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야구인 오기 아키라는 긴테츠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 그리고 (긴테츠와 오릭스가 합병하여 생긴 팀)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감독을 역임하며 약팀을 강팀으로 변모시킨 명장이었다. 특히 긴테츠 버팔로즈는 다른 구단에 비해 자금력이 후달려 늘 열악한 전력으로 싸워야 했던 팀이었다. (모기업 긴테츠에서는 감독에게 대놓고 우승할 경우 선수들에게 지급할 보너스가 없으니 우승은 하지 말고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을 정도로 자금 지원에 인색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 또한 자금력이 약한 팀이었다. (그래서 결국 긴테츠와 오릭스는 합병한다) 그런 약팀들을 이끌고도 오기 감독은 리그 우승과 저팬시리즈 제패 등 빛나는 성적을 계속 기록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오기 감독의 지도 아래, 긴테츠(88~92)는 퍼시픽리그 우승 1회, 준우승 3회를 달성했고, 오릭스(93~01)는 퍼시픽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저팬시리즈 제패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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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감독이 달성한 위업은 글로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경이로운 것이, 당시 퍼시픽리그에는 절대왕정 시대를 열어나가던 세이부 라이온즈가 있었고, 또한 센트럴리그 각 구단들이 엄청난 전력을 자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오기 감독이 약체팀을 이끌던 시절은 경쟁자들이 특별히 약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경쟁자들의 황금기와 맞물려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오기 감독은 약체팀을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강팀들 상대로 매시즌 우승을 다투었던 팀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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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오기 감독 하면 유명한 사실이 노모 히데오와 이치로를 키워낸 인물이라는 점이다. 노모와 이치로는 오기 감독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들일뿐이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일본인 선수들을 가장 많이 키워낸 감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오기 감독을 존경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치로의 경우, 그는 자신이 오기 감독을 존경이 아니라 숭배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분은 제 인생의 유일한 스승이십니다"하고 말할 정도이다. 이치로가 미국에서의 시즌이 끝나고 일본에 귀국할 때마다 반드시 찾아뵙던 인물이 바로 오기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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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감독은 1935년생이다. 그는 170cm로 야구선수치고 작은 편이었으나 수비 부담이 많은 2루수로 활동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연습장 밖에서의 오기 아키라는 술도 잘 마시고 놀기도 잘 노는 한량이었지만 그는 노는 것 이상으로 운동하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현역에서 물러난 그가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그의 모토 '놀 땐 놀고'는 그대로였다. 그는 심지어 선수들이 술을 마시는 것도 규제하지 않았다.


오기 감독은 평소 선수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자유방임적인 스타일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프로선수라면 술을 마셔도 될 때와 마시면 안될 때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역선수이었을 때부터의 그의 방식이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해낸다면, 놀아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이 철학은 나중에 이치로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된다. 그는 엄격한 생활에 자신을 가두어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머리를 쓰지도 않고 머리를 식힌다고 떠드는 루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오기 아키라는 자기의 몸의 한계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놀 때는 놀되 연습은 자신을 속이지 말고 할 것)'와 더불어 오기 아키라의 입버릇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마라'였다. 그는 일본인들이 남에게 보이기 위해 연습한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정에서의 자율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그는 자연스럽게 실적주의자였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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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정도의 자기통제 능력이 있다면 누구도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오기 아키라는 선수를 1류, 1.5류. 2류로 나누어 대했다. 1류는 정말로 완전한 자율에 맡긴다. 감독인 자신이 인정할 정도의 실적을 내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슬럼프를 뛰어넘는 방법도 스스로 찾아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는 선수에 대한 남다른 신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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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왼쪽)와 함께



긴테츠의 노모 히데오나 오릭스의 이치로는 사실 오기 감독을 만나기 전에는 다들 2군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던 선수들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노모는 몸을 과도하게 꼬는 투구폼을 지적받았는데 그걸 고치지 않아서 2군으로 쫓겨난 것이었고 이치로는 타격폼 수정을 거부해서 2군으로 쫓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오기 감독은 그들이 자신의 스타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왜 그것을 막아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을 즉시 1군으로 불러올렸다. 노모와 이치로가 오기 감독을 은사로 모시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노모와 이치로뿐만 아니라 오기 감독은 선수들이 하고 싶은대로 놔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해낸 방법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는 계속 힘을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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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와 오기



오기 감독은 두뇌도 명석한 사람이었다. 노모의 괴상한 투구폼을 옹호하기 위해 토네이도 폼이라고 명명해준 사람도, 또한 스즈키 이치로에게 이름이 너무 평범하니 이치로로 바꾸라고 조언해준 사람도 오기 감독이었다. 그것은 오기 감독의 인생관 때문이기도 했다. 오기 감독은 "인생은 한번 뿐이다. 기왕에 야구를 선택했으면 즐겁게 해봐라"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2류는 코치들에게 맡긴다. 어차피 2류에게 1류의 활약을 요구하는 거 자체가 무리다. 2류는 2류의 활약만을 해주면 다행이다. 그래서 오기 감독은 2류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다정하게 대했다. 조언도 없고 질타도 없었다. 다만 성적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2군으로 밀려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편 오기 감독이 가장 혹독하게 대한 선수들은 바로 1.5류들이었다. 1.5류는 닥달을 해서라도 1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오기 감독의 판단. 1.5류들은 1류가 될 자질은 가지고 있으나 어떤 요인들이 결여되어 1류가 못 되는 선수들이다. 오기 감독은 1.5류들이 1류가 될 수 있도록 가혹하게 단련시켰다. 성격이 불같았던 오기는 1.5류들에게 인격적 모욕까지 주면서 1류가 되라고 닥달했다. 1류 선수들은 자유롭게 운동하도록 내버려두고 그 곁에서 '그 따위 밖에 못할거면 출전기회는 없다'식으로 기를 죽여대니 1.5류에 해당하는 선수들은 죽을맛이었다. 호시노 센이치, 나가시마 시게오, 모리 마사아키, 노무라 카츠야, 오기 아키라를 모두 모셨던 어느 코치는 "내가 모신 감독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분은 오기 감독이었다. 스스로를 갈고 닦는 노력이 부족하다 싶은 선수는 사람취급을 안했다. 출전 기회는 당연히 없고,인사도 안 받고, 공기인간 취급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기 감독의 애정이었다. 1.5류는 누군가가 "넌 1류가 아니야"하고 일깨워주기 전까지는 스스로가 1류라는 착각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오기 감독은 1.5류들에게 독기를 심어주고자 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그냥 야구 이외의 길을 알아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야구를 하기로 결심한 이상, 1류가 되어보라는 것이 오기의 철학이었다. 감독시절의 오기 아키라는 누구에게나 느끼는 그대로 말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끊임없는 일침을 받고 1.5류에서 1류가 된 선수들은 모두 오기에게 감사해한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 법이다. 99도에서도 끓지 않는다. 그 마지막 1도를 올리면 물이 끓는데 그 1도를 올리지 못하고 그냥 잠잠한 채로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기는 그 1도를 올리라고 선수들을 닥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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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렇게 사람좋아 보이는 오기 감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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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벌하게 변한다.



하지만 오기 감독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가 맡은 팀들은 하나같이 최약체에 가난한 구단들이었기 때문이다. 전력보강을 사실상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 데리고 있는 선수들을 혹독하게 단련해서 일류로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1.5류들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었다. 그 자극에 견뎌내지 못할 정도면 어차피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개혁하여 1류 선수가 된다면 그것은 그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무제한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기 감독은 씩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우리 팀 선수들처럼 많이 달리는 선수들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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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감독이 선수들의 발전하고자 하는 향상심을 무제한으로 자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오기 매직'이라 불리는 용병술 덕분이었다. 그의 용병술은 간단히 말하면 매일매일 바뀌는타순이었다. 오기 감독은 타순을 주전선수에게 맡기는 법이 없고 수시로 타순을 바꾸고 선수들을 교체했다. 1군 주전 자리를 차지해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주전 선수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또한 후보 선수들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것이 엘리트가 없는 약팀이 가진 포텐셜을 최대한 뽑아내려고 했던 오기 감독의 묘책이었다.


오기 감독 또한 겉으로는 술 좋아하고 유쾌한 영감님일뿐이었으나 그는 일벌레라 해도 좋을 정도로 과로를 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개인 기록만 신경써라. 팀의 승리는 내가 걱정할 문제다"고 말하며 자기가 보는 모든 선수들에 대한 점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야 늘 그때그때 최고의 선수들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후회없는 야구인생을 보내기 바랬던 그는 제자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오릭스의 주력선수 이치로와 타구치 소우가 메이저리그로 떠나자 갑자기 생긴 전력의 공백은 오기로서도 메꾸기 힘들었다. 결국 그는 팀 성적 하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명장 오기를 탐내는 구단들은 많았으나 프론트의 간섭을 싫어하고 자율야구를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감독 생활은 계속하지 못하고 해설자로 활동하며 조용히 살았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 탄생한 구단 오릭스 버팔로스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감독 시절의 과로, 오랜 불규칙한 생활, 그리고 워낙 술을 좋아하는 식습관이 문제가 되어서였을까, 오기 감독의 몸속에서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오릭스 버팔로즈의 감독 오퍼를 받았을 때 그는 이미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었다. 그러나 오기는 감독 제의를 수락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라운드에서 죽는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감독직을 맡은 그는 한 선수의 영입에 전력을 기울인다. 바로 키요하라 카즈히로이다.

이 무렵의 키요하라는 무릎 부상이 갈수록 악화되어 요미우리로부터 쫓겨난다는 말이 무성하던 차였다. 오기 감독은 평소 키요하라를 몹시 아꼈던 인물이었다. 비록 키요하라가 세이부 소속으로 수차례 긴테츠의 앞을 가로막았었지만 야구장 밖에서 키요하라와는 친분이 있었다. 오기 감독은 암에 걸린 몸을 이끌고 도쿄로 찾아가 키요하라의 가족들 및 키요하라 본인과 만나며 그의 오릭스 이적을 권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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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하라는 처음에는 오릭스에 가는 일을 거부했었다. 오릭스를 B급 팀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기 감독은 평소와 같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키요하라에게 오릭스 이적을 권했다.

"키요(키요하라의 애칭). 이제 오사카(키요하라의 고향이자 오릭스의 연고지)로 돌아와라. 너의 마지막 무대는 내가 만들어주마."


키요하라에게 선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동시에 반드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오기 감독은 동시에 키요하라를 통해 오릭스의 선수들이 많은 도움을 받기를 원했다. 키요하라는 요미우리에서 계속 뛰고 싶었지만 요미우리가 결국 그를 방출하자 오릭스 이적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기 감독이 세상을 떠난 후의 일이었다. 다만 오릭스에서 활약하면서 키요하라도 허영심과 자만을 버렸고 나중에 오릭스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때에는 "마지막 무대를 마련해주신 천국에 계신 오기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암으로 고생하면서도 그는 10년전처럼 선수들의 연습을 계속 직접 감독하였다. 그러나 암으로 시달리는 그의 육체에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오기 감독은 체력이 떨어져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오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시합 때에는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다 퇴장당한 일도 있었다. (이것이 일본야구 최고령 퇴장 기록) 결국 체력의 한계를 인정한 오기는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암세포는 계속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2005년, 12월초 오기 아키라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는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미 죽음을 예감한 그는 초연했다. 의사에게 "12월20일에 이치로하고 식사하기로 했거든. 20일까지만 살게 해주시오"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2월15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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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화려함은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약자들이 강자가 되기를 바랬던 오기 아키라의 죽음에 일본야구계는 애통해했다. 특히 그의 가르침을 받아 1.5류에서 흐지부지 끝날 뻔했다가 (메이저리거까지 되는 등) 1류가 되었던 선수들은 모두 슬픔을 누르지 못했다.




세줄요약

1. 너희들은 1.5류인가 2류인가? 2류라면 그냥 2류로 살면 된다. 욕심만 조금 버리면 인생이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1.5류라면 길은 두가지이다. 죽을힘을 다해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하여 1류가 되거나 아니면 그대로 포기하여 3류가 되거나.

2.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자. 누구나 영원히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한번쯤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3. 인생은 어차피 한번뿐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고, 기왕 무언가를 할 거면 즐겁게 하자. 그것이 자율의 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