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대배치를 받은 지 2주정도가 지났다.


훈련소때 동기들과 지내는 것처럼 편하지는 않지만, 이제 이 곳에서 내 군생활을 마쳐야 한다 생각하니


알게모르게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빰~~빰 빰빰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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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상나팔 소리가 들린다,


내 역활은 저 나팔소리가 들리면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나 환복까지 마쳐야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간 알람시계 역할도 해야 한다.


"기상!!! 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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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일어나 부리나케 침구류 정리를 하고 환복이 끝난 후 점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점호집합이 늦는 것 같다.


빨리 여친한테 전화하고 싶은데. 왜이리 늦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당직사관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진다.


"XX!!!!!"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병 XXX!!"


엉겁결에 튕겨지듯 생활관 밖으로 나가니 당직사관이 얼굴이 빨개져 나를 죽일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길 30초 남짓...


'아..왜저래..어제 근무도 잘 섰는데..괜히 선임들이 꼴통이라는 별명 붙여준게 아니네'





한참을 나를 노려보던 당직사관은 약식으로 인원점검만 한 후,


다들 아침식사를 하러 올려보냈다.





'뭐야..불러놓고 아무 말도 안하고..'





그 때 마침 바로 윗 선임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너 뭐 했냐?"


"이병 XXX!!!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근데 왜 저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군생활 끝나냐?"


"아..아닙니다!!"





'이새끼도 괜히 나한테 아침부터 시비야...밥이나 먹으러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하려던 순간,


갑자기 방송으로 


"XXX 이병, XXX 이병은 지금 즉시 지휘통제실로 오기 바랍니다."





지휘통제실.


자대 배치받고 잠깐 스쳐지나간 것 같은데..거긴 왜 오라는걸까.





'아 오늘 왜 이래...다들...'





지휘통제실 앞에서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아차' 싶은 마음으로 손잡이를 잡은 손을 조용히 놓았다.


'선임이 알려준대로...지휘통제실 들어가면...우선 경례먼저 하고...그래..음..'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대 들어와서 만났던 대대장님을 비롯해 주임원사님, 행보관, 소대장님, 당직사관..등등


널찍한 회의실에 ㄷ자 책상에 앉은 무수히 많은 간부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결같이 다들 무표정.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이...이병 XXX!! 지휘통제실에...."






"너 이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대대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예???"


갑작스런 대대장님의 사자후에 경례한 손을 내려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모르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예...예라니...말실수했다...





이윽고 들려오는 주임원사님의 목소리


"...너 이리 와봐..."





반쯤 얼어서 몇 걸음 앞으로 나가는데 순식간에 입 안이 바싹 말라버렸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몇 걸음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면서


지난 2주간의 자대 생활이 머리속에 필름처럼 촤르르르 흘러갔다.





'..아무런 문제 없어!! 뭔가 오해가 생긴거겠지'





몇 걸음을 회의 탁자 있는 곳으로 옮기자 주임원사님이 지긋한 목소리로 


"너 이거 누구 줬었어? 이리 가까이 와서 봐봐."


하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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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 해진다.


"이거...."


"준 적 있어 없어, 빨리 말해"





이거 때문이었구나.





"이..있습니다..기..기념으..."


"기념...???"


고개를 돌려보니 이마 옆 관자놀이에 혈관이 튀어나올대로 튀어나온 대대장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주임원사님이 다시 묻는다


"언제 줬어?"


"아..그게..어..지난번 면회때..."


"그래...나가봐"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시 뒤를 돌아 지휘통제실 문 앞에 섰다.





뒤를 돌아 경례를 하고 나가려는데


당직사관이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야...그냥 조용히 나가 임마..."


"알겠습니다..."





차디찬 복도로 나와 찬 바람을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언제 땀이 났는지, 차갑게 식으면서 팔뚝에는 닭살이 돋아있었고


바짝 마른 입 안에선 어느새 단내가 나고 있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좆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아무도 모르게 몰래 줬는데..어떻게 알았지..?'






그 때, 어깨를 툭 치며 나타난 동기.


"지휘통제실에는 왜 갔냐? 아, 너 밥 안먹었지? 같이 먹으러 가자!"


눈치없는 동기가 이끄는대로 식당으로 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데


맞은 편 분대장끼리 모여앉은 곳에서 큰 웃음소리가 난다.


'뭐야..' 하면서 눈길을 주는데 들리는 대화.





"오늘 훈련이랑 작업 다 취소됐다매?"


"어~ 뭔일인지 몰라도 뭐 하나 터졌나봐 ㅋㅋㅋ 오늘 PX 나 가서 꿀빨자"


"뭔일이래~ 말년에 피는구만~"





몇 숟갈 뜨지도 못한 채 식당에서 내려오자 행보관이 행정실에서 나를 부른다.


"너..그거 전해준거..6하원칙에 의거해서 사실만 싹 써."


그러면서 건네준 A4용지와 사인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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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씨를 써서 그런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기억나는대로 쭉 썼는데..


채 몇 줄을 쓰지못하고 끝내버렸다.


XX월 XX일...00시..여자친구를 만나 지난 훈련때 챙겨놓은 훈련용 수류탄을 건네주었습니다.


...더이상 쓸 말이 없었다.





물끄러미 행보관을 쳐다보니


자대 전입왔을 때 흐뭇하게 쳐다보던 행보관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뒤돌아 선 채,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한숨 비슷하게 내쉬는 차가운 행보관의 모습만 보였다.


낯설고 차가운 모습.





"다..다 썼습니다..."


"줘봐."





몇 줄 안되는 내용을 읽어본 행보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게 다야..??...알았어, 생활관 가 있어"


라는 말을 남긴 채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나는 어떻게 되는건지


내 군생활은 어떻게 되는건지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같았지만 차마 잡지 못한 채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다다랐을 쯤 문득 보이는 공중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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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어떻게 된 걸까...'


홀리듯 전화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익숙한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어봤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딸깍' 소리를 내며 맞은편에서 


"누구세요?" 소리가 들린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불안하고 괴롭던 마음이


여자친구 목소리를 들으니 봄 눈 녹듯 편안해진다.





"나야!!"


"..어...XX오빠???"


"응!! 너 괜찮아!!? 나 오늘 아침에 너한테 준..."


"아..안그래도 나 할 말 있었어..미안한데..."





'미안한데...'


이후로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간간히 기억나는 것은...





수류탄...페이스북...일베...라는 단어와...


'헤어져, 미안해' 라는 차가운 목소리만 머리속을 맴돌았다.






"뚜...뚜...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내 모습.





울고싶은데


뭔가 울면 안될 것 같기도 한..


단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감정들이 


마음 속을 휘몰아쳤다.





다들 모여있는 생활관...


짬순대로 편하게 눕고, 앉고 책읽고 있는데.


어쩐지 나는 이들과는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기분이 든다.






'나..어쩌지..엄...엄마...'


그 때,


갑작스런 방송.


"XXX이병, 지휘통제실로 오기 바랍니다."





"너 오늘 인기 많다?"


"요~ 신병 포상받는거야? 뭐야?"





다들 반쯤 조롱하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침에 봤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간부들이 앉아있었다.


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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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내 팔을 붙잡고 있는 헌병..