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철학과 뚜웨이밍 박사의 글이다.

 

읽다보면 정말 재밌다, 삶의 희망과 행복을 주는 글이다.

 

물론 없는 자 모르는 자 거지이고 못생긴 자에게만

 

 

Pointless 는 요점 없는 이라는 뜻이다. 즉 아무런 요지나 논지 , 주제가 없다는 뜻이다.

주제는 없다, 그러나 포인트리스는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포인트리스가 학문에 속함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학문도 아니다. 애당초 무요점은 그 자체로 존립한다. 그 자체로 서있는 것이 무요점이다.

대학교에서는 요점이 없는 에 대하여 배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식 학문도 아니지만 불교에서 무소유는 또다른 학문으로 인식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요점 그 자체가 학문이 될 수는 없다. 포인트리스는 그러나 우리 생활의 가장 큰 한 부분이기도 하다. 요점없는 대화는 사교를 할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포인트리스는 그 자체 만으로도 대단한 연구 가치를 지닌다. 이는 우리생활 깊이 포인트리스가 존재함에 있는데, 작게는 사소한 의미없는 대화부터 크게는 인생 그 자체가 요점이 없음에 있다. 우리는 태어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을 산다. 그것이 포인트리스다.

포인트리스는 매우 난해하며 다른 학문과 같이 정리 될 수 없다. 포인트리스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다르게는 가장 우리생활에 깊고 이해하기 쉬운 생각이다.

포인트리스는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존재 이유이다. 의미가 없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의미이다. 인생 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그 자체도 어떠한 의미를 가진다. 포인트리스는 사교적 기능도 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무논쟁, 그리고 무요점 적인 대화로 점점 유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좀더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무요점 그 자체는 간단하면서도 말했듯이 난해하다. 이는 정리될수 없다. 정리될 수 없는 생각 그 자체가 무요점이다. 요점이 없기 때문이다. 무요점과 비슷한 것으로 허무주의가 있다. 그러나 같은 것은 아니다, 허무함은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이유 없음은 본능에 존재하기도 한다. 이성적 논리가 존재하나 어떤이가 어떤이를 싫어하는것 , 비슷한 일례로 , 뚱뚱한 사람과 본능적으로 가까이 하기 싫은 경우도 요점없는 본능에 속한다. 이는 과학으로 설명 될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 개인이 왜 싫은지는 정확하게 정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점없이 이야기를 계속 나는 써내려가고 있으나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요점 없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므로 ,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유없음을 설명하기 위한 글이다. 그러나 내 머리속 어떤 부분에서는 이 글 조차도 요점이 없다고 그러는데 내가 글로써 정의할수 없다. 무요점이란, 요점이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 재능은 가끔씩 요점 없는 자신의 행위나 생각으로부터 튀어나온다. 자신이 자연적으로 뛰어나거나 천채적인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요점없이 무언가를 하다가 일 때가 많다. 자신이 아무런 요점 없이 소설을 쓰다가 천재적 소설가였음을 발견하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재미로 농구를 하다가 자신이 농구에 타고났음을 발견하거나, 학교에서 요점없이 (개인의 생각으로) 수학을 배우다가 너무나도 재밌고 타고났음을 발견했을때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요점이 없음은 단순한 철학적 생각을 뛰어넘어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생각이다.

 

무요점이란 생각은 본래 인간의 본능이다. 요점이 없고, 생존만 이루어지고 먹고 자면 끝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유 없이 이유를 만들려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무요점적이나 인생의 요점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무요점이다. 무요점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자 본능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 요점들이란, 주로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살며,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때론 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많은량의 공부를 하고 결론적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하며, 많은 돈을 벌어 더 종족이 잘 보전될 것 같은 암컷을 유혹해서 결혼을 성공해 종족을 번식하는데에 목적이 있다. 이는 본능적 목적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사회적 목적이 혼합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가장 큰 생존의 목적은 종족의 보전인데, 인간 종족을 번식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왜 번식하려 하는가? 이는 본능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이 본능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요점이 없으나 그것 자체가 본능이고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본능이다. 즉 본능 그 자체도 무요점에 속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요점적인 삶을 요점을 가지고 살도록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목적을 만들어내고 성공하고, 아름다운 와이프를 데리고 사는데 목적이 많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늙어 죽게 됨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생긴 학문은 바로 신학이다. 가장 큰 것으론기독교가 이에 속하는데, 바로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목적은 영원히 살기 위함이며 영원히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진짜일까? 예수는 실존 인물이였다. 예수는 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나 사실 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히브리인 동양인에 눈에는 아랍인, 흑인에 모습에 더 가깝다. 물론 기독교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고, 예수가 현재까지 인류 앞에서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예수도 마리아와 성관계를 맺고, 자녀까지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가 4대 복음을 지정하기 이전에 앞서 30개정도의 복음들이 존재했는데, 어떤 복음에는 예수가 마리아에게 키스 하며 모든 사도들이 질투를 했었다고 말한다, 예수도 섹스를 하고 자녀까지 있었을 지도 모르는 것도 유력한 유추인데 반해 기독교계는 무조건적으로 예수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신뢰하고 있다. 이는 바로 인간의 본능적인 무요점에 대한 반항이다. 예수는 의미없는 삶에 있어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철학자였다. 아쉽게도 그의 상상력은 현실이라 스스로 믿게 되었고, 결국 정확하게 따지면 정신병이지만 , 무요점에 대한 반항, 요점있는 삶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가장큰 목적인 영원한 삶은 원대한 목적으로써 많은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요점이란 그러한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고, 자손을 최대한 늘려 많이 번식하자는 아무런 의미조차도 없는 요점없는 본능에만 이끌려 더 나은 암컷을 소유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자식을 낳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을 삶이라 칭한다. 그러나 , 결국 본인은 죽게 되지만,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생각으로 본능적으로 자녀를 많이 낳고자 함은 늙어서 보살펴 줄 이가 없기 때문이다. 늙어서는 사냥도 못하고 농사도 못짓는데 누가 자신을 먹여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대 사회에 있어 그것이 문제가 되는가? 국가는 노인들을 보호하고 , 그러므로 더 이상 자손 종족 번식에 대한 본능적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이에 반대하여 독신 주의자가 생겨난 것이다. 독신 주의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 가장 합당하고 나은 선택이다. 혹은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낳지 말자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첫번째로 , 모든 수입을 자신에게만 쓸 수 있으며 , 늙어서는 국가 요양원 등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신 주의나 혹은 무자녀 주의는 가장 합리적인 주의다 현대 사회에 있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섹스할 파트너는 있고, 돈은 서로 각자에게만 투자 한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무요점이란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다. 아무런 대화 주제가 없을 때 무요점 그 자체는 대화 주제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허무주의와 무요점의 정점에 도달했다면 군대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생을 요점 없이 일만하고 밥먹고 늙어서는 국가로부터 죽을죽을 때 보호받고 , 가장 요점없는 삶에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다. 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를 다녔었다 취업이 용이하기 위해 보건대학교의 건강관리학과를 입학했다. 그러나 나는 요점을 찾지 못했다, 바로 삶의 목적말이다. 종교 조차도 답이 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자퇴를 선택했다.

그러나 무 요점 그 자체를 이해할 때 비로소 행복이란 당신을 찾아온다. 무요점 적인 삶은 가장 가난한 삶까지 목적을 줄 수 있다. 당신이 아무리 늙었건, 돈을 조금 벌건 당신이 잠을 자고 짐승으로부터 보호받고, 맛있는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써 무요점 적인 삶은 완벽하게 완성된다. 바로 그게 가장 합당하고 합리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본능적으로 수컷이나 암컷을 만나 자손 종족을 번식하기를 원하며 최대한 많이 번식하고 성공하기 위해 많은 돈을 바라게 된다. 그러나 내가 말한 것처럼 현대 사회에 이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 당신이 늙었다고 해서 농사를 못지으고 사냥을 못한다고 식량을 구해다 줄 젊은 자녀가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당신을 보호하고 먹여줄 것인데 뭐 하러 자식을 낳는 본능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생각은 수백년간 발전하여 독신주의라는 가장 합리적인 생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본능에 대한 반항이며 무요점의 완벽성을 이뤄주는 하나의 생각이다. 결혼을 해도 좋다. 돈을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에게만 써라 자녀는 낳지 말아라, 어차피 늙으면 보호 받고 내가 모은 돈으로 즐기면서 살 수 있다. 본능은 낡은 본능이고 이성적인 합리적인 생각으로 무 요점의 완벽지향주의를 만끽하라. 무요점 그자체가 완벽한 이유는 인간의 생존 , 삶 그 자체가 무 요점이며 인간들은 이를 요점, 인생의 목적을 만들기 위해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시하고 (영원하게 살 것이라는 요점을 만들고) 돈을 벌고, 노력을 한다. 그러나 모두 다 부질없으며 사실상 가장 큰 행복은 먹고 편히 자고 맛있게 먹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무요점적인 삶에서는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뜻을 이해할수 없다면 무요점에서 시작된 여러 설들을 먼저 읽고 하나하나 밑바닥부터 이해하기 위한 글들을 읽고 허무주의와 무요점 주의에 절정에 다다른다면 이해할수 있다. 무요점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크고 이해하기 쉬운 생각이나 같은 의미로 매우 난해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데도 무요점은 존재한다. 의미없는 사교를 위한 대화가 그것이다

 

1.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성공+결혼+번식 을 전제로 살아가고있지만 꼭 그게 답은 아니다.

 

2. 열심히 좆뱅이쳐서 더 나은 암컷을 소유하여 자손을 최대한 늘려 번식하고 본능에 이끌려  노력하고있으며

     그 것을 삶이라한다. 그치만 자손을 많이 낳으려는 이유는 자기가 늙어서 보살핌 받기위해서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옛날에 사냥해서 자급자족하던시절에 얘기일뿐이다. 요즘엔 국가에서 보호해 주지

      않는가? 그리하여 현대사회에는 독신주의자들이 생긴것이다.

 

3. 꼭 결혼이 의무는 아니다. 자기혼자살아서즐기면서 살다가 늙으면 자기가 모은 돈으로 국가 요양원에 들어갈수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못난 일게이들에게 더 합리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자식눈치 안보고 사는걸 얘기하는듯)

 

어느정도 공감이 된다.

김치년이랑 결혼할바에는 그냥 혼자 인생즐기면서 돈모으고 늙으면 모은돈으로 다가 요양원가는것고 나쁘진 않을듯

자식잘못키우면 통수 맞는 세상인데 ..

이글은 그냥 인생살면서 이런인생관도 있구나 라고 참고하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