 성실하고 총명한 학생이었지만, 결국 중도 탈락되어 눈물을 뿌리며 짐을 꾸리는 장면이었다. 문과계통은 열심히 노력하면 못 따라 갈 일이 없는 '의지의 문제'이지만, 이과계통은 노력 만으로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재능의 문제'이기에 이과 탈락생은 "하는 수 없이 하버드에 가서 경영학 석사 과정 MBA나 이수해야겠다고 했다. MIT 석사과정에서 중도탈락한 사람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차선으로 택하는 곳이 하버드 경영대학원 정도가 된다는 말이다. 하버드 MBA가 우습다는 것이 아니라, MIT의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NPS는 위에 열거한 군사학교 출신 장교를 포함한 고급장교를 대상으로 하는 엘리트 군사교육 기관이다. 미국군 뿐 아니라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전 세계에서 선발된 영관급(대개 소,중령급)장교를 그 교육 대상으로 한다. 미 정부의 예산으로, 강도 높은 교육으로 미래 자유세계를 지켜낼 엘리트를 배출하는 곳이 바로 미 해군대학원인 것이다. 대충 이정도면 미국의 군사관련 교육기관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만원 박사의 모교가 바로 이 Naval Postgraduate School 이다. 1980년 그가 졸업하던 해, 그는 NPS가 그 해 배출한 유일한 이학박사였다. 3년의 짧은 수학 기간 중, 문과 석사에서 이과박사로 과정 변경하여 박사를 단 한 번에 따낸, 미해군대학원 사상 유례 없는 최우수 생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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